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책방이기에
‘주인이 없으면 무인책방입니다. 들어오셔서 편하게 이용하세요.’
책방 유리문에 달려 있는 팻말이다.
‘주인이 없으면 무인책방’이라는 것은 주인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는 뜻이다.
팻말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문을 여는 사람도 있고, 무인책방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주인이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는 손님도 있다.
일요일, 북스테이 손님의 조식을 준비해 놓고 서울로 나간다. 서울에 위치한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두 시에서 세 시 사이다. 토요일 북스테이를 받지 않고, 일요일은 휴무일로 할까 고민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주말이 가장 선호도가 높은데 손님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북스테이 손님이 오전 열한 시에 퇴실하면 자동 잠금장치로 문을 닫아 둘까도 생각했다. 책방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해도, 누군가 김포 끝자락까지 어렵게 찾아왔는데 문이 닫혀 있다면 허탈할 것이다. 결국 책방을 잠그지 않기로 했다. 대신 책방 이용 방법을 적은 무인책방 안내판을 만들었다. 판매 서가와 책방지기 서가 안내, 책 구입 방법, 커피와 간단한 음료 이용 방법, 결제 방법까지 적어 두었다.
일요일, 무인책방을 즐겨 찾는 사람들이 생겼다. 평화누리길을 걷다가 책방을 발견하고 단골이 된 G는 이웃 마을에 산다. 주말이면 운동을 마치고 책방에 들러 익숙하게 커피를 내리고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한 번은 책방이 처음인 손님에게 무인책방 이용 방법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일요일마다 읽을 책과 독서대까지 챙겨 와 조용히 책을 읽는 청년도 있었다. 그는 늘 음료 한 병 값을 결제했다. 아마도 그것이 자신이 정한 공간 이용료였을 것이다. 일요일, 서울에서 돌아와 낯익은 청년의 자동차가 보이면 괜히 반가웠다.
어느 날은 교회에서 조금 늦게 돌아와 서둘러 책방 문을 여니,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 혼자 계셨다. 그는 염하강 쪽으로 의자를 돌려놓고 앉아 책을 읽고 계셨다. 그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책방 뒷문을 닫고 나온 적도 있다. 혼자 온 사람, 연인, 가족이 테이블 가득 앉아 있는 날도 있다. 그럴 때면 마음이 분주해진다. 미안한 마음도 든다. 무인책방인 것을 알고 온 손님도 있지만, 모르고 온 손님은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리다가 주문을 하거나 궁금한 것을 묻는다.
늘 이렇게 손님이 많으면 좋겠지만, 사실은 손님이 한 명도 없는 날이 더 많다. 평일에는 마을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 외지에서 일부러 시골 구석에 있는 책방을 찾아오는 경우는 북스테이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어느 날인가부터 일요일이 아닌 평일에도 책방 입구 유리문에 ‘주인이 없으면 무인책방’이라는 팻말이 걸려있었다. 남편이 걸어 둔 것이다. 마을에서 맡은 일이 많아진 남편은 평일이면 여기저기 다니느라 바빴다. 손님도 거의 없는 평일에 책방만 지키고 있는 것은 무료하고 비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무인책방이라는 팻말만 걸어 두고 책방 주인이 자주 자리를 비우는 것이 나는 내심 못마땅했다. 가끔 책방을 찾은 지인들이 주인이 없다며 나에게 연락한다. 나는 부글부글 끓는 마음으로 남편에게 전화한다. 어디냐고 물으면, 그는 회의 끝나고 들어가는 중이라거나 마을 사람들과 밥 먹고 있다고 말한다. 급할 것도 미안할 것도 없다는 듯 곧 들어가겠다고 할 뿐이다.
스테이 손님이 단독으로 사용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책방은 늘 열려있다. 사람들은 묻는다. 무인책방으로 운영해도 괜찮냐고, 책이 없어지거나 물건이 훼손되지는 않냐고. 사실 책이 없어졌는지 확인해 본 적은 없다. 가끔 당연히 있어야 할 책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지만, 그럴 때면 판매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무인 상점을 무례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도 있지만, 다행히 이 시골까지 찾아와서 책방을 그렇게 사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느 날 통진의 빵집에 갔을 때였다. 주인은 나를 알아보고 자신도 책방에 다녀왔다고 했다. 책을 구입하고 싶었지만 무인책방이 익숙하지 않아, 망설이다가 남겨진 번호로 전화했다고 한다. 책방 주인은 책 제목을 노트에 적고 돈은 입금하면 된다는 안내를 받았고 봄길 로고 도장도 찍으라는 설명을 했다.
빵집 주인은 같은 자영업자로서 걱정이 돼서 물었다고 한다.
“정말 그렇게 해도 돼요? 그런데 누가 책을 더 가져가면 어쩌려고요?”
“아이고. 굳이 거기까지 와서 책을 가져가는 사람이면 그냥 드려야죠.”
책방 주인이 그렇게 말하며 웃더란다.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지인들 역시 주인이 있든 없든 늘 열려있는 책방을 걱정하며 한마디 덧붙였다.
“너네 부부는 참 별나.”
“무슨 일이야 있겠어? 그냥 믿는 거지.”
믿고 싶다. 이 시골까지 책방을 찾아오는 사람들이라면 조용한 시골책방에서 책과 만나는 시간,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 일 것이다. 그들의 고운 양심을 믿고 싶다. 아니 믿는다.
책방을 열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중년의 여자 손님이 찾아왔다. 책방을 둘러보다가 남편 혼자 있는 것이 불편했는지, 무서웠는지, 급히 책을 고르고 계산해 나갔다고 한다. 상업지구도, 주택가도 아닌 시골 마을 언덕 위 책방에서 덩치 큰 남자 주인은 누군가에게 불편한 존재였을 수 있다. 주인이 없는 무인책방이었다면 더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갔을지도 모른다. 무인책방은 혼자 조용히 책을 읽고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하지만 책방은 책만 파는 곳, 책만 읽는 곳이 아니다. 책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연결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함께라는 가치가 생성되는 곳이다.
봄길책방은 주인이 없으면 무인책방, 주인이 있는 날은 시골책방이다. 어떤 날은 혼자 오롯이 책과 만나는 공간이 되고, 어떤 날은 큐레이션 된 책을 만나고, 말 많은 책방지기와 차 한잔 나누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 시골까지 책방을 찾아오는 누군가를 위해 주인이 있든 없든, 오늘도 책방 문은 열려있다.
조금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언젠가는 평일에도 책방을 찾는 사람이 많아 주인이 꼼짝없이 책방을 지켜야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무인책방입니다. 언제든 편히 쉬다 가세요’라고 적힌 팻말이 필요 없어지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