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 책방지기를 찾습니다.

시골책방 이야기

by 작은 의미

여행을 좋아하던 우리 부부는 시골살이를 시작한 뒤 한동안 어디로도 떠나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탁 트인 시골 풍경이 여행 같아서, 남편은 굳이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주말이면 귀촌한 우리를 만나러 오는 지인들이 있었고, 정식 오픈 전부터 책방을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었으니 집을 비우기가 쉽지 않았다.




시골로 들어온 지 꼭 한 해가 지난 설 연휴, 이틀간 지방에 있는 친척 집에 가기로 했다. 1년 만에 집을 비우는 이틀이었다. 책방 문을 닫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SNS에 ‘일일 책방지기를 찾습니니다’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몇몇이 관심을 보였고, DM으로 소통한 끝에 책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분이 오기로 했다. 그녀는 이직을 준비하며 잠시 쉬고 있었다. 언젠가 책방을 운영해 보고 싶은 소망이 있어, 이틀 동안의 책방지기 경험을 꼭 해 보고 싶다고 했다.


일일 책방지기를 하기로 한 첫날, 그녀가 조용히 책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리는 상기된 얼굴의 그녀에게 책방 운영과 관련해 알아야 할 것들과 부탁의 말을 전하고, 젖먹이 아기를 맡기고 첫 외출을 하던 때처럼 조심스레 책방을 나섰다.


그날 저녁,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첫 손님이 왔는데, 너무 떨렸어요. ㅎㅎ 설에 고향에 왔다가 책방이 생긴 걸 보고 깜짝 놀라 들렀다고 하네요. 조심조심 커피를 내려 드리고, 최선을 다해 친절하게 응대했어요.’

주인이 없는 동안 혹여 누가 될까 봐 최선을 다했고, 그 시간이 보람되었다고 했다. 이틀 동안 혼자 있는 시간에는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며, 사진과 함께 글을 남겼다. 그녀가 찍은 사진 속 책방은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책방을 비운 이틀간 걱정할 만한 일은 없었고, 일일 책방지기는 조용한 시골 책방과 제법 잘 어울리는 이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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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우리 부부는 조금 더 욕심을 내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초원과 사막, 별이 쏟아지는 밤을 기대하며 과감히 7박 9일의 몽골 여행을 계획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책방은 직장 동료였던 J와 슬&준이네 가족이 지켰다.

다독가인 J 역시 책방지기가 꿈이지만, 나처럼 무모하지는 않아 현재의 삶에 충실하며 먼 미래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는 기꺼이 일일, 아니 오일 간의 책방지기가 되겠다고 했다. 책방지기 역할뿐 아니라 갑작스럽게 예약된 북스테이의 호스트까지 맡느라 낯설고 힘들었을 텐데, 그녀는 바쁜 와중에도 또 다른 재미를 느꼈다며 책방지기로 지낸 5일이 휴식 같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J가 떠난 뒤에는 슬&준이네 가족이 3일 동안 지켰다. 그들은 책방 오픈 시간 전 이른 아침에 강화 나들이를 다녀오고, 마당에서 물놀이하며 시골 외갓집에 놀러 온 기분으로 지냈다. 손님이 없어 걱정이라며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손님에게 책을 판매하고 카드 단말기로 결제도 해 보고 싶었는데, 손님이 없어서 본인이 직접 책을 사고 카드 결제까지 해 보았다며 신나 했다. 한여름 더위에 휴가철이라 손님이 없을 거라고 했지만, 일일 책방지기로서 매출을 올려 보겠다며 지인을 불러 영업까지 했다.


지난가을, 강화의 리하쌤이 2박 3일 동안 일일 책방지기가 되어 주었을 때에는, 얼마 전부터 마당에 머물던 고양이 람쥐(꼬리가 다람쥐꼬리 같아 붙여준 이름)에게 먹이를 주는 일까지 부탁했다. 리하쌤은 책방지기와 함께 냥이 집사 역할도 기꺼이 맡아 주었다. 아침저녁으로 람쥐에게 밥을 주는 것뿐 아니라, 책방의 책을 소개하는 글을 SNS에 올리고 타투와 작은 책 만들기 이벤트도 준비해 왔다. 그녀의 SNS를 보고 옛 제자가 책방을 찾아오기도 했다.


“일일 봄길지기로서의 체험! 손님을 기다리며 정리되는 마음의 설렘, 첫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의 설렘, 마지막 손님을 배웅하고 문을 닫을 때의 뿌듯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하루였어요.”


음악을 들으며 책장의 먼지를 털고, 글을 쓰고,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부르며 자신에게 부여된 일상으로부터 잠시 단절된 혼자만의 시간. 때때로 마주하는 낯선 손님맞이의 경험은 일상의 거리로부터 멀어진 여행이었다. 일일 책방지기는 책방 주인에게도, 그 역할을 맡았던 이들에게도 휴식 같은 시간을 선사했다.




주인이 부재중인 동안에도 책방을 지키는 사람들은 일일 책방지기만이 아니었다. 해외에 있는 딸을 만나러 가느라 열흘 넘게 책방을 비워야 했다. 마침 여름휴가 시즌이라 북스테이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을에서 남편과 삼총사인 이장님과 총무가 책방 청소를 맡아주기로 했다.

우리 책방에서 북스테이를 경험한 손님을 대상으로 예약을 받았고, 할인된 가격으로 2박 이상을 적용했다. 예약 손님 중에는 외부 손님도 있었고, 지인도 있었다. 손님이 퇴실한 뒤에는 이장님과 총무가 청소하기로 했고, 지인들이 머문 뒤에는 각자 하기로 했다.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친구 J 부부도 하루 동안 책방에 머물며 청소와 책과 물품들을 정리하겠다고 했다. Y도 2박 3일 머무는 동안 책방지기와 청소를 맡겠다고 했다. 그녀가 머문 마지막 날, 마지막 정리를 하려고 하는데 이장님과 총무는 청소는 자신들의 몫이라며 나섰고, J 부부도 본인들이 정리하겠다고 나서서 서로 난감해졌다고 한다.

마을 이장님과 총무는 매일 책방에 들렀다. 손님이 떠난 뒤 침구를 빨고, 이불은 햇볕에 말려야 한다며, 마당 한가운데 빨랫줄을 만들어 널었다. CCTV 화면 속 마당에는 새하얀 침구가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바람을 맞으며 펄럭이고 있었다.


곧이어 이웃 마을의 늘보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오늘 책방에 가보았더니 별일 없이 잘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주인이 없어도 책방을 지키는 사람들.

이곳에서는 모두가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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