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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경마장

잠실동 사람들 - 정아은

by 보멍

교사로 일한 지 5년 차, 이제 슬슬 이 직업이 무얼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고 있다. 교사가 해야 할 일은 단연코 교육이요, 교육이란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일, 곧 한 사람이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뜻을 세우는 걸 돕는 일이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5년의 세월이 필요했는데, 왜냐면 우리나라의 많은 어른들이 교육을 '내 삶의 뜻 세우기'가 아닌 '계급 높이기'라는 전혀 다른 뜻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나 또한 그 굴레에 착실하게 머물러 살아왔기 때문일 테다. 이건 우리나라 부모님들의 아이를 향한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만나본 모든 부모님들은 자신의 아이를 사랑했다. 아니, '사랑'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의 사랑이었다. 다만 사랑에 끼어든 욕심 한 방울이 이 무궁한 부모의 사랑을 집착과, 불안과, 통제와, 억압으로 변질시켜온 것이다. [잠실동 사람들]에서 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비록 나는 주류에 끼어들지 못했지만 내 아이들은 주류로 살게 하리라. 주류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선 주류가 되게 하리라. 한 번뿐인 인생, 아이들이 세상의 부와 권력을 실컷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집이 가난하다고, 촌년이라고 놀림당하는 설움을 자식들에게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지환이도 강남에서 살게 하고 싶다! 세련된 이미지와 멋진 학벌을 갖추어주고 싶다! 미래의 장차관이 될 인물들과 죽마고우로 지내게 해주고 싶다!"
"내가 너무한 걸까. 잠자리에 들어서도 원망에 가득 찬 아이의 눈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니야. 이럴 땐 세게 나가야 해. 수정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지환은 지금 레벨이 안 나와서 학원도 들어갈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어떻게든 레벨 업을 시켜서 2학년이 끝나기 전에 학원에 넣어야 한다. 이대로 3학년에 올라가면 레벨 차이 때문에 영영 학원에 발을 들이지 못할지도 모른다. 눈물 좀 흘렸다고 흔들릴 때가 아니다."


부모도 사람이다. 왜 그들이라고 아이들을 편하게 놀게 하는 게 싫을까. 다만 그래서는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지고, 결국 도태되어 '생존'할 수 없을까 봐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확실하게 내 아이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을 갖게 하는 일이라고 부모들은 굳게 믿는다. 처음에는 아이의 생존을 바라는 마음뿐이었으나 여기에 나도 모르는 새 살짝 욕심이 붙는다. 이왕 사는 거 내 자식이 그냥 살기보다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한 번뿐인 인생, 남 눈치 보며 설설 기어 다니기보다 시원하게 내달리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건 애초에 부모가 해줄 수 없는 영역임을 우리는 놓치고 있다. 지금 당장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내 자식의 앞날을 그려줄 것인가. '좋은 대학만 가면 돼', '좋은 직업만 가지면 돼'라는 말로 이 불안을 억누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자. 정말 그걸로 해결될 불안이 맞는가? 당신의 불안을 이용해 자신의 배를 채우는 장사치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결혼한 지 13년. 하고 싶은 일이 많았지만 꾹 참고 아이들 교육에 전념해 왔다. 아이를 낳지 않고 엄마의 권유대로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면 지금쯤 대학교수가 됐거나, 하다못해 EBS 영어 강사라도 됐을 것이다. 하지만 유미는 유학을 가지 않았고, 아이를 낳았다. 지성을 낳았을 때 받았던 충격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지성은 탄생과 동시에 유미의 모든 것을 지배했다. 밤낮없이 울어대는 그 시뻘건 핏덩이에게 그녀는 젊음과 자유와 의지 같은, 인생의 모든 여유를 송두리째 바쳐야 했다. 아이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만을 합쳐놓은 또 다른 자신이었다. ... 돌아보면 '난 오늘 무엇을 했다'고 내세울 만한 게 없는 쳇바퀴 같은 일상이다. 그렇게 살았는데도 해성은 잘하는 거 하나 없고, 글쓰기 싫다는 소리나 남발하고 있다. 참으로 부질없다."
"부모와 일가친척들이 자식이라는 경주마에게 엄청난 돈을 베팅하는 거지. 이 베팅은 유치원 때부터 시작돼. 아니다, 요즘엔 그 연령대가 더 낮아진 것 같아. 너도 엊그제 잠실의 네 살짜리 애 하나 가르치게 됐다 그랬지? 걔도 경주마야. 아주 어릴 적부터 길러지는."


분명 사랑으로 시작한 부모의 마음에는 금세 욕심이 스며든다. 자식은 자식 혼자 만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식을 키우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의 소중한 무언가를 희생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포기한 나의 소중한 부분을 먹고 자란 자식은 또 다른 나이며 그렇기에 너무도 소중하다. 이 소중한 존재를 사람으로 키워내는 과정에서 무엇이 자연스러운 사랑이고, 무엇이 억지를 부리는 욕심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니까. '자식은 또 다른 나'라는 생각은 부모 혼자의 느낌일 뿐,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결말이 정해진 비극이다. 자식과 부모는 분명히 타인이다. 부모의 눈먼 욕심은 결국 자식에게 상처로 남는다. 사랑으로 시작했던 양육은 서로에게 미움만 남긴 채 결국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잃게 만든다. 부모는 경마꾼으로, 아이는 경주마로.




"이 동네 여자들의 삶도 잘 살펴보면 다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모두들 보이는 것만큼 여유 있게 살지도 않을 것이다.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현명한 여자인 수진은 빙그레 웃으며 노트북 화면에 포털 사이트를 띄웠다."
"리센츠라는 성냥갑 아파트가 그렇게 누추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하늘도 보이지 않고 무식하게 고층 아파트만 빽빽이 들어서 있는 삭막한 공간. 미라곤 찾아볼 수 없고 살아남기 위한 경쟁만이 난무하는 노골적이고 저급한 공간."
"ADHD인 아들의 심각한 증상을 담임 탓으로 돌리는 현규엄마도, 분명히 되돌려줬는데 간식을 돌려받은 적이 없다고 우기는 태민엄마도, 준비한 간식을 되돌려 받았다고 펄쩍펄쩍 뛰는 해성엄마도 속으로는 자신이 억지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사람다움을 희생해서라도 얻고자 하는 한강뷰 아파트, 명문대 입학, 명품, 많은 팔로우가 사실은 나에게 그 정도의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는 점, 이게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조차 어쩌면 주입된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마음 한 편으로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억지를 부리고 있음을 인정하는 건 너무나도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내가 살아온 삶을 부정해야 한다는, 나에게 가치 있는 것을 새롭게 찾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나를 변화 없이 여전한 모습으로 살게 만든다. 리센츠 아파트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최고급 아파트로,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누추한 방으로 여겨지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 사람도, 프랑스 사람에게도 변치 않는 사실이 있다. 바로 행복은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가진 것에 얼마나 만족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움의 기준이 하나라면 우린 모두 같은 옷을 입고 다녔을 것이다.'라는 말처럼 사람마다 아름다움의 기준도 만족스러운 삶의 기준도 다 다르다. '내 삶에 무엇을 채워 넣을지'보다 '나는 어떤 삶에 만족하는지'에 더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각자의 만족을 찾기 위한 모험은 사라지고 모두의 삶이 경제적 기준으로 획일화되는 게 우리의 삶의 점점 고통스러워지는 이유가 아닐까. 맹목적으로 대치동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고통 속에 살아가는 잠실동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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