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잔디를 심어 초록 카펫을 만들어야지. 화단에는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들과 작은 연못도 만들자. 울타리에는 봄이면 눈꽃 날리는 벚나무, 가을이면 달달한 과일이 열리는 나무도 심어야지. 시골에 집 짓기를 준비하면서 계획했던 마당의 모습이다.
집과 책방 두 채는 12월이 되어서 마무리되었지만 마무리 토목공사는 갈 길이 멀었다. 언덕 진입로, 주차장, 잔디 식재 등은 겨울 동안 멈춰야 했다. 꽁꽁 언 땅이 야속하기만 했다. 봄바람 불어와 스르르 땅이 녹고 그 위에 잔디와 화단이 꾸며질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또 한 번 나의 마음이 얼어붙는 일이 생겼다. 마당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 울타리와 대문, 그리고 주차 구역은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울타리 앞으로 1m 폭의 화단을 만들고 책방 앞으로는 둥근 화단, 나머지는 모두 잔디를 심자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건축 도면에 잔디와 자갈이 있을 자리를 구분하는 경계를 그려 보이면서 잔디보다는 자갈밭 위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게 뭐야? 잔디가 너무 조금이잖아?”
“잔디를 어떻게 다 관리해? 당신이 관리할 거 아니잖아.”
내가 다 관리할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자신 없었다. 잡초는 내가 뽑는다 해도 잔디를 깎는 건 남편의 몫이라는 건 뻔한 일이었다. 쭉 내민 입에서는 하고 싶은 말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안에서 맴돌기만 했다. 내 표정을 살피던 남편이 달래듯 말했다.
“전원주택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초기에 심었던 잔디를 다 뽑아 엎고 주차장으로 만든데.”
그뿐 아니라 내가 원했던 벚꽃 나무는 떨어지는 진액 때문에 정원수로 심기에는 부적절하다고 했다. 달달한 과일나무는 벌레가 많이 생기니 이 또한 안 심는 게 좋다고 했다. 머리로는 그렇겠구나 이해하면서도 마음은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시골로 온 건 자연에서 살기 위해서인데, 시멘트, 자갈로 마당을 다 깔면 무슨 의미야? 벚나무는 이래서 안 되고, 과실나무는 저래서 안되고, 그럼 어떤 나무를 심자는 거야?”
잔뜩 주눅든 아이처럼 울먹이며 내뱉었다. 그런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건축 도면에 잔디 부분을 조금 더 커지도록 선을 그었다.
입춘이 지나자 멈춰 있던 중장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마당에 잔디를 심는 날이 되었었다. 인부 서너 명이 도착했고 남편은 본인이 직접 마당에 경계선을 그어주겠다고 했다. 그가 나무 작대기를 들고 마당 한가운데 서서 선을 긋기 전에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조금만 뒤로 가라고 손짓했다. 그가 움찔거리며 반 발자국 물러섰다. 어릴 적 마당에서 손가락으로 조약돌 튕겨 땅따먹기 하던 생각이 났다. 잔디 구역을 조금 더 넓히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손짓을 했다. 이번에도 반 발자국 뒤로 물러서더니 더 이상은 안된다는 듯 작대기로 선을 긋기 시작했다. 물결무늬의 완만한 곡선이 땅 위에 그어졌다. 그곳에 경계석이 땅 속으로 박혔다. 잔디밭과 자갈밭의 휴전선이 생겼다. 다행히 잔디밭이 더 많이 점령하였다. 인부들이 네모난 잔디를 바둑판처럼 채워 넣었다. 그리고 너머에 작은 조약돌이 채워졌다.
산과 들 여기저기서 초록 새싹들이 돋아나기 시작하자 우리 집 마당의 잔디도 초록잎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친자연주의로 살아야지. 절대 제초제나 농약도 안 쓸 거야.’라고 다짐했다.
잔디 사이로 풀들이 올라오면 뽑기 시작했다. 남편이 강화 읍내에서 빨갛고 동그란 엉덩이 의자를 사다 주었다. 다리를 벌려 양쪽 고무밴드에 다리를 집어넣어 올리면 둥근 쿠션이 엉덩이에 찰싹 달라붙어 마치 엉덩이에 혹이 달린 것 같이 여간 우스꽝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쭈그리고 앉아서 한 칸 한 칸을 옮겨가며 풀을 뽑고 나면 며칠 동안 다리를 절뚝 여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엉덩이 의자를 달고 엉덩이 걸음으로 옮겨 다니며 부지런히 풀을 뽑았다. 밤에 누우면 눈앞에 잔디 사이로 올라온 풀들이 보였다. 잔디에서 풀들을 찾아 뽑는 재미가 솔솔 하다. 하지만 마당에 앉아 있을 시간은 턱 없이 부족하고 뽑는 것보다 또 다른 곳에서 올라오는 속도는 더 빨랐다. 여름이 되자 잔디가 더벅머리처럼 올라왔다. 남편이 잔디 깎기 기계로 마당을 오가며 제초작업을 했다. 깎은 잔디가 통에 가득 차면 울타리 너머 산애 쏟아붓기를 반복했다. 그는 연신 수건으로 땀을 닦아냈지만 온몸은 땀으로 샤워를 한 듯한 상태가 되고는 했다.
결국 봄이 오기 전 뿌려야 효과를 본다는 잔디 억제약인 <동장군>을 내 손으로 구입했다.
봄이면 벚꽃대신 목련 나무가 흰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붉고 굵은 사과 대추와 대봉감이, 그리고 모과가 주렁주렁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