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공존
뒷산 나무에 스피커가 달린 듯 새들의 합창 소리가 울려 퍼진다.
참새, 까치, 직박구리, 박새가 돌림노래하듯 지저귄다. 초여름부터는 뻐꾸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뻐꾹뻐꾹’ 노랫소리에 어릴 적 친구들과 손바닥을 마주치며 놀던 장면이 떠오른다. 여름밤, 불빛 하나 없는 산에서 들려오는 소쩍새 울음소리는 시골 마을의 고요가 깊게 내려앉는 듯해 좋다.
하루는 햇살이 좋아 책방 문을 활짝 열어 놓았더니 어린 새 한 마리가 책방 안으로 날아들어 왔다. 예기치 않은 손님에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나보다 더 놀란 새는 불안한 날갯짓으로 책방 안을 빙빙 돌다가 책장 위에 앉았다. 새가 더 이상 동요하지 않도록 숨죽여 서 있었다. 이리저리 고개를 움직이며 살피던 작은 새는 겨우 들어왔던 길을 찾아 밖으로 날아갔다. 그제야 나도 멈췄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며칠 뒤, 또 다른 새 한 마리가 순식간에 날아들어 책방을 한 바퀴를 돌더니 세모 통창을 행해 총알처럼 날아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깜짝 놀랐지만 차마 다가가 보지 못했다. 남편을 소리쳐 불렀다. “쯧쯧~ 직박구리네.” 남편은 새를 산에 묻어 주었다.
얼마 전에도 책방 앞에 죽은 새가 있었다. 그 새도 창문에 부딪혀 떨어진 듯했다.
국립생태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에서 연간 약 800만 마리의 조류가 유리창이나 투명 방음벽에 충돌해 죽었다고 하는데, 책방 유리창도 일조했을 것이다.
누군가 통창에 독수리 스티커라도 붙이라고 했다. 도심을 관통하는 고속도로 방음벽에 독수리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조류 충돌 방지용이다. 벽처럼 세워졌던 방음벽이 운전자의 시야 확보와 채광, 그리고 도시 미관 개선을 위해 투명 방음벽으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투명 방음벽에 새들이 충돌하는 일이 많아지자 이를 막기 위해 맹금류 스티커를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스티커는 미관만 해칠 뿐, 조류 충돌 방지에는 큰 효과가 없다고 한다.
집을 짓기 전 이곳은 동산 아래 있는 밭이었다. 새들은 동산 나무에 앉아 있다가 밭 위를 날아다니며 애벌레와 곤충을 먹고살았다. 거리낌 없이 날아다니던 공간에 어느 날 건물이 생겼다. 미처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새들은 유리창에 부딪히기도 하고, 들어가지 말아야 할 막힌 공간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새들의 공간을 뺏은 것 같아 미안했다. 다행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새들은 더 이상 유리창에 부딪히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도 건물을 피해 날아다니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가을이면 포내리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 학익진을 이루며 날아다니는 기러기다.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들판에서 갯벌 위로 떼 지어 날아다니며 가을 하늘을 수놓는다. 그즈음 황금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하고, 논 여기저기에는 허수아비가 세워지고 바람개비가 빙글빙글 돈다.
평화로운 가을 들녘에 언젠가부터 총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5분 간격으로 반복되는 소리에 처음에는 어디서 나는지 알지 못했다. 군인들이 훈련하는 건가 싶었지만, 온종일 같은 간격으로 이어지는 총소리가 이상했다.
“무슨 소리야? 훈련해?”
“논에 새 쫓는 소리야. 논에 폭음기를 설치해 놨대.”
남편의 말에 깜짝 놀랐다. 새들은 총소리에 깜짝 놀라 날아갈 것이다. 그러나 놀라는 것은 새뿐만이 아니다. 마을 전체가 해 지기 전까지 5분 간격으로 들썩인다. 책방에 온 손님은 철책이 보이는 곳이라 정말 군인이 훈련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봄부터 여름 내내 어렵게 키운 농작물을 새들의 만찬으로 내어줄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총소리는 소음을 넘어 공포에 가깝다. 예전 농부들이 “훠이, 훠이” 하며 새를 쫓던 소리가 “조금만 먹고 어이 가라”는 달램이었다면, 지금 폭음기에서 쏘아 올리는 “탕! 탕!” 소리는 “가까이 오면 안 된다.”는 단절의 신호처럼 들린다.
“논 주인 찾아가서 말 좀 해봐. 손님들 깜짝 놀라겠어.”
“마을 할머니네 논이야. 난 말, 못해.”
“그러면 민원이라도 넣어봐.”
“민원 넣어도 소용없대.”
남편은 어쩔 수 없다며 곧 추수한다고, 그때까지만 참자고 했다.
보름 남짓, 논 위를 날아다니던 기러기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다른 먹이를 찾아 떠났을 것이다.
추수가 끝나자 총소리는 멈췄고, 휑해진 논은 다시 기러기들의 자리가 되었다.
사람이 비켜서니 새들이 다시 날아온다.
함께 산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 물러서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총소리 대신, 같은 하늘 아래 머물기 위한 다정한 방법은 없을까?
해 질 녘 노래 부르며 날아가는 기러기들에게 손 흔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