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동간'이 두려운 내 남자 친구들에게
2023.2.4. 젠더살롱
by Nut Cracker Feb 5. 2023
젠더살롱 이번 주제는 비동의 간음죄입니다. 성폭력뿐만 아니라 모든 폭력에 있어, 그 문제에 처한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손 내미는 것이 우리사회의 발전 방향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비동의 간음죄는 그 역사의 방향에 놓인 중요한 한 축입니다. 본문 일부와 원문 링크를 남깁니다. 많이 읽고 이야기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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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간'이 무서운 남자 친구들에게>
"뭐 비동간?"
한 정치인이 앞서 여가부의 비동의 간음죄에 대한 발표 직후 SNS에 남긴 글이다. 익숙한 냉소의 언어가 내용도, 논쟁의 여지도 없이 이른바 '이대남'의 요구라는 식으로 포장되어 올라오고 잇따라 다른 정치인들도 이에 가담했다. 언론에서는 또다시 너무 쉽게 이를 성별 간 '갈등' 정도로 치부하고 이에 놀란 여가부는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식으로 없던 일 취급하고 있다.
이마를 짚었다. 아, 말의 무게를 모르는, 혹은 모른 체 외면하여 갈등과 분열로 잇속을 챙기려는 자들의 냉소로 한동안 또 주변이 시끄럽겠구나.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지지 않으면 갈등은 시민들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여과 없이 터져나오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마냥 탓하고만 있을 수 있나, 요즘 유행하는 말마따나 누군가는 해야지.
비동의 간음죄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까지 과정은 정치인의 말 몇 마디에 사라질 정도로 간단하지 않다. 그 과정에 무수히 많은 단체와 사람들의 절박하고 오래된 요구가 있었다. ... '미투 운동'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이 운동을 통해서, 사회적 낙인과 편견, 법 제도의 미비가 얼마나 오랜 세월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를 침묵하게 했는지 보았다. 허나 이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나도 말한다'(Me Too)고 용기 내어 낙인과 편견을 깨부수는 변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멈출 수는 없었다. 앞서 말했듯 성폭력 판단 기준이 너무나 협소하여 수많은 피해자가 목소리 내지 못하는 현실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순수하고 착한 마음, 열정적인 교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법'이라는 확실한 메시지가 병행되어야, 교육과 문화, 우리의 일상에 힘이 생긴다.
... 저 '만약에'에는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피해자를 향한 낙인과 여성의 성을 둘러싼 차별어린 시선, 여성에게 취약한 사회구조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성인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응당 거절과 동의를 명시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해맑은 개인만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도 진공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다. 제아무리 '만약에'를 붙여가며 의도적으로 구조를 지우려 해보아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지금의 성차별적 사회구조 아래, 성폭력 문제는 여성에게 더 취약하다. 심지어 이 사실은 저 '만약에'로 말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대부분 알고 있다. 그들은 무고한 '남성' 피해자를 상상하며, 이른바 '꽃뱀'이라 불리는 이들을 염려한다. 그런데 왜 하필 '꽃뱀'일까? 성폭력 피해자가 성별에 무관하게 두루 있다면, 거짓 성폭력 피해로 상대를 무고하게 내모는 이들도 두루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를 일컫는 표현도 성별과 무관한 표현일 텐데 말이다. 이처럼 여성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는 '꽃뱀'이라는 표현을 쓸 때만 쉽게 켜지는 구조적 사고는 '만약에'에 숨어 있는 의도적 무지를 드러낸다. ... 아주 단순하게 얘기해서,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낙인과 차별, 폭력을 뚫고 성폭력을 신고하여 지금의 아주 협소한 법망으로 겨우 잡은 성폭력 범죄자가 8만여 명일 때, '꽃뱀'이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공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존재가 341명이라는 의미다. 이토록 투명하게 다른 공포의 감각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 물풀에 얽매이지 않고 같이 나아갈 수 있다. 남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성폭력은 젠더 권력구조의 문제'라는 이야기가, 곧 '남성 개개인의 존재가 문제'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리어 남성이 이 문제에 함께 참여할 때, 비동의 간음죄에 대한 논의는 성별과 성폭력 문제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폭력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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