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책방지기
“오늘은 또 어디 가려고?”
이른 아침, 출근 준비하는 내 앞에서 남편도 분주하길래 물었다.
“달맞이 광장에 꽃 심으러 가는 날이야. 출근하는 길에 그곳에 내려줘.”
작업복 차림에 모자를 쓰고 연장까지 챙긴 그를 하천 위 공터에 내려 주었다.
반장, 새마을지도자, 주민 자치위원회 부위원장, 남편이 가진 직함이다. 시골로 이사 온 다음 해, 이장님의 요청으로 마을 반장을 맡게 되었다. 우리 집 주변 삼십여 가구를 담당하여 이장님을 돕는 역할이니 부담 없이 하겠다고 했다. 다음은 월곶면 주민 자치위원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주민 자치위원회 중에서도 남편이 속한 생태분과는 마을의 지속 가능한 생태환경을 만들기 위해 회의와 워크숍뿐만 아니라 직접 나가서 자연환경을 가꾸는 일도 했다. 달맞이 광장에 꽃을 심고 안내 표지판을 정비하는 것도 주민 자치위원회 생태분과에서 진행하는 일 중의 하나였다. 하루는 열심히 원고를 읽어보고 고쳐서 다시 읽어보기를 반복하길래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주민 자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성과 보고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새마을지도자는 뭐지?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이 노래에 등장하는 그 새마을 운동이 맞다. 새마을지도자라는 이름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은 아니더라도 검정 고무신 신고 달리던 시절의 일 아닌가.
“새마을지도자의 역할이 뭐야?”
“마을을 가꾸고 봉사하는 거지.”
아직도 새마을지도자가 존재하는지 찾아보니 ‘새마을 운동에서 시작된 지도자로서 동네 환경 가꾸기, 교통질서 유지, 농산물 직거래, 불우이웃 돌보기 등 지역 봉사활동을 수행하고 마을 정비를 담당한다’라고 역할이 명시되어 있다. 이 모든 활동을 다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을의 궂은일에 앞장서서 하는 건 맞다. 마을 길 제초 작업을 하고 농수로를 치운다. 도로 정비가 필요한 부분이 있는지, 가로등, 정자, 운동 시설 등의 마을 시설물을 살피고 그에 따른 조치를 한다. 불법 쓰레기와 주차 단속을 하고 마을 하천에서 금지된 낚시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계도하기도 한다. 그래서 산책하러 나가도 남편은 항상 이리저리 살핀다.
누군가는 차기 이장님이라고 치켜세우고, 어떤 이는 곧 시의원으로 나오려고 하는 거 아니냐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손사래 쳤다. 필요한 때가 있으면 언제든 도와줄 수는 있으나 앞에 나서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학생이 반장이나 회장은 싫지만, 줄반장이나 봉사부장 정도로 학급을 위해 봉사는 하겠다는 것과 같은 마음이다.
남편은 시골로 들어오기 전 농사 한번 안 지어본 서울 태생이지만, 마을 어르신들이 부르면 달려가 농사일을 돕는다. 봄이면 모 심기 전에 필요하다는 모판흙 덮기, 여름에 마늘종 뽑기, 가을엔 깨 털기, 고구마 캐는 일로 도와 달라고 부르면 언제나 “예 내려갈게요.”라며 나선다. 농사일뿐이겠는가. 굴뚝을 고치고, 창고 문 달고, 큰 짐을 옮기는 등 언제든 힘센 장정을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일손을 보탰다. 힘쓰는 일뿐 아니라 아랫집 할아버지의 인터넷 쇼핑을 도와주기도 했다.
옆 마을까지도 진출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집 장롱을 밖으로 빼야 하는데, 도와줄 사람이 마땅치 않다고 그 마을 이장님이 부탁하니 달려가고, 포도송이에 초록 알 이 맺히면 봉지를 씌워야 하는데 일손이 없다고 걱정하는 소리를 듣고 도와주겠다며 부탁도 하기 전에 먼저 나섰다.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힘든 거 별로 없는데.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지”라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런데 이 반장, 왜 책방 주인으로서 해야 할 일에는 게으름 피우는 거지?”
책방 일은 뒷전이다.
오늘도 책방은 무인책방이다.
“이 반장~ 오늘은 어디 가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