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클을 소개합니다

백수기 #9_안전하고 즐거운 공동체를 찾아서

by Nut Cracker

1. 커클하고 천국갑시다.

인생 모토가 ‘돈 안 되고 쓸데없는 일은 마다하지 않는다.’이다.

자못 사치스러운 이 모토는 자본주의가 낳았으나 경제 불황이 기른
90년생의 변종 모습이랄까. 무엇이든 사치, 낭비하고픈 마음에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큰 사치품인 인생을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낭비 중이다.

그 일환으로 <커뮤니티 클라우드>(이하 커클)라는 걸 한다.

거창하게 이름 붙였으나 결국 안전하고 마음편히 노는 모임이다.

혐오발언, 플러팅 등 각종 빻은 말로부터 안전하고

독서, 운동, 취미개발 같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괜찮은

한량이나 선비처럼 놀 수 있는 모임이다.


파일럿과 1회차 모임에서는 보드게임을 했고

앞으로 걷기 모임과 피크닉, 백일장 등을 계획 중이다.

진탕 술이나 퍼마시며 노는 것 보다 기억에도 훨씬 많이 남고

좋은 친구들도 만날 수 있어 바쁜 와중에도 주력하고 있다.


2. 용, 해태, 기린, 그리고 안전함


많고 많은 모임 플랫폼이 있는데 왜 굳이 ‘안전함’이냐면,

세상엔 시도 때도 없이 수작 거는 사람, 누굴 까 내리지 않으면 입을 못 떼는 사람, 토론과 인신공격을 구분 못하는 사람, 포청천이라도 되는 양 개작두질 하는 사람, 자신만 세상에 중심인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 존재와 의견을 드러내도 평가, 비난 받지 않을 수 있는 공동체의 아늑함을 원했다.

서툴고 불완전한 인간들인지라 당연히 내규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꾸준히 신경써주는 사람과 때론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사람, 어르고 달래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함께 만들기에 다소 미숙할지라도 안전함은 배가 된다.


차츰 쌓인 관계는 다시 넉넉한 안전망이 된다.

그 안에서 마음 편히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아늑함을 느끼며

평소에 알지 못하던 나를, 상대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안전함이 세상까진 몰라도 최소한 주변 사람 몇 명쯤은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아등바등 지키려 노력한다.


3. 치열한 건 내 인생으로 족해


다만, 치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뭘 해도 너무 열심히 한다.

일은 기본이고 공부를 해도 코피가 날 때까지, 취미생활도 뽕을 뽑는다.

친구를 만나 밤새도록 1차, 2차 술에 노래방까지 완주하고 나면

다음날 눈을 뜰 수 있을까 우려가 앞선다.


노는 일만큼은 그렇게 치열하지 않게,

뭘 준비하지 않아도 괜찮고 그냥 와서 적당히 휘적휘적

넘치지 않게 먹으면서 사람들과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그런 모임을 지향한다.


제일 기대하는 놀이는 숨바꼭질과 백일장이다.

봄볕 맞으면서 제멋대로 휘갈길 글들이 궁금하고

‘다 커서 무슨.’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기발하게 몸을 구기고 있을 사람들이 보고 싶다.


4.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럭저럭 계속하리라


우습지만 사실 나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공동체 경험도 적고 성향도 개인주의자에 가깝다.

게다가 주변도 지독한 회의주의자들 투성인지라 온갖 우려와 걱정으로 가득하다.


그나마 한 가지 믿는 구석이 있다면 백수의 시간은 넘쳐나고

노는 일을 마다할 리 없으니 어떻게든 그럭저럭 연명할 수 있지 않을까.

혹 망하더라도 잃을 것은 뻘쭘함이요, 얻을 것은 흐뭇함이다.


믿을만한 공동체와 관계가 상상 속 동물처럼 막연하고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타인은 지옥이며 관계는 지옥문을 향한 노크라 할지라도 우리는 문을 벌컥벌컥 열어 재끼며 지옥불에서 함께 마시멜로우를 구워먹을 동료를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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