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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미디 Oct 13. 2022

문상훈의 수줍게 듣기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경유하며

기분 좋아지고 싶을 때 검색하는 이름, '문상훈'. 문상훈은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에서 문쌤, 문이병 등 부캐 콘텐츠와 함께 각종 영화/드라마에서 맡은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코미디언이자 배우다. 그간 그의 콘텐츠들을 찾아보며 그를 단순히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이하 오당기)라는 콘텐츠를 보기 전까지는...


<오당기(시즌2)> 게스트를 초대해서 주문한 음식이 오기 전까지 인터뷰를 진행하는 콘텐츠다. 다양한 콘텐츠  가장 문상훈이라는 본캐에 까운 모습으로 임하는  같.  과정에서 드러나는 그의 섬세한 감수성은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된다. 특히 상대를 짝사랑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기울여 듣는 모습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자기의 매력을 너무  알고 웃기는 능청쟁이.  능청에 속는  치고 문상훈이라는 본캐를 파보다가 그의 특이경력을 접하게 되었다. 24살의 나이에 삼청동 담벼락 앞에서 무료 인생 상담소를 열었다는 .


[좌] 빠더너스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 '권정열 편'  [우] 인생상담소 시절 문상훈 (현재 모습과 다름 주의♥)


갓 전역한 청년이었기 때문에 문제 해결보다는 고민을 '듣는 것'에 초점을 두고 열었다고 한다. 인생 상담소의 카피는 '편들어드립니다', '같이 욕해드립니다'. 괜히 든든해지는 이 상담소는 생각보다 진지한 고민을 안고 오시는 분들이 많아 조금 벅찼다고 한다. 그럼에도 배우는 게 많다며 씩씩하게 말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오당기> 감수성을 만든 역사의 한 순간을 본 것 같았다. 문당후니 사람들 이야기로 포동포동 찐 거였네!


그런데 <오당기> 속 문상훈이 게스트의 이야기를 듣는 얼굴을 가만 보다 아주 의외의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그건 바로 일본의 영화감독 '하마구치 류스케'다. 최근 시네필 사이에서 가장 핫한 감독으로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위해 참여했던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봉준호와 긴 시간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대담을 나누던 바로 그때 감독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상대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뚫어지게 쳐다보며 집중하는 인상이 강했는데, 문상훈과 겉모습은 다르지만 잘 듣겠다는 강한 다짐이 닮아 보였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잘 듣겠다는 결의의 연장선으로 느껴진다.


[좌] 2021부산국제영화제 하마구치 류스케X봉준호 대담   [우]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들어주는 영화다. 두 주인공이 비로소 각자의 상처를 드러내는 순간이 중요한 대목인데 그 앞에는 긴 시간의 듣는 장면들이 배치되어 있다. 듣는 장면으로 가장 많이 할애되는 장면은 연극의 대본 리딩 시간이다. 말 그대로 읽는 시간인 리딩 장면이 왜 듣는 장면인가는 대본 리딩의 특이한 방법 때문이다. 실제 감독이 진행하는 대본 리딩과 방식이 같아 화제이기도 한데, 배우가 대사를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채 또박또박 읽게 한다. 일단 내 안의 감정은 비우고 상대의 말을 더 듣고 살피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영화 속 인물들이 서로 다른 국적에 다른 언어(수어 포함)를 씀에도 언어 너머 상대를 느끼는 초현실적인 경험을 만든다. 이런 경지로 닿을 때까지 스크린에 들어주는 얼굴들이 많이 등장한다.


듣는 얼굴은 조용하고 잔잔하다. 말하는 사람이 꺼내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말할수록 더 조용하고 잔잔해진다. 그 얼굴이 가만해서 영향력 없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위력이 엄청나다는 건 우리 모두 안다.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직접 그 힘을 비슷하게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조차 들어주는 얼굴에 종종 현혹되어 나도 모르게 말을 더 하게 될 때가 있다. 내가 말할 수 있게 해주는 듣는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하고 아름답다.      


듣는 표정은 다양하지만 문상훈의 수줍은 얼굴은 특히 다정함이 느껴져서 좋다. 그의 얼굴은 옳고 그르다는 판단보다 존중하는 것에 훨씬 집중한 것 같아 화면 너머의 나까지 마음이 좋아진다. 그가 말하는 순간은 재치를 발휘하며 코미디언임을 제대로 상기시킨다. 그의 장기인 유머/표현력/관찰력/감수성은 그가 잘 듣는 사람이 틀림없구나 끄덕이게 된다. 모든 매력의 뿌리가 듣는 얼굴일 수 있다고 멋대로 추측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유독 그의 듣는 얼굴을 좋아하며 살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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