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는 게 아니라 떠나보내는 것입니다.

by 작은 의미


김포 끝자락 마을을 드나들기 시작한 두 달여 만에 마음에 꼭 맞는 땅을 찾았다.

땅 주인의 연락처를 알고 있다는 마을 이장님을 찾아갔다. 땅 주인은 관심 있는 사람이 나오면 거래를 해 보겠다고 이장님에게 지적도와 함께 연락처를 남겨 놓았다. 그러나 막상 연락하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한다. 우리는 양해를 구해 땅 주인에게 직접 전화를 해 직접 찾아가겠다고 했다. 날짜와 시간 약속을 하고 서울 사시는 곳으로 찾아갔다.


추석 연휴가 막 지난 때였다. 점잖으신 어르신이 우리를 맞이하셨다. 오래된 아파트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집 벽에는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보이지 않았다. 손수 사과를 깎아서 내놓으셨다. 우리는 땅을 사고 싶다고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어르신이 나직하게 말씀하셨다.


“ 내가 파일럿 생활을 오래 했죠. 그 땅에 주택을 몇 채 지을까 생각을 하다가 은퇴하고는 부인과 함께 김포로 오가며 텃밭을 가꾸던 곳이에요. 부인은 그곳에 가면 탁 트인 풍경이 아주 좋다고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아내에게 병이 찾아왔죠. 갑작스럽게 저 세상으로 떠나버렸답니다. 혼자 그 땅에 무슨 재미로 갑니까. 마누라 죽고 혼자 몇 번 가 보았지만 마누라 생각이 더 나서 갈 수가 없어요. 안 되겠다 싶어 땅을 내놓은 것인데 막상 그 땅을 판다고 생각하니 또 서운하네요.”


우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벽에 걸린 액자를 보았다.


“저희가 예쁘게 가꿀게요. 혹시 나중에 그 땅이 생각나면 언제든지 바람 쐬러 오세요.”


어르신은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셨다. 어르신을 만나고 온 며칠 후 연락이 왔다. 법무사 사무실에서 만나 계약을 하자고 했다. 아. 드디어 땅을 갖게 되는구나.

그 순간, 남편은 멈칫했다. 물건을 사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삶을 터전을 바꾸는 건데 이렇게 급하게 결정정해야 하나 싶다고 했다.


“땅 주인에게 직접 찾아가기까지 하고 이제 와서? 그렇게 고민하고 망설이다가 무슨 일을 하겠어?”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가는 게 좋지.”


뭘 어떻게 두드린다는 말인가. 노년에 시골로 들어가자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의 계획을 조금 앞당긴다고 생각하자고 남편을 설득했다. 그는 조심스러워했지만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땅 주인과 약속한 날, 시간을 낼 수 있던 나 혼자 김포로 갔다. 남편 없이 혼자라고 생각하니 혹여 실수라도 할까 더 긴장이 됐다. 법무사가 하는 말을 더듬더듬 이해하면서 계약서에 내 도장을 힘주어 찍었다.

땅 잔금을 치른 후 현장에서 어르신을 만났다. 밭을 아무것도 심지 않고 내버려 두면 안 되니 한쪽에 고구마를 조금 심어 놓았다고 하셨다. 이 고구마는 손주들과 곧 수확해 가겠다고 했다.




산 밑에 있는 낡은 컨테이너 열쇠를 건네주며 안에 있는 연장들 몇 가지는 우리에게 사용하라고 하셨다. 작은 마루 형태로 되어 있었다. 아마도 농사짓다가 잠시 휴식을 가졌던 공간이었을 것이다. 서쪽 끝의 몇 그루의 오가피나무를 보며 부인과 함께 심었던 기억이 떠 올랐는지 잠시 말씀을 멈추기도 하셨다. 오가피나무는 버리지 말고 잘 가꾸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마누라가 땅 팔았다고 서운해하지 않을까 모르겠네요.”


오가피나무를 만지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노년의 부부는 손가락 굵기의 오가피나무를 심으며 몇 년 뒤 열매가 열리고, 그 열매로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헤아려 보며 기대했을 것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이 밭을 오가며 부지런히 일구었을 부부의 모습이 그려졌다. 봄이면 감자를 심어 한 여름이 오기 전 감자를 캐고, 한편에는 고구마를 심어 가을이면 고구마 줄기를 따고 고구마를 수확했겠지. 여름이 지나면 배추와 무를 심어 직접 일군 채소들로 김장을 했겠지. 밭에서 딴 상추와 고추로 컨테이너 한편에서 점심을 해 먹고 잠시 쉬기도 했을 것이다. 염하강 너머 석양이 지기 시작하면 부부는 하던 일을 정리하고 서로의 옷을 툭툭 털어주고, 노을을 바라보았을 부부의 모습이 밀레의 <만종> 그림 위에 덧입혀졌다.




염하강을 바라보며 말씀하시는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먼 길 떠난 그 사람을, 함께 했던 그 자리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다만 슬픔 안에 가두어 붙들고 있는 게 아니라 훨훨 떠나보내는 거겠지.


하늘에는 쇠기러기떼가 무리 지어 훨훨 떠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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