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젠더살롱은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라는 말에 제대로 답하기 위한 고군분투를 담았다.
종종 양육자 교육을 나가는데, 대부분의 양육자들이 이런 질문에 대해 대체 어떻게 대답해줘야하는지 몰라 어려워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자녀가 놀라거나 충격을 받지는 않을까 염려하면서도 또 제대로 교육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까 전전긍긍해 한다. 성에 대한 이야기가 유난히 어려운 건 단지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터부로 인해 이야기하는 방법을 잃어서라 생각한다. 특히 가족 내에서 부부 간에도 애정표현조차 없는 관계가 흔할 정도로 성을 도외시하는데, 어떻게 성교육이 쉬울 수 있을까. 게다가 사회는 청소년의 성을 외면하고 늘 폭력, 범죄와만 연결시키며 겁주는 형태로 이야기하고 있다. 보수적인 어떤 세력은 마치 안보면 문제가 사라질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성교육 도서를 폐기하고 예산을 삭감하고 언어를 빼앗는다. 결국 이런 성에 대한 터부로 모두가 외면하는 사이 어떤 청소년들은 폭력적인 '야동'으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그릇되게 배우고 또 어떤 청소년들은 자신의 욕구를 갖는 것조차 위험해진다. 이런 현실에서 위기에 내몰리는 건 우리 어린이, 청소년이다.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으려면>
: 성교육, 정파와 정교 아닌 청소년 눈높이에 맞춰야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나이를 막론하고 나오는 단골 질문이다. 정말 천진난만하게 묻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질문하는 어린이도 있다. “그러게요? 우리는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하고 되물었을 때, ‘엄마, 아빠가 손잡고 자면 돼요!’ 정도의 이야기가 나오면 그나마 양반이다. 대개 어린이들은 깔깔거리며 자신이 집에서 들은 각종 ‘탄생 설화’ 같은 잉태의 비밀을 나눈다. ‘황새가 물어다 줬다’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 같은 클래식한 이야기부터 최근에는 대형 마트에서 구해왔다는 새로운 버전의 이야기가 등장했다지만 그뿐, 여전히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받았던 교육도 그랬다. 아기는 어떻게 생기냐는 질문에 많은 어른들이 그저 머쓱해하며 웃어넘기거나 딴청 피웠고 심지어는 뭐 그런 걸 궁금해하냐며 벌컥 화를 내기도 했다. 그나마 친절한 몇몇 어른들이 ‘같이 자면 된다’고 이야기해주는 바람에 나는 한동안 수련회에서 함께 잠들었던 아이들을 떠올리며 두려워 했다. 그때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어린이들의 ‘기원’에 대한 근원적이고 철학적인 관심과 질문은 여전히 “나중에 크면 다 알게 돼!”라는 말로 자주 얼버무려진다. ...
자녀 성교육에 관심 갖는 남성 양육자는 유니콘처럼 희귀하다. 일부러 일이 끝난 저녁 시간대에 교육 일정을 잡고 ‘아빠를 위한’이란 타이틀을 걸어 보아도 모집이 쉽지 않다. 양육자 교육을 들으러 온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한숨은 더 커진다. 아들이 성에 관심을 갖는 것 같아 성교육을 해주고 싶은데, 자녀가 민망해할까 봐 남편 옆구리를 찔러 보아도, ‘크면 알게 된다’ ‘원래 그러면서 크는 거다’ 등의 이야기로 딴청만 피운다는 것이다. 실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약 4,000명의 중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성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경로 중 ‘부모님’은 고작 2.3%다. ‘학교 성교육’ 48.9%, ‘SNS, 유튜브 등 인터넷’ 22.5%, ‘친구’ 17.1%에 비하면 더욱 비극적인 수치다. ...
성에 대한 고민이 생겨도 혼자 알아보는 경우가 35.2%로 가장 높았고 ‘친구와 상의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30.8%였다. ‘부모님과 상의’하겠다는 비율은 그에 절반 정도인 15.9%로 여자 청소년 21.5%, 남자 청소년은 고작 10.8%였다. 이처럼 청소년의 성에 대한 무관심과 터부로 인해 많은 청소년이 성과 관련한 폭력, 성 매개 감염 등을 경험해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혼자 고민하다가 문제가 커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
가정은 어린이, 청소년들이 성에 대한 인식을 가장 먼저, 또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공간 중 하나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그럼 어떻게 말문을 열면 좋을까? 가장 많은 양육자들이 어려워하는 탄생 비화부터 살펴보자. 중요한 건 맥락이다. 사실 이 과정에서 자녀들이 놀라는 건, 성관계 방법 그 자체에 있기보다, ‘우리 부모가?’에 가깝다. 가정 내에서 성은커녕 손도 잡지 않고 성을 존재하지도 않는 척 취급하던 이들이 알고보니 성적인 존재였다는 것을 알게 된 그 괴리에서 오는 충격이다. 그래서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성교육의 쟁점은 얼마나 매끄럽고 정확하게 내용을 잘 전달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 괴리를 줄일 수 있느냐다. 그런 점에서 가장 경계하는 말이 바로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다. 농담처럼 이야기되는 이 말에 가족 내에서 성을 터부시하는 문화가 그대로 내포되어 있다. 이런 문제의식과 함께 가족 내에서 조금씩 성에 대한 이야기를 넓혀 나가 보면 어떨까? 대단히 거창하고 진지할 필요도 없이,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어떤 고민과 기대로 사랑을 하고 자녀를 갖겠다 결심했는지부터 차근히 말이다. 이렇게 가정에서 성이 우리와 얼마나 밀접한지 보여주면, 자녀들도 그 과정을 덜 낯설고 어색하게 느낄 수 있다. 단언컨대 이런 성교육이야 말로 학교에서 절대 할 수 없는, 그러나 가장 필요한 성교육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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