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난 한국계 친구들은(적어도 아직까지는) 미국에서 태어 났거나 성장과정 중 언젠가 미국으로 이민 와서 결과적으로 영어를 모국어(한국어보다 더 편하게 느끼는 정도)로 가진 경우, 아니면 학창 시절(중학교,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 때부터 유학을 하고 정착한 경우, 아니면 이민온 뒤에 대학이나 대학원을 다시 다니고 재취업한 경우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나처럼 30여 년을 넘는 긴 시간 동안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학업을 순수하게 한국에서만 마치고, 직장생활까지 10년 넘게 한국에서 알차게 하다가 이민을 와서 다시 미국에서 공부를 하지 않은 채 커리어를 이어가는 경우는 스스로 창업을 한 경우가 아니고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영어에 늘 자신이 없고, 중요한 문서에 서명하거나, 회사 의료보험 갱신을 할 때면 늘 남편에게 확인을 받는다... 혹시나 내가 뭔가 잘못 이해하고 등록할까 봐서... 또 링크드인 사이트를 통한 구직 이력 기준만으로도 100번(지난 10년간 이미 회사에 다니면서 지원했던 것들을 다 합하면 100번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도 넘게 지원하고 리젝을 당했고, 명백히 내 경력에 딱 들어맞는 포지션이어서 절대 낙방은 불가능하게 보이는 포지션조차도 안된 경험이 허다하다. 그뿐인가, 업무 중 내가 호스트로 주도해야 하는 온라인 미팅에서 시작과 끝을 너무도 멋없이 하이! 바이! 정도로 마무리지으며 늘 나의 허접한 영어를 한탄한다..
그럼에도 지금 Fortune Global 선정 500대 기업 목록에 들어가는 IT대기업에서 멀쩡히 일하고, 팀을 구축하고 이끌었을 만큼 영어를 완전 허당으로 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업무에 실수를 줄 만큼, 영어를 못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면, 내가 미국에서 나고 자라지는 않았음을 상대가 눈치챌 수는 있어도 마흔 가까운 나이에 이민온 이민자로는 생각하지 않는 정도의 영어랄까... 그러니깐 공부 안 한 유학생과 공부 좀 한 토종 늦깎이 이민자의 그 어디쯤인 영어로 보면 되겠다.
그래서 가끔 나의 사정을 아는 지인들한테 질문을 받는다. 영어를 어찌 공부했는지...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한순간도 영어를 심도 있게 제대로 공부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끈질기게 항상 하기는 했다. 하루에 5분이라도 늘 했다. 그게 10여 년 쌓인 결과가 오늘 나의 영어 실력의 바탕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최대한 나의 환경을 영어에 둘러싸이게 설정해 두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아침에 일어나서 라디오 굿모닝 팝스를 들었다. 늦잠 자서 놓치면 그 당시 지난 방송 듣기가 웹사이트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는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팟캐스트가 나왔던 것 같고... 그리고 출근길에 이걸 이어서 듣거나 아니면 PMP(?라고 했던가...) 이름도 가물가물한데 아무튼 이런 기기로 미드를 영어자막으로 보았다. 가장 좋아했던 것은 길모어 걸스인데 엄마 로렐라이 영어가 참 어렵다 느꼈었는데 (얼마 전에 다시 보니 이젠 양어자막 없이도 잘 들리기는 하더라... 그래도 10년 동안 들은 영어가 있으니...) 그래서 공부용으로 좋다고 어디선가 듣고는 그걸 봤던 것 같다. 그리고 가끔 절대 몇 줄 이상 안(혹은 못) 읽지만 코리아 타임스를 버스 정류장 가판대에서 종종 사서 들고 다녔다. 거기 Dear Abby 코너를 정말 좋아했고 즐겨 읽었는데 아마도 상대적으로 다른 뉴스내용보다 쉬워서였던 것 같다. 퇴근길에도 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물론 이것들을 모두 안 하고 차 안에서 자버리거나 아니면 멍하게 다른 생각을 할 때도 허다했고, 퇴근길에 동료랑 같이 갈 때는 수다를 떨었다.
그 외에도 업무용 노트북과 휴대전화 기본 언어를 영어로 해 놓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어느순간부터 해외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나중에 해외 가서 노트북이나 전화기 메뉴 이름(혹시 고객센터 문의하거나 그럴 때) 달라서 당황할까 봐 미리 익숙해지자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끝으로 업무를 통해 알게 되는 한국 밖의 외국인 동료와 최대한 친해지고 수다를 많이 떨고자 노력했다. 싱가포르, 대만, 홍콩, 미국 등의 동료를 업무와 무관하게 우연히라도 알게 되면 메신저로 자주 말도 걸고 최대한 많이 수다를 떨었다. 그들을 통해서 알게 되는 영어단어가 정말 많았고, 나의 표현력도 개선되는 것을 느꼈다.
그야말로 Automic Habit 작은 습관의 힘이랄까... 그렇게 하다 보니 싱가포르에서 잡을 구해보겠다 고 무작정 떠날 무렵엔 적어도 영어를 되게 못하지는 않는 척(?) 약간 허세를 부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싱가포르와 미국에서 구직하고, 구직뒤에는 또 엄청나게 삽질하고 부딪히면서 익히고 늘려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오늘 나의 어정쩡하지만 나름 먹히는(?) 영어 실력은 최대한 잦은 환경적 노출, 하루 1개라도 익히던 자잘하지만 꾸준했던 시도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