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ut Cracker Sep 16. 2023

'그것'을 둘러싼 남성들의 알 수 없는 집착에 관하여

한국일보 젠더살롱 (2023.9.16.)

우리나라는 참 이상하게 성적으로 보수적이면서 개방적이어서 아침 프로에서도 정력에 좋다는 음식 소개가 나오고 길거리 곳곳에서는 성기 확대 수술, 성매매 광고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근데 또 한편으로는 여성 가수의 퍼포먼스를 고발 운운하지 않나, 교과서나 책에나오는 성과 관련한 이야기를 지우는데도 열심이다. 


비단 성 엄숙주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런 다른 잣대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특히 얼마 전 온라인에서 광풍처럼 몰아쳤다가, 이제는 자기들도 부끄러워서 쑥 사라진 이른바 '집게 손가락' 논란은 그 이면에 깔려 있는 남성 젠더권력 수호 의식의 한 면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성기로 환원되는 남성됨을 내려놓고 물어보자. 


대체 남성이란 무엇인가? 



남성들의 거대한 음경에 대한 거대한 집착


흥미롭게도 이 집착에 가장 큰 열성을 보이는 사람들은 바로 이성애자 남성이다. 다른 남성의 발기된 음경을 볼 기회가 많을 것 같지도 않은 이들이 대체 왜 그토록 음경에 집착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로 남성 집단 안에서 이 거대한 음경에 대한 선망은 가히 신화라 불러도 과장이 아니다. 단적으로 내가 경험한 남성 집단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유난히 도드라지는 음경을 가진 친구는 그것을 드러내는 데 거침없었고 주변에서는 부러움 담은 시선 보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예능이나 영화에서도 이를 소재로 한 장면이 적지 않다. (...)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 의학도서관 NLM(National Library of Medicine)에 게재된 ‘오르가슴 빈도’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이성애자 남성은 친밀한 사람과의 성관계에서 거의 매번(95%) 오르가슴을 느낀다고 답했다. 반면 이성애자 여성은 65%뿐이었고, 이는 레즈비언 여성(86%)보다도 낮은 수치였다. 여성의 성적인 만족도에 음경 크기가 중요하다면 이런 수치가 나올 수 있을까? 그러니까 이러한 연구로 미루어 봤을 때, 애초 남성들의 거대한 음경 집착은 성관계, 특히 여성과의 성적인 관계 맺음과 상관없는 이상한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버렸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


대체 신체 일부일 뿐인 음경에 왜 이토록 집착할까? 그것은 ‘자존심’, ‘자신감’이라는 말로 음경에 투영해 이야기하는 것의 실체가 실은 ‘남성성’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성별이 주로 성기를 통해 구분되고 드러난다고 여겨지기에 음경에 남성성을 투영하는 것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남성성’은 비단 생물학적으로 염색체가 ‘xy’로 구성되어 있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남성의 역할을 수행할 것임을 약속하고 그 대가로 남성이라는 사회적인 위치를 승인받을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 


몇 해 전,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집게손가락’을 둘러싼 광풍 역시 비슷한 문제를 보여준다. 남성들이 많이 사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광고 포스터에 사용된 집게손가락 모양이 한국 남성의 작은 음경 사이즈를 조롱하기 위함이라는 음모론이 퍼졌다. 허술하기 그지없는 황당무계한 이야기에도 해당 기업과 디자이너를 향한 비난과 폭력은 스포츠처럼 번졌다. 이 광풍이 의아했던 건, 지금까지 온라인 공간에서 성적인 이야기, 특히 여성의 성기를 비롯한 신체 부위에 대한 말, 농담이라 이야기되는 폭력은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도리어 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색을 보일라 치면, ‘진지하게 굴지 말라’며 면박을 주기 일쑤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남자의 음경을 둘러싼 이야기에는 없는 말까지 만들어가며 발끈해할까? 이것은 음경을 둘러싼 이야기가 단지 성기만이 아닌 남성성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로부터 비롯된 젠더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즉 이 문제의 본질은 지배적인 가부장적 남성성이 저물어가는 시대에 여전히 그 미련의 끈을 놓지 못하고 젠더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이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3091309490001421

작가의 이전글 가족이 아니어도, 우리 서로 반려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