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책방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친근하다.
언제부터인가 00 서점, △△서림 대신 ‘책방’이라는 이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서점이 ‘책’이라는 물건을 판매하는 곳이라면, 책방은 책과 사람,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는 곳이다.
몇 해 전, 용인 외곽의 한 시골 책방에서 이병률 시인의 북토크가 있어 참석한 적이 있다. 어둠을 뚫고 찾아온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작가가 속삭이듯 전하는 이야기를 어둠 속에서 빛나는 부엉이 눈으로 들었다. 그날의 책방은 시골마을의 사랑방 같았다.
책방을 열고, 시골 책방에 어울리는, 시골 마을을 위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그 시작은 무조건 북토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작가를 섭외하지?’
‘작가는 어떻게 섭외해야 하지?’
‘사례비는 얼마나 드려야 할까? 참가비로 충당할 수 있을까?’
아무 정보도 없었다.
“저기요, 북토크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돼요?”라고 물어볼 곳도 없었다.
10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인연이 된 H언니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마침 그곳에서 출간된 『불량주부 명랑제주 유배기』로 북토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저자 김보리 작가는 오십에 홀로 제주로 떠나 한 달 살이를 했다. 제주살이의 모토는 ‘덜 먹고 많이 걷기’였다. 그는 홀로 제주의 푸르고 검은 올레길과 오름을 걸으며, 함께했던 사람들,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보냈다. 그 여정에 늘 함께한 음식은 김밥과 막걸리였다.
이런 콘텐츠라면 우리 책방과도 잘 어울리는 북토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포와 강화를 가로지르는 염하강에는 아직도 군사 철책이 남아 있다. 군사적 경계라는 역할은 강물과 함께 사라진 지 오래지만, 철책은 쉽게 철거되지 못했다. 대신 정리되지 않은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평화누리길이 만들어졌다. 책방에서 내려다보이는 염하강 철책길은 평화누리길 1코스이기도 하다. 대명항에서 시작해 문수산성 남문에서 끝나는 14km 코스다. 책방에서 1코스의 마지막이자 2코스의 시작점까지는 2km 남짓. 『불량주부 명랑제주 유배기』와 연결되는 ‘걷고 먹는’ 북토크를 기획했다.
북토크 참가자는 지인들 중심으로 모집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지인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테니까. 작가의 책을 준비하고, 함께 걸을 길을 미리 걸어보고, 김밥과 강화 특산품인 인삼막걸리도 준비했다.
파란 하늘에 솔솔 부는 바람, 걷기에 더없이 좋은 9월 하순이었다. 설렘과 기대 속에 모인 주최자, 참석자 모두 상기된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책방을 나섰다. 마을 길을 지나 초가을 빛으로 누렇게 변해 가는 들판과 철책 길을 따라 걸었다. 평소 조용하던 길에 생기가 돌았다. 삼삼오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문수산성 북문이었다.
갔던 길을 돌아와 책방에서 본격적인 북토크가 시작되었다. 작가님은 이야기보따리뿐 아니라 굿즈 선물까지 정성껏 준비해 오셨다. 작가님이 제주에서 마주한 풍경들은 함께 여행하는 듯 실감 났고, 길에서 건져 올린 사유에 깊이 공감했다. 북토크가 끝난 뒤에는 강화 풍물시장에서 사 온 인삼막걸리를 마시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북토크가 처음이라며 수줍어하던 작가님도 막걸리 덕분에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이야기도 한층 무르익었다. 다정하고 유쾌한 북토크였다.
이후 H언니의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 여행 에세이 『지금 여기, 포르투갈』 출판기념 북토크와, 지인 Y의 『잠깐 스트레스 좀 풀고 올게요』강연식 북토크도 진행했다. 참가자 대부분이 지인이었고, 그들은 멀리서도 찾아와 주었다. 북토크를 해 준 두 지인은 강의비나 사례비를 받지 않았고, 참가자에게 참가비는 책 구매로 참여하게 했다.
다음 해, 경기콘텐츠진흥원이 운영하는 지역서점 문화지원사업에 참가 신청서를 냈다.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 보는 나는 기획이라면 자신이 있었고, 다행히 선정되었다. 덕분에 한 해 동안 여섯 번의 색다른 북토크를 진행할 여력이 생겼다. 한 번은 몽골 여행기를 주제로 마당에 게르 대신 텐트를 치고 1박 2일 북토크와 캠프로 운영하기도 했다. 텐트를 대여해 마당에 직접 설치를 하고, 행여 비가 오면 어쩌나 조바심이 들기도 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지만 저녁 모닥불과 저녁 식사, 간단한 아침 식사까지 준비해야 하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앞에서 일은 내가 저지르고 뒷수습은 본인이 다 해야 한다며 남편의 원성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플리마켓 날에 맞춰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하는 클래식 북토크 및 작은 음악회도 열었다. 지원사업 덕분에 시골까지 찾아오는 작가님들께 넉넉하지는 않지만 사례비를 드릴 수 있었고, 참가자들에게 책과 간식도 제공할 수 있었다.
SNS로 참가자를 모집하자 지인뿐 아니라 책방을 처음 찾는 사람들도 신청해 책방이 가득 찼다. 지원사업은 정산과 결과보고서 등 신경 쓸 일이 많았지만, 책방이 북적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책방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재방문이나 입소문도 기대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다음 해에는 지원사업에 선정되지 못했다. 하지만 북토크는 계속하고 싶었다. 작가에게 최소한의 사례비라도 드리기 위해 만 원 정도의 참가비를 받기로 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지인이나 북클럽 회원 외에는 신청자가 거의 없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여도 마찬가지였다. 구석진 시골까지 어렵게 와 주는 작가님을 초대하고 사람이 적을까 봐 늘 마음 졸였다. 매번 지인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그 또한 불편했다. 어쩌다 시골 책방 주인이 된 남편은 조바심하는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태평했다.
도심의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은 책방들, 끊임없이 독서 모임과 문화 행사를 여는 동네 책방들이 부러웠다. 도서관이나 공공기관에서는 무료 강연과 북토크도 많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다. 이 시골의 작은 책방까지 참가비를 내고 찾아올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막연한 희망은 잔혹한 실망으로 돌아왔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북토크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옆 마을에 사는 K가 말했다. 봄길책방 덕분에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문화적 혜택을 누리고 있다며, 자신의 삶이 봄길책방으로 인해 달라졌다고, 봄길책방이 자신의 인생에 큰 갈림길이 되었다고 했다. 그 말이 나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한 명이라도 괜찮다. 책방이 생겨서 좋다고 말해 주는 사람들과 연대하기 위해, 변두리 마을에 문화를 꽃피우기 위해, 시골 책방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시골 마을,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되는 봄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