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고 사라지는 순간들

2020.7.18. 이문동

by 보멍
000001.JPG
000009.JPG
000011.JPG
000013.JPG
000015.JPG
000020.JPG
000022.JPG
000024.JPG
000031.JPG
000033.JPG
000039.JPG

내가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가 선명히 기억나. 군대 전역하고 나서 하릴없이 방에 누워 있던 나에게 아빠가 상자를 슥 건넸지. 그 안에는 오래된 필름 카메라가 담겨 있었어. 난 솔직히 예술 같은 간지러운 거랑 거리가 먼 사람이거든. 도대체 이게 웬 거냐는 표정으로 아빠를 쳐다보니 아빠가 하는 말이,

'너랑 잘 맞을 것 같아서. 사진 한 번 찍어봐.' 였어.

아빠는 아빠인가 봐. 한 번도 잡아 본 적 없었던 카메라가 내 삶의 숨통이 될 줄 아빠는 어떻게 알았던 걸까. 처음엔 그냥 재밌긴 하겠다, 정도였는데 문제는 아빠도 나도 사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거야. 근데 참 신기하게도 때마침 친한 친구가 사진 동아리를 하네? 나 사진기 생겼다니까, 그것도 필름 카메라라고 하니까 자기가 더 신나서 나랑 출사 약속을 잡았어.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 곳곳을 여행하자고.

사진에서 가장 어려운 게 뭔 줄 알아? 바로 셔터를 누르는 일이야. 물론 물리적으로 셔터를 누르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지. 하지만 어떤 것을 보고 셔터를 눌러야 하는지, 바로 이게 어려운 거야. 첫 출사 때 뭘 찍어야 할지 몰라서 쓰레기통이나 찍고 끝났어. 그런 나를 보고 친구가 하는 말이 계속하다 보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될 거래. 사진에서는 그게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솔직히 5년 전 일이라 정확히는 기억 안 나는데, 첫 출사가 북촌, 두 번째가 동묘였던 것 같아. 다 죽 쒔지 뭐. 그러다가 친구가 묘안을 낸 것이, 지하철을 타고 마구 돌아다니다가 이름 잘 모르는 역이 나오면 거기를 여행하자는 거야. 그렇게 가게 된 곳이 바로 여기 이문동이었어. 처음 내릴 때는 솔직히 무르고 싶었어. 왜냐면 이곳 역 이름을 모르긴 하지만 그 주변은 회기, 청량리, 중랑 등등 꽤나 유명한 동네였거든. 이런 곳에서 사진을 어떻게 건지겠어.

기대 없는 마음으로 도시를 터덜터덜 걷는데 갑자기 하늘이 뻥 뚫리는 거야.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빌딩 숲 사이를 걷고 있었는데 말이야. 알고 보니 이문동에 대규모 재개발 단지가 있었던 거야. 오래된 빌라촌을 포크레인으로 다 때려 부수고 있던 중이었지. 우리는 찢어진 틈 사이로 몰래 들어갔어.

진짜 신기하더라. 좀비 바이러스가 서울에 퍼지면 이런 느낌일까. 분명 내가 아는 서울 동네의 모습인데, 집은 폭격 맞은 것처럼 부서져 있고,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어. 셔터를 언제 눌러야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던 나인데 어느새 홀린 듯 셔터를 누르고 있더라. 그때 알게 되었어. 내가 담고 싶은 건 잊히고 사라지는 순간들이라는걸.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 만의 일몰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