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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t Cracker Aug 19. 2023

가부장적 남성성 유통기한 지났는데…

한국일보 젠더살롱 (2023.8.19.)


끔찍한 범죄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각종 과거의 정신병력, 게임이나 커뮤니티를 하던 흔적을 찾아 올리며 가해자를 '보통의 사람'과 분리하기 급급하다. 이런 식의 태도가 마음의 평화를 찾아줄 지 몰라도 실질적인 변화에는 크게 도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왜 이런 범죄가 반복되는지 더 많이 이야기해야한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왜 이런 수많은 범죄 가해자의 절대 다수가 남성인지 물어야 한다. "잠재적 가해자 취급 말라"는 말로 논지를 흐리며 문제를 방치할 게 아니라, 그렇다면 이런 가해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더 많은 남성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이야기해야한다. 




[젠더살롱] 가부장적 남성성 유통기한 지났는데… '멋진 차 모는 능력남' 끈질긴 신화 : 새로운 남성성을 찾아서 


CCTV 확충, 처벌 강화도 어떤 지점에서는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그에 앞서 범죄를 예방할 수는 없을까? 범죄 가해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따져 물어보다 보면 범죄 예방의 실마리가 보일지 모른다. 그런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하나 있다. 바로 성별이다. 검찰청 범죄분석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2021년 살인범죄의 가해자 81%, 강도의 86.9%, 방화의 82.4%, 폭행의 80.3% 성별은 남성이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2014년 발표된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방안 연구’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 가해자 48명 중 47명이 남성이었고 일본 법무성에서 2013년 발표한 ‘무차별 살상사범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52명 중 51명이 남성이었다. 이 외에 어떤 자료를 보더라도 세계 어디에서나 남성들이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른다. 당장 이런 현실 아래 남성으로 살아가면서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 말라”는 말보다 영양가 있는 무엇을 더 해 볼 수는 없을까? (...)


인터넷 용어 중 ‘트롤링’이라는 말이 있다. 타인을 화나게 만들기 위해 악행을 일삼으며 폭주하는 행위를 뜻한다. 협업을 강조하는 온라인 게임을 하다 보면 꼭 이런 트롤러(트롤링하는 사람)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들은 대개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도 아주 적극적으로 게임을 망치려고 한다. 욕먹는 건 기본이거니와 팀의 승리나 개인의 승률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게임의 재미까지 모두 앗아가버리고 마는 도무지 합리적이지 않은 행동이지만 이런 경우가 결코 드물지 않다. 그리고 이런 모습에서 이상한 기시감을 느낀다. 바로 앞서 언급한 무차별적 흉기난동 사건에서 자신의 불행을 핑계 삼아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이들의 모습이다.  (...)


미국의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우리 사회는 여자아이를 남자아이처럼 키우려고는 하지만 남자아이를 여자아이처럼 키우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적’, ‘남성적’으로 이야기되는 것들에 여전히 강력한 위계가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이 문장에서 우리가 여전히 미래세대 남성에게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느낀다. 기존 가부장 남성성을 추종하는 사회에서 소극적이거나 소심한 남성, 남성을 좋아하거나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남성, 머리를 기르거나 꽃 돌보기를 좋아하는 남성,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남성을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 떠올려보면 그것이 왜 그저 남성의 위기가 아닌 기존 가부장적 남성성의 한계인지 더 자명해진다.


변화는 저절로, 거저 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은 일말의 희망은 많은 문제의 가해자가 남성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남성은 가해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모든 남성이 그런 것은 아니다’라는 형식적이고 변명 어린 말 말고, 이들이 함께 적극적인 역할을 할 때 변화는 가능하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3081707540001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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