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시골 책방입니다.
입춘이 지났어도 여전히 꽁꽁 얼어붙었던 날이 이어지더니 어제부터 기온이 오르며 염하강의 유빙이 녹아 흐르기 시작했다. 겨울 추위가 꼭짓점을 찍고 내려오자, 내리막길 자전거에 가속이 붙듯 봄이 오는 속도에도 가속이 붙은 듯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오후, 분홍색 자전거가 마당으로 들어왔다. 서너 명은 자동차를 타고, 누군가는 걸어서 책방을 찾아왔다. 미술 수업이 있는 날이다. 손가방에서 도화지와 연필통을 꺼내고, 간식을 꺼내 놓는 사람, 숙제해 온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 수업 종이 울리기 전 왁자지껄한 교실 모습 그대로다.
선생님은 화이트보드에 동그란 원을 그리며 설명했고, 수강생들은 흐트러짐 없이 집중했다. 민숙 언니는 카메라로 녹화도 했다. 설명이 끝나자 각자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미술을 전공했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천안과 서울을 오가며 만남을 시작하던 어느 날, 우리는 서울역에서 만났다. 남편은 이젤과 화구가방을 어깨에 메고, 한 손에는 종이가방을 들고 있었다. 내가 그게 뭐냐고 묻자, 그는 대답 대신 경복궁으로 가자고 했다.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그가 들고 있는 짐이 더 의아했다.
경복궁에 도착한 그는 향원정 앞 연못가로 가더니 “여기가 좋겠다”며 자리를 잡고 짐을 풀었다. 잔잔한 연못에는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운 누각과 푸른 소나무가 물속에 닿아 찰랑이고 있었다. 남편은 분주히 이젤을 펼치고 하얀 도화지에 그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조금 으쓱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는 그림을 그리다 말고 종이 가방에서 준비해 온 간식을 꺼냈다. 식빵과 우유였다. 집 냉장고에서 가져온 딸기잼 병을 열어 식빵에 철썩 발라 우유와 함께 건넸다. 카페나 제과점에서 샌드위치를 사 온 것도 아니고, 집에서 정성껏 만들어 온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집에 있는 재료를 가져와 그 자리에서 만들어 주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순수해 보이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남의 시선이나 포장에는 관심 없다. 투박한 간식은 그를 꼭 닮았다.
두어 시간쯤 지나 수채화 색연필로 채색을 마치고 그림을 완성했다. 그 그림을 받아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고, 결혼 후에도 벽 한쪽에 걸어 두었다. 잦은 이사를 거치며 둘 곳을 찾아 이리저리 옮기다가 결국 창고로 들어갔고, 끝내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버려졌다.
시골로 들어오면 남편이 다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시골의 사계절을 나의 글과 남편의 그림으로 남기고 싶기도 했다. 노을 지는 책방을 그림으로 담아 굿즈를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좀처럼 시작하지 않았다.
마을 아주머니 몇몇이 캘리 배운 이야기, 어반 스케치를 배웠던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순자 아주머니는 몇 해 전 손주를 돌보느라 딸이 있는 시내에서 함께 살 때, 평생학습센터에서 어반 스케치를 배웠는데,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명숙 아주머니는 현재 캘리를 배우고 있는데 글자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도 했다.
그 말을 듣던 남편이 말했다.
“기초부터 배우셔야 해요. 보고 따라 그리는 그림은 당장은 완성된 것처럼 보여도 더 이상 늘지 않아요. 자기 그림이 안 되죠.”
그러자 민숙 언니가 말했다.
“그럼 사장님이 가르쳐 주세요. 제가 배울 사람 모집할게요. 포내리에 배우고 싶은 사람 많을걸요?”
며칠 뒤, 일곱 명의 수강생이 모집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수강생의 평균 연령은 60대였다.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진행하기로 했다. 남편은 수업에 필요한 미술 재료를 구입했고, 마을회관에서 버린다고 내놓은 커다란 화이트보드도 칠판도 가지고 왔다. 순자 아주머니와 명숙 아주머니를 제외하면 그림을 배우는 것은 물론 4B 연필을 쥐어 본 것도 학창 시절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수업은 선 긋기부터 시작했다. 지루할 수도 있지만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기로 했다. 오늘은 입체 원을 그리는 날이다. 수강생들은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연필로 선을 그었다.
평소 책방에 울려 퍼지던 조용한 피아노 재즈 대신 7080 가요가 흘러나왔다. 주름진 손에 쥔 연필이 하얀 도화지 위에서 춤추듯 움직였다.
“선생님, 제 그림은 절구통이 돼 버렸어요.”
“저는 너무 시커멓게 돼 버렸어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그림을 원망했다. 선생님은 그림을 보완해 주거나 덧입혀 주며 하나하나 짚어 다시 설명했다. 그리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지난 시간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더 나이 먹기 전에 진작 가르쳐 주지. 포내리 이사 오고 나서 바로 가르쳐 줬으면 좋았을 텐데.”
“떠드는 사람 이름 적는다~”
나뭇잎 구르는 것만 봐도 웃는 여고생들처럼 까르르 웃었다.
순자 아주머니는 일상의 탈출구를 찾은 것 같다고 했다. 포내리가 고향인 그녀는 어린 시절 책방 뒷산을 뛰어다니며 놀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아련한 기억과 지금 그림을 배우는 시간이 어우러져 단어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이 시간이 되면 단어가 떠올라요. 향기, 음악, 정, 따뜻함 같은 단어요, 책방에서 나는 책 냄새, 난로에 나무 타는 냄새도 좋고, 음악 소리도 좋고, 우리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도 좋아요. 공동체가 되었다는 안위가 느껴져요.”
“우리 마을에 이런 문화공간이 있어서 너무 좋아요. 나는 친구들에게 자랑해요. 우리 마을에 책방이 있다고.”
“맞아. 책은 읽지 않아도, 아니 눈이 안 좋아서 못 읽는 거지. 책은 못 읽어도 책방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좋은 동네지.”
수강생들은 열심히 배우고 그려서 책방과 마을회관에 전시회를 열자고 했다. 모두 그날을 기대하며 환하게 웃었다.
수강생들이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 나누는 동안, 남편은 주전자의 차를 데우고, 난로에 장작을 채워 넣었다.
봄길 책방지기와 포내리 미술 선생님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