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13_성범죄 가해청소년 교육

by Nut Cracker

교육 활동을 하며 해야한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선뜻 나서지 못했던 성범죄 가해자 청소년 대상 성평등 교육을 하고 왔다. 전체 30 시간의 교육 이수 요건 중에 3시간, 남성성, 남성문화 관련 파트를 맡았고 괜한 불안에 이매진 툴킷을 활용한 참여형 강의안으로 피티만 50장을 꾸려갔다.


평소 남자 청소년 교육을 하면서 남성성과 남성문화를 다룰 때는 이러한 성차별적인 현실이 남성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함께 성평등으로 나아가야한다는 내용을 주로 담는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성범죄로 법원에서 교육 이수 명령을 받은 것이므로 단지 그렇게만 이야기할 수 없었다. 대신 남성성과 남성문화가 남성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다루되, 동시에 젠더기반폭력의 구조를 함께 말하면서 교육 참여자들이 자신을 마냥 피해자의 위치에 놓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래서 앞단에 강사의 경험을 토대로 남성이 성평등에 관심가져야 하는 이유를 좀 더 진지하게 풀어 냈다. 특히 지구에 절반에 달하는 남성이 이 문제에 관심 갖지 않으면 변화는 더딜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세상은 변하고 사람은 바뀐다는 것을 강조했다.


첫 번째 활동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단어 경주 릴레이(a.k.a. word race)

참여자가 다 다른 곳에서 온데다가 무기력해야하는 경향을 보인다기에 앞단에 좀 활동적인 프로그램을 넣었다. 벽에 ‘남자다움’, ‘여성스러움’을 적은 전지를 붙인 뒤, 모둠별로 그에 해당하는 게 어떤 게 있는지, 또 그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을 뭐라고 부르는지 릴레이로 빠르게 적는 활동이다. 적당히 경쟁심을 불러일으켜서 흥미를 돋우는 프로그램인데… 그것도 한 반에서 아는 친구들과 흥미를 붙여야 가능한 것 같다. 아니면 강화물을 확실하게 주거나 해야지, 뭔가 이런 것에 흥미 보이는 것은 유치한 일! 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서 예상했던 것만큼 활발하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참여자들이 직접 그 내용을 채워넣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특히 그 내용들이 남성에게는 육체적 강인함을 강조하고 여성에게는 성적으로 대상화 되는 것을 요구하는 형태가 뚜렷하게 나타나서, 이 위계를 설명하기에도 좋았다. 다만 이 활동 이후 모둠별로 자신이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경험, 이런 말들이 미치는 영향 같은 것을 물어보게 했는데, 대상에게 너무 어려운 질문인 것 같다. 차라리 조금 더 단순하게 다시 한 번 더 활동을 복기하는 질문으로 각자 종이에 써보게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참여활동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남성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젠더를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딱딱하게, 섹스는 생물학적, 젠더는 사회적 성, 이렇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 “강사의 성별은 무엇인가?”를 질문으로 그것을 유추하게 만드는 것이 젠더임을 설명하고 내가 남자다워 보이기 위해 했던 흑역사를 까밝히면서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 마치 상자, 젠더박스를 뒤집어 쓰는 것과 다름 없는 일들이었음을 이야기했다. 개인적으로 젠더박스 설명할 때 이것을 마냥 부정적으로 얘기하기보다, 때로는 스스로 그것을 뒤집어쓰기도 함을 이야기 하면서도 결과적으로 그것이 미치는 악영향이 결코 작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게 좀 더 설득력 있는 것 같다. 나아가서 이것이 의도치 않아도 개인의 선택과 무관하게 무의식 중에 일어날 수 있음도 이야기 해야지.


두 번째 활동은 남자다움 피라미드 쌓기(a.k.a. 젠더 꼴라쥬)

활동에 앞서, 참여자들에게 본인을 남자로 생각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남자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는지 묻는다. 사실 참여자들 입장에서는 좀 뜬금없게 들리는 질문인게, 대부분 본인의 성별을 잘 인지하지 못하니까. 나 역시도 태국에서 다양한 정체성의 친구들을 만나기 전까지, ‘내가 남자다’라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본적도 없다. 그래서 이 질문이 중요한 것 같다.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한 순간부터 타인의 정체성을, 그리고 그 정체성을 둘러싼 다양한 환경을 볼 수 있게 하니까. 여튼 그런 질문으로 벙쪄있는 청소년들에게 남자로 사는 것의 장/단점을 물으며 남자로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다.


두 번째 활동은 다양한 남성 사진을 늘어뜨려놓고, 개중 가장 남자답다고 생각하는 모습부터 가장 덜 남자답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줄세워보게 하고,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한다. 참여자들이 가장 흥미로워한 활동이다. 강사의 의도와 영 다르게 제시되는 것들도 많았고, 상상 못했던 지점을 발견해서 얘기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럼에도 명확하게 더 남성답다고 이야기한 것들에는 신체활동에 관한 것들이 많았고 돌봄과 꾸밈, 감정표현은 아래쪽을 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어떤 참여자는 ‘무표정함’이 남자다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서 이 피라미드가 비단 가상의 것이 아닌 우리의 일상과 현실에서 다양하게 구현되어 있음을 설명하고 어느 쪽이 더 많은 권력을 쥐고 있을지 이야기하며, ‘남자답다’고 이야기되는 것들이 더 많은 권력과 자원을 독점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하지만 과연 이 피라미드에 올라가는 게 쉬울까? 어떻게 해야 올라갈 수 있을까? 감정 표현을 절제하고, 근육을 만들고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혹사해야 한다. 그것은 결코 쉽지도 않으며 유지되기도 어렵다. 또 만약 이 피라미드에서 추락하게 된다면? 어떤 경우 추락하게 될 것이며, 그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 것인가? 이것이 비단 개인의 노력의 문제만이 아닌,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피라미드의 문제를 짚었다. 특히 이 파트를 설명할 때 잘 먹힌 것은 남성들의 위계질서 경험이었다. 참여자에게 전학을 갔던 경험이 있는지 묻고, 그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물으면 십중팔구는 위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기싸움을 경험한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원치 않는 행동에도 가담하게 만드는 현실을 짚으면 대부분 청소년들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마지막은 성평등으로 나아가는 우리사회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이러한 변화에 함께하고 있는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 끝나고 한 청소년이 이런 교육이 보편적으로 많이 진행되는지를 물으며 자신은 학교에서 이런 교육을 받아본적이 없어 아쉽다는 말을 남겼다. 비록 자신이 좋지 않은 일로 이 교육을 듣게 됐지만, 이제라도 이런 것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말을 남긴 청소년도 있었고, 교육 재밌고 좋았다고 수줍게 이야기를 전하던 청소년도 있었다. 끝나고 올라오는 길에는 조금 부끄러웠다. 나는 전날부터 교육 대상에 가진 편견의 발현으로 걱정이 되어 아침에 일어나고보니 이를 너무 앙다물어 볼이 다 얼얼했던 사람인데다 여전히 가해자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외면하고만 싶다. 하지만 성차별과 성폭력이 구조의 문제라고 이야기하려면 더더욱 가해자를 만나서, 이런 일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살펴보아야겠지. 세상 일이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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