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의 사랑은 이렇게 힘들까 - 다이앤 풀 헬
내 어딘가 고장 났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된 것은 대학생 때다. 대학 시절은 늘 나를 쫓아다니던 가정환경의 그림자에 처음으로 벗어난 시기였다. 원하는 결과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대학에 붙었다는 사실과 교대니까 앞으로 밥 벌어먹을 걱정 없다는 이유로 온갖 근심을 떨쳐버리고 술 좋아하는 친구들과 온종일 어울려 다녔었다. 나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는데, 이상하게도 술을 만땅으로 마셔서 필름만 나가면 평상시에 볼 수 없는 폭력적인 행동을 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술주정을 그저 웃긴 한 장면으로 소비하곤 하는데, 이게 얼마나 내 주변을 파괴하는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그래도 멀쩡할 때는 꽤나 괜찮은 친구라는 이유로 나를 참아주고 지켜줬다. 참 고마운 놈들이다.
그러다 연애를 통해 또 한 번 나의 고장 난 마음을 마주하게 되었다. 대학생 때 3번 정도 연애를 했는데 항상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아주 잘 사귀다가, 어느 날 뭔가 힘들어진 내가 연락을 끊어버린다. 그렇게 오랫동안 잠수를 타다 상대가 이별을 통보하면 나는 비로소 후련해진다. 내가 정말 사랑했고, 오랜 시간 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과도 비슷하게 헤어진 날, 내 안의 고장 난 것을 그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학교에서 지원해 주던 심리 상담 프로그램에 신청을 했고 8회 정도 상담을 받으며 내가 무엇이, 왜 고장 났는지 뚜렷하게 알 수 있었다.
사람은 태어난 후 살아가며 성장한다. 성장에는 세 가지 방향이 있다. 첫째, 음식을 섭취해 몸이 커지는 신체적 성장. 둘째, 나 혹은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나와 세상을 알아가는 정신적 성장. 마지막으로 주변 사람과 주고받는 지지와 사랑을 통해 만들어가는 관계의 성장이다.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한없이 기대기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미련할 정도로 혼자서 하려는 사람도 있다. 건강한 관계는 이 둘의 중간 지점에 있다. 적당한 독립심과 적당한 협동심이 어우러지는 안정적인 관계 패턴. 이러한 안정적인 관계 맺음이 바탕이 되어야 신체적 성장도 정신적 성장도 가능하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보다 관계의 성장을 통해 안정 애착으로 나아가야 한다.
내가 관계 맺는 방식은 참 힘들다. 사람의 정이 그리워 여러 모임이나 연수에 참여한다. 하지만 막상 그들을 만나는 자리에 가면 혼자 있겠다며 방에 틀어박히거나 구석 자리로 가버린다.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하게 있다 보면 대부분은 내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싶어서 자리를 피해 준다. 카톡이 오면 답장하기가 힘들다. 내 카톡에는 언제나 안 읽은 카톡이 쌓여있다. 하지만 또 막상 친구들로부터 연락이 없으면 괜한 외로움이 밀려와 인스타그램을 기웃거린다. 나는 그동안 이게 '귀찮아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귀찮아서'가 아니었다. 진실은 '두려웠기' 때문이다. 바로 이게 나의 고장 난 부분이다. 나는 누구보다 타인과 연결되기를 원하면서도, 연결되기를 두려워한다.
최근 나의 치료를 담당해 주시는 상담사님은 내가 혼란 애착유형이라고 했다. 애착유형의 기본 설계도는 주로 10세 이전에 형성된다. 이때 주 양육자로부터 어떠한 사랑을 받느냐에 따라 애착유형의 방향이 결정된다. 나는 엄마, 아빠로부터 지지와 사랑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무궁한 사랑을 받았어야 할 엄마에게는 버려졌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할 아빠는 늘 술에 취해 있었다. 나는 그런 아빠에게 조차도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 옆을 더듬으면서 자는 버릇이 생겼다. 나에게 관계란 간절히 원하면서도 두려운 것이 되어버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내 처지를 한탄하는 것은 여기까지만 하고, 그래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중요한 것은 '알아차림'이다. 우선 관계 속의 나의 마음을 더 정확히 알아차려야 한다. 나는 주로 관계가 맺어지는 순간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 두려움이 무엇이고, 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좀 더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 어렸을 때의 나는 주 양육자로부터 느껴지는 두려움을 방어할 수단이 도망치는 것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어린 나는 엄마, 아빠에 비해 나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두려움을 충분히 이겨낼 힘이 나에게 있다. 나의 두려움과 내가 가진 힘을 뚜렷하게 알아차리고 견준다면 나는 이제 더 이상 나약한 아이가 아님을 깨닫고 이겨낼 수 있으리라. 또 하나 '안정감'이 무엇인지 더 정확하게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나는 안정적인 관계가 어떤 것인지 그 느낌을 잘 알지 못하기에 나아가지 못하는 것도 있다. 내 관계를 수반감을 주는 이들로 채울 필요가 있다. 안정 애착유형의 이들이 자기 사람과 맺는 관계의 모습을 통해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결함을 마주하고 나서 그동안 나를 사랑해 줬던 이들을 떠올렸다. 이렇게 사랑이 힘든 나를 사랑해 주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들이 가시 돋친 나를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안아주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이제 나 또한 다른 이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받았던 사랑만큼 나도 그들 무너지지 않도록 사랑을 주고 싶다. 더 나아져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사랑이 힘들지 않은 사람이 되어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다. 내가 삶에서 지나치는 모든 이들이 사랑이 힘들지 않은 사람이 되기를, 그로 인해 사랑으로 가득 찬 세상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