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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t Cracker Sep 03. 2023

성폭행범 손가락질하며 '야동' 공유... 폭력의 타자화


흉악범 신상이 공개될 때마다 따라오는 일련의 반응에 대한 문제의식을 써 보았다. 지난번 글이 생각보다 많이 퍼져나갔는데, 그 과정에서 이야기가 그저 썸네일에 실린 가해자들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는 게 아쉬웠다. 몇 번 되지 않지만, 그래도 청소년 재범방지 교육을 다니면서, '범죄자 상' 따위는 없다는 걸 느꼈다. 다분히 평범한 사람들의 방관과 동조로 만들어지는 차별과 폭력 앞에 손가락질은 그저 '나 빼고 다 늑대'라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범죄자의 유별남만 부각하고 폭력을 개인화할수록, 예방법은 각자도생으로 축소되고 약자들의 입지는 점점 줄어든다.



우리의 초점은 가해의 주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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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범 손가락질하며 '야동' 공유... 폭력의 타자화, 범죄는 반복된다>


최근 벌어진 신림동 성폭행 살인사건 피의자 신상이 공개됐다.


사진과 함께 이름, 나이 등 정보가 알려졌고 일부 언론은 그의 유별남을 부각한 사진과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했다. 이어서 인터넷에는 내가 범죄자의 이런 소식까지 알아야 하는 건가 싶은 TMI(Too Much Information)가 쏟아진다. (...) 내가 흉악범의 얼굴을 알게 된다 한들 징역을 마치고 몇 년이나 지난 후에 그 사람을 알아차리고 조심할 수 있을까? 범죄자들은 얼굴이 공개되는 것이 두려워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될까? 오히려 자신의 얼굴을 알리겠다는 그릇된 의도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지는 않을까? 심란한 마음만 커진다.



폭력의 스펙트럼과 ‘타자화’의 한계


뉴스에 등장하는 성폭력 사건은 가차 없이 비난하며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던 많은 남성도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일상의 성차별적 인식과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는 이야기에는 인색하다. 하지만 폭력의 스펙트럼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일상에 대한 성찰과 변화 없이 외치는 정의구현은 그저 도덕적 우월감을 뽐내기 위한 쑥스러운 인정투쟁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런 이야기들만으로는 우리의 일상이 안전해지지 않는다. 성폭력 문제를 향한 분노가, 착한 사람이고자 하는 마음이 진심이라면, 우리는 불편해지기를 무릅써야 한다. (...)



나 역시 이런 문제가 반복될 때마다 그저 주변 여성들에게 조심하라고 이야기하거나 가해자를 더 크게 비난하며 손가락질하곤 했다. 그러나 그것도 곧 멈추게 됐다. 당장 산책로에서, 번화가 한복판에서 이런 문제들이 반복되는 와중에 ‘조심하라’는 말이 또다시 여성을 단속하는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나 겨우 손가락질하는 것도 결국 “나 빼고 다른 남성은 다 늑대!”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 남성 집단 안에서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남성연대에 균열을 내는 게 나의 역할이라고 믿었기에 다른 남성을 대상으로 목소리 높였지만 그 언어가 조롱과 비난의 모습일 때, 균열이 나는 것은 내 인간관계뿐이었다. 게다가 당장 나부터도 불과 몇 년 전까지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과 말, 행동을 했던 한 사람으로서 이제는 달라졌다고 면죄부 받은 양 손가락질하는 것은 결국 앞서 범죄 가해자를 타자화하는 한계의 반복에 지나지 않았다.



폭력의 스펙트럼은 단지 문제가 중첩되어 있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대하게 느껴지는 문제도 결국 작은 문제들의 연속선에 놓여 있는 만큼, 그 안에서 작게만 느껴지는 개인의 역할이 얼마나 큰 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지 역시 보여준다. 작금의 폭력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진정으로 더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면, 타자화의 벽을 넘어서야 한다. 이제는 남성들이 바통을 넘겨받을 차례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3083017150001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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