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하는 남성들>

한국일보 젠더살롱

by Nut Cra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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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젠더살롱은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하는 남성들> 입니다


책 <대한민국 넷페미사>에서 '두잉 낫싱'이라는 개념을 보고 무릎을 쳤습니다. 학교에서, 또 일상에서 만나는 일부 남성들의 냉소하기가 이와 결을 같이 한다고 느꼈기 때문인데요. 물론 이것이 자신들의 특권에 기대어 있는 행동임을 알기에 괘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 문을 닫은 이들이 속에서부터 곪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염려 되기도 합니다. 실로 글에서 쓴 '어그로를 끄는 청소년'을 만나면, 억울함과 분노를 걷어낸 그 아래 소외와 낙오에 대한 공포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같이 냉소로 마주하기보다, 돌봄으로 얼어붙은 모습을 녹일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외주화되고 위탁된 일방적 돌봄이 아닌, 스스로 하는 돌봄부터 돌봄의 의미와 가치를 재구성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당장 올해 목표로 저부터 잘해볼까 합니다. 목표는 팟타이 대접하기 인데요. 밀키트도 괜찮은가 싶은 고민도 있지만, 그래도 일단 (음식으로) 환대하기가 목표입니다.


아래, 글 일부와 원문링크를 남깁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라고 했던가. 강의활동 초반, 힘든 교육을 떠올릴 때면 교육 내용에 저항하며 인터넷에서 본 가짜 뉴스를 쏟아내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막상 지금은 부정적 의견을 가지고 있을 때보다 아무런 의견 없이 천진하게 침묵하는 모습이 가장 어렵고 두렵다.



...성별에 따른 학습 태도에 두드러진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은 많은 선생님의 공통된 경험이었다. 나이도 또래에 같은 교육 내용을 두고도 이런 차이가 발생하곤 한다. 단지 우연의 연속이거나 그저 편견일 뿐일까? 어떤 이들은 청소년기 성별에 따라 다른 성장 속도를 이유로 꼽기도 하는데 단지 그뿐일까? 나는 여성 참여자들의 결과물이 더 그럴싸한 것이 단지 그 청소년들의 미감이나 발육, 생물학적 차이 때문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애초 참여 활동에 임하는 이들의 태도가 너무 다르다. 바로 남성 문화 전반에 깔려 있는 체념과 냉소다.



...책 '대한민국 넷페미사'에서 권김현영은 문화 비평가 폴 코리건이 개념화 한 남성들의 하위문화 '두잉 낫싱(Doing Nothing·아무것도 하지 않기)'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설명에 따르면 두잉 낫싱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하기다. 계급이동이 좌절된 하층계급 남성들이 공부를 해서 좋은 성적을 얻거나 돈을 벌기 위해 애써 노력하지 않고 그저 실없는 소리나 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태도를 일컫는다. 나는 한편으로 위 체념과 냉소로 일관하는 남성들의 행동과 태도가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이 남성들은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하고 있다.



...학교에서 교육을 하다 보면 피하고 싶지만 꼭 만나게 되는 유형의 참여자가 있다. 내 나름대로 '어그로꾼'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는데, 여기서 '어그로'는 게임용어에서 비롯된 말로 상대방이 자신을 공격하게끔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이 어그로꾼은 수업 때 교육자 또는 다른 참여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혐오표현을 쓰거나 맥락과 전혀 상관없이 "저는 차별 안했는데요!"라는 식의 딴지를 걸고 웃기려 하는 등 교육을 방해하는 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자신이 학교에서 학업성적이나 학습태도로 선생님의 인정을 받거나 운동, 싸움실력, 외모 같은 요소로 주변인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런 방식으로라도 관심을 획득하고자 한다.



...한번 이 문화에 포섭되면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이미 불행 공동체가 된 서로가 비극으로 똘똘 뭉쳐 벗어날 수 없게끔 서로를 감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냉소와 체념이라는 것의 중독성이 강력해서 말 그대로, 포기하면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생망'(어차피 이번 생은 망했어)을 입버릇 삼아 그 안온한 체념의 세계에 살았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희망이나 변화를 말할라치면, 냉소로 일갈했다. 그건 괜히 변화를 기대했다가 또다시 실패하여 좌절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내미는 이빨 같은 거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이 남성들의 냉소와 자조는 한편으로 더 절박하지 않을 수 있는 특권에 기대어 있다는 점에서 기만적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돌봄을 요청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안타깝지만 스스로도 구원하지 못했는데 천사 같은 누군가가 등장해서 자신을 돌보고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구원 서사는 판타지 같은 이야기고 스스로를 그 주인공에 놓는 건 자의식 과잉일 뿐이다. 우리는 먼저 스스로를 돌보고(좀 씻고) 타인을 돌보고 돌봄 받는 것의 가치와 의미를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 원문 링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10417080005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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