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by Nut Cracker


이번 한국일보 젠더살롱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입니다.


언젠가 꼭 중년남성,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문을 읽는 많은 독자 중 아저씨가 있기 때문이고, 교육할 때 어렵게 느껴지는 대상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제 주변의 많은 아저씨가 있고 내가 가야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무작정 이들을 '기성세대'로 통칭하여 비판하기보다, 이들의 변화 가능성을, 또 변화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서, 주변 아저씨들에게 소개해줄만한 글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글 원문 일부를 아래 남깁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최근 성평등 교육을 하며 관심 두고 있는 집단이 있다. 바로 중년 남성, 아저씨들이다. 사실 이들은 오랫동안 강사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수년간 공부하고 쌓아 온 교육자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권위적인 태도로 강사를 가르치려 들거나 한번 마이크를 쥐면 그 손을 놓지 못해 다른 참여자의 발언 기회를 빼앗아 여럿 난처하게 했다는 경험담이 흔하다. ...그런데 최근 이들 사이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시작은 딸을 둔 아버지들부터다. 종종 교육에 참여한 중년 남성이 머쓱해하며 묻는다. "뭔 말만 하면 딸이 자꾸 화를 내는데, 어떻게 해야 싸우지 않고 대화할 수 있을까요?" 관심의 표현으로 건넨 안부인사가, 무심코 던진 말이 자꾸 화를 불러 답답해하다가 찾아온 경우다.

... 통계자료에서도 변화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작년 한국일보 기사에 따르면, "페미니즘·페미니스트에 거부감이 든다"는 의견에, 남성 중 가장 낮은 동의를 보인 세대가 바로 50, 60대 이상이었다. 20, 30대보다 거부감이 적었다. 혹자는 이를 두고, 페미니즘을 몰라서 그런다고 폄하하거나, 기득권에서 보이는 온정적 성차별주의(불쌍하고 약한 여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의 일환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럴지 모르지만, 한편으로 이 숫자에 담긴 사람들을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세상에 대한 반성으로 이끌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교육에서 고민을 토로하던 아저씨의 절박함은 진심이었고 그 절박함을 이끌어낸 건 수많은 페미니스트의 힘이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 않겠지만, 균열은 분명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약한 모습을 숨기려 동굴에 숨는 남자들

교육 때 자주 써먹는 아버지와의 일화가 있다. 가족사진을 찍으러 갔는데, 아버지가 유난히 자주 NG를 냈다. 지친 가족들이 아버지의 옆구리를 찌르며 구박하니, 촬영 기사님이 아버지를 위로하듯 이야기했다. "원래 중년 남성 사진 찍는 게 제일 어려워요." 이 말은 민망해하는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함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 중년 남성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보여 준다. 해맑게 웃거나 눈물 흘리며 능숙히 감정 표현하는 아저씨가 드물다. 그리 가부장적이거나 엄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은 나도 아버지가 울거나 웃는 등 감정 표현을 하는 모습이 생소하다. 이는 그 자체로 개인에게 큰 불행이지만 자신의 감정 표현이 어려운 만큼 다른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고 돌보기 어렵게 만드는 문제로도 이어진다. ...

가부장의 종착역, 거세되거나 사라지거나

... 대를 물린 이 비극적 신화는 아버지라는 권위를 향한 두려움과 이를 극복하고 마침내 권력을 쟁취해 내는 주인공의 서사로 변주되어 다양한 이야기에 쓰인다. 대표적으로 "내가 니 아비다"로 유명한 영화 '스타워즈'가 그렇다. 이 서사에서 주인공에게 아버지는 갈등과 극복의 대상이다. 간혹 아버지가 존경의 대상, 성장 동력인 경우도 있다. 최근 성공적인 2편으로 각광받았던 영화 '탑건'이 그렇다. 허나 이 영화에도 아버지는 이미 죽어서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주인공에게 부재로 인한 원망과 동경의 대상으로 쓰일 뿐이다. 이 서사가 만들어 내는 극적인 긴장감과 재미에 빠져 있다가도, 자꾸 거세되고 사라지는 아저씨들이 마음에 쓰인다. 그 아저씨(기성세대)가 곧 나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라는 위계질서에서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은 치열하고 고독하다. 기껏 권력을 획득한 이후에도 외로움은 해소되지 않고 언제 대체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린다.

아저씨들이 변해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배우 봉태규처럼 육아하는 아버지가, 에릭남 부자처럼 자상하면서도 친구 같은 관계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예능이나 유튜브에서도 무게를 잡으며 가르치려 들기보다는 낄낄거리며 장난치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웹툰 작가 이말년, 주호민 같은 아저씨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돈 벌어다 주는 기계'로 자조하면서도 쉽사리 놓지 못했던 가부장 권력의 문제를 직감하고 그 고독한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종의 생존 전략이다.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 그것도 처절하게가 아니라 더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남는 것만큼 강력하고 절박한 동기부여가 또 있을까.

아버지들이여, 아저씨들이여 변해야 한다. 변해야 산다. 사랑받는 아저씨가 되고 싶지 않은가? 행복한 아저씨를 꿈꾸는가? 그렇다면 기억하자, 가야 할 길은 페미니즘이다.


- 기사 원문 :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113370005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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