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Nut Cracker Dec 10. 2022
221210_부산 남성보이스단 후기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지만 또 어떤 건 멀리서 볼 땐 비극이나, 가까이서 보면 희극인 일도 있다. 이번 부산에서 열린 자리가 그랬다.
강의 한참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먼 거리며 짧은 강의 시간, 게다가 온통 남자들밖에 없는 환경.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강의를 며칠 앞두고 주최측에서 참여자들이 쓴 토론문을 보내왔는데, 걱정이 배가 됐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얘기도 있었지만, 개중 일부는 성평등 정책의 역사나 흐름에 대한 이해 없이 개인적인 경험에 기대어 있다 보니 헛발질하는 경우도 있었고, 애초 왜곡된 정보에서 출발해서 기존 사회통념을 그대로 드러낸 글도, 사회 구조적 차별에 대한 지적 없이 개인의 노력으로 귀결되는 아쉬움도 있었다. 아찔했다. 아니, 좀 솔직한 심정으로 이렇게 자리를 내서 발언권을 줬다가 괜히 혐오 발화가 확산되지는 않을까 혼란스럽고 답답했다. 부랴부랴 기존 강의안을 뜯어고치고 담당 선생님께도 염려의 말을 전했다.
막상 현장에서 강의하고 참여자를 만나 토론 하는데, 앞선 걱정이 아주 기우는 아니지만서도 또 한편으로는 너무 염려하고 움츠러들어서 변화의 가능성을 간과한 게 아닌가 싶어 반성했다. 언어는 달랐을지언정, 그 문제의식까지 간과하고 넘길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한 참여자는 기존 학교에서 반복되는 폭력예방교육에 아쉬움을 토로했는데, 이는 젠더기반폭력에 대한 이해없이, 피/가해로 양분되는 교육 내용에 대한 비판과 목격자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건 기존 연구자들의 지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뼈아픈 얘기도 있었는데 페미니즘 영역에서 남성들이 관심 가질 법한 의제를 발굴, 확장하지 못한 것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를 단지, ‘이건 왜 안해?’로 치부할 게 아니라, 남함페가 왜 더 많은 남성들이 관심 가질만한 의제를 형성하지 못했나로 생각해볼 법 했다. 약간 변명하면, 개인적으로는 교육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게 그 그 방법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하나의 방법, 수단일지언정 전체 기조나 의제를 만드는 큰 그림 없이는 너무 미미한 활동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갠적으로 교육이 먹고사니즘과 크게 결부해 있기에 간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그보다 더 확고하게 어떤 의제를 형성해나갈 필요를 느낀다.
끝나고 나서 드는 아쉬운 점과 고민되는 지점
먼저, ‘역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까? ‘역차별’로 시작되는 많은 말들을 가만 들어보면 그 안에 여성을 향한 선행 차별, 온정적 성차별, 가짜뉴스 같은 걸 쉽게 발견하다보니 약간 조건반사적으로 그 이야기들을 무시했다. 근데 또 그토록 반복되어 사용되는 데 나름의 이유와 정동이 있을 터,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내가 뭐 운영자도 뭐도 아니지만서도, 이렇게 남성을 타게팅하는 사업이 전략적으로든 실효성 때문이든 여러모로 계속될 것 같은데, 이대로 운영해도 괜찮을까? 특정 성별만 모집할 이유가 뭔가 싶기도 하고, 그게 또 성별이분법을 강화할 것이 염려되며, 이번에는 그나마 교육이나 인권단체 등 활동경험 있는 분들의 목소리가 속속 잘 반영되어 선순환을 이끌었지만, 자칫 남성 피해자 담론으로 굳어질 지 모른다는 염려도 늘 있다. 그래서 더더욱 공론장으로 잘 기능하기 위해, 성별에 구애 받지 않고 함께 활동하는 장이 됐으면 좋겠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안전한 공론장을 만들기 위한 교육과 퍼실 등이 뒷받침 되어야겠지만… 또 시민사회단체 전반에 흉흉한 소문이 도는 이 시국에 대체 이게 무슨 염치없는 부탁인가 싶다.
여튼 집 가는 기차에서 피곤함을 무릅 쓰고 이렇게 후기를 남기는 건, 정말 그 자리가 좋아서, 또 한편으로는 반성의 의미. 한동안 현생에 치이고 솔직히 좀 안일해져서 어떤 가능성을 간과하지 않았나. 사람은 숫자가 아니고 그냥 몇 개의 활자에 담기지도 않는다. 다양한 맥락 속에서 입체적으로 존재하며, 저 나름의 속도로 변해간다.
그리고 손희정 선생님 책에 나오는 말마따나, 욕만 하고 넘어가는 건 참 쉽다. 하지만 진짜 변화를 만드는 건 어떻게든 부득부득 뭐라도 하는 사람들 덕분이라지. 오늘 자리도 그랬다. 사람들은 참 부지런하고 똑똑하고 열심이다. 그러니까 나나 잘 하자. 나만 잘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