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연대와 위계를 넘어서, 새로운 남성되기

한국일보 젠더살롱

by Nut Cracker

이번 젠더살롱! <남성연대와 위계를 넘어서, 새로운 남성되기> 입니다!

페미니즘 집회에 가면, 어지간한 페미니스트보다 더 열심히 집회에 오는 안티 페미니스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데요. 가끔은 이들의 열정과 부지런함이 정말 암흑의 페미니스트가 아닐까? 싶은 의아함까지 들게 만들더라구요. 지난 강남역 추모집회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르는 분노를 무책임하게 쏟아내는 이들을 보며 그들이 내세운 '신남성'이라는 이름이 부끄럽고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써 보았습니다. 이 남성들 대체 왜 이럴까 궁금하다면 같이 읽고 나눠주세요!



“어쩌다 페미니즘 활동을 하게 되었나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을 하며 수백 번도 더 들은 질문이다. ... ‘페미니즘 리부트’라 불리는 페미니즘 대중화 물결로 성차별에 눈뜬 학교 친구들의 도움 덕분이기도 하고, 미투 운동과 ‘n번 방 사건’을 통해 느낀 변화의 필요성 같은 것들이 내가 페미니즘 활동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하지만 잠자코 생각해 보면 대개의 결정적인 사건은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일 수는 있겠으나 일상에서 페미니즘 공부와 활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힘은 아니었다. 지난하고 어려운 그 과정을 가능하게 했던 건 결국 나의 필요 때문이었다.


남성 되기의 핵심, 남성연대와 위계질서


감정 표현을 억제하는 것 외에도 남성이 되기 위해 지켜야 할 암묵적인 룰은 무수히 많다. ‘상남자’의 면모를 드러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하고 때론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해야 하며 재력과 힘을 과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으로 쓰인다. 막상 하나하나 뜯어놓고 보면 ‘남성 되기’란 얼마나 하찮고 우스우며 실현 불가능한지, 사실상 이 모든 ‘남성 되기’를 사시사철 철저하게 잘 수행할 수 있는 존재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 개중에서도 가장 큰 동력은 바로 위계질서다. 모든 남성이 같은 성별이라는 이유만으로 같은 이해관계를 가질 거라는 이상한 믿음으로 형성된 남성연대는 그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한 위계질서로 인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처럼 폭주하기 시작한다.


남자 셋이 모이면 위계가 생긴다


나는 아직도 학창시절 상급 학교로 진학하거나 전학 갔을 때 교실에 흐르던 미묘한 긴장과 기싸움의 기억이 생생하다. 키나 덩치는 얼마나 큰지, 축구나 게임을 잘하는지, 소위 ‘노는 형’ 같은 든든한 '빽'을 두고 있지는 않은지. 눈대중으로 열심히 간을 보다가 조금씩 충돌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비집고 찾아가야 했고, 나는 이 방면에 썩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게 참 고단했다. 그래서 나는 ‘남자 셋이 모이면 위계가 생긴다’는 것을 아주 이른 시절 깨닫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다양하게 발버둥 쳤다.


슬픔을 드러내거나 운동을 좋아하지 않거나 게임을 못하거나 심지어 조금만 친절하게 굴어도 금방 “너 게이냐”, “계집애같이 군다”와 같은 혐오, 조롱의 말이 쏟아진다. ‘남자다움’이 무엇인지는 어차피 명확하지 않기에 그 모호함을 가리는 방법으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취약성을 가진 존재를 ‘남자답지 않음’으로 등치시켜 위계의 밑바닥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추악하고 위태로운 방법은 수많은 남성에게 타자를 밟고 일어설 경우 남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어설픈 기대와 동시에 위계의 바닥을 향할 경우 피할 수 없는 낙인과 폭력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를 안겨줌으로써 그 어떤 다른 가능성도 상상하지 못하게 만든다. ... 이 피라미드 같은 위계질서는 남성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남자 되기를 증명하고 갈망하게 만드는 가장 효율적인 남성 통제 방법이자 그 자체로 남성 되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페미니즘 의제 관련 시위 현장마다 꼭 등장하는 이들이 있다. ‘새로운 남성’이라고 붙인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고리타분한 혐오의 목소리로 페미니즘과 여성을 탓하는 안티페미니스트들이다. 이들은 그 어떤 페미니스트보다 열심히 페미니즘 활동에 등장해서 냉소와 혐오로 일관하며 페미니즘에 대한 각종 부정적인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데 최선을 다한다. ... 이들의 허세 섞인 혐오의 목소리는 페미니즘을 힐난하지만 사실 감춘 속내에는 여성들이 힘을 가져서 더 이상 자신들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될까 봐, 자신들이 밟고 일어설 대상이 부재해질까 봐, 그래서 그 어설프고 위태로운 남성 되기 세계관이 무너져버릴까 두려워하고 있다. 하지만 설령 이 위계질서의 정상에 오른들 그 불안이 사라질까? 도리어 몇 없는 자들을 위한 그 자리가 외롭고 언젠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두려워 더 불안하지는 않을까? 신화 속 시시포스의 형벌 같은 위계질서에서 벗어나 정말로 새로운 남성이 되고 싶다면 고리타분한 기존의 위계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남성이라는 모호한 기준과 역할에 질문을 던지는 ‘신-남성’이 필요하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305251114000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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