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특히 대학생을 대상으로 폭력예방교육을 의뢰받곤 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을 고민하다 연애를 매개로 폭력예방교육을 진행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고 이번에 한 대학에 기회가 생겼다.
늘 약간의 의심과 무관심을 깔고 시작하는 폭력에방교육인지라, 도입에서 연애를 주제로 한다고 이야기 했을 때 쏟아지는 관심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확실히 연애는 참 좋은 소재구나 싶다. 그럼에도 교육의 본분을 잃으면 안되기에, 앞단에 “연애는 벼슬이 아니다”를 3회 정도 복창하고, 나는 픽업 아티스트가 아님을 2회 정도 강조해 이야기한다. 이어서 깻잎논쟁을 시작으로 연애를 둘러싼 수많은 말들을 살펴보며 연애를 향한 사람들의 열망을 북돋는다.
미디어에서 연애가 구현되는 모습, 우리가 연애를 할 때 보이는 모습, 성별에 따라 다르게 그려지는 매력자원 등을 통해 우리사회에 남아있는 성별고정관념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살펴볼 수 있다. 또 ‘연애’라는 주제가 자연히 관계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내가 이것에 왜 관심 기울여야 하는지 동기부여까지 이어진다. 덕분에 우리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성차별적인 경제, 정치, 문화적 요소들을 이야기가 별다른 저항 없이 전달된다.
다만 여전히 ‘폭력예방’을 녹여 내는 게 어색한 것 같아 고민이다.
평소 폭력예방교육에서는 문제를 피해자와 가해자로 양분하지 않고, 목격자의 존재와 필요성에 대해서 강조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연애가 주제가 될 때 목격자의 존재가 조금 어색하고 설득력이 떨어진다. 연애 관계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들(데이트 폭력이나 가스라이팅, 불법촬영 문제 등)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서 또 반복적으로 그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싶은 고민과, 연애라는 틀에서 그 얘기를 담을 때, 자칫 결국 ‘좋은 사람 만나세요~’가 되버리진 않을까 하는 염려. 점쟁이나 관상가 양반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담.
젠더기반폭력이라는 젠더권력구조 문제를, 연애라는 사적인 관계로 풀어내는 것의 한계는 아닐까. 하지만 강의안에도 썼듯,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면, 연애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연애로 매듭짓는 것도 불가능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예컨대, 4B운동의 맥락을 풀며 성별인식격차 문제를 이야기하고, 결국 사랑이 우리를 구원할거라는 말과 함께 연애에서 변해가는 양상, 변해야만 하는 사회문화적 지점을 함께 이야기하면 어떨까?
처음 연애를 주제로 강의를 기획한 것은 기존 폭력예방교육이 너무 당위적이거나 개념과 지식전달에 가까운 것 같다는 반성에서였다. 관계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면 조금 더 쉽고 전달력 있으면서 동기부여도 되지 않을까 해서. 더구나 어떤 면에서 연애는 정치, 경제, 문화보다 성평등이 더 더디게 진행되고 많이 이야기 되지도 않는다. 그래서라도 꼭 얘기해야하는 소재라 생각했다. 조금 더 욕심을 내보면, 그렇기에 폭력예방보다는 정상연애 이데올로기에 물음표를 던지는 방식으로 강의가 전개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런 자리가 아직 많지는 않지만 몇 차례 소규모 모임에서 그런 식으로 자리를 만들었을 때 훨씬 재밌으면서도 우리사회의 연애와 자신의 연애,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 듯 하다. 각종 연애 예능이 쏟아지는 와중, 정상연애라는 바위에 물음표 좀 던진들 균열이 나겠냐만 그래도 누군가는 또 제법 그럴싸 하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