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뇌피셜이었던 교실배치(1학년 1반 옆 2학년 1반)는 코로나 예방을 위한 조치가 맞는 것으로 밝혀졌다.
201007_00여자 중학교 2학년 대상 디지털성폭력예방교육_강의 후기
나무여성인권상담소에서 진행하는 <디지털성폭력 예방교육>(이하 디성)을 진행했다.
일단 학교 입구에서 방명록을 작성하면서부터 교육 전 보건실에서까지 남자 선생이라는 것에 놀라움과 호기심 섞인 시선과 이야기를 받았다. 이런 상황과 분위기의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바. 이제는 자연스럽게 대처할 수 있게 됐다.
기대와 걱정을 안고 교실에 들어갔다.
일단 학생들 얼굴을 가리는 ㄷ자 가로막이 압박스러웠다. 물론 코로나 예방을 위한 조치로 필요하지만, 강사 입장에서는 참여자 눈을 보며 이야기 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최근, 내가 생각보다 낯을 가려서 참여자 눈을 또렷이 보지 못하고 허공을 바라보며 강의하고 있음을 깨달아서 이를 개선하고자 했는데 이런 장벽을 만날 줄이야.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왔다갔다하며 참여자들과 눈을 맞추려 노력했다. 이게 관계 형성에도 도움이 되고 참여자 입장에서도 긴장을 풀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또 가림막에 참여자 이름을 붙여놔서 00님이라고 쉽게 부를 수 있었다. 다만 학생 참여자는 이런 호칭이 어색한지 처음에는 웃었으나 진지하게 계속 부르니 이내 익숙해졌다. 존중받는 기억은 생각보다 인상에 오래 남아서 이런 경험이 언젠가 참여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본격적으로 1교시를 진행했다.
시작에 앞서 기대와 우려를 솔직하게 전했다. 무엇보다 여자 학교 강의가 처음이라 참여자가 불편을 느끼지 않게끔 최선을 다하겠고, 그래도 혹시나 불편하거나 어려운 점이 생기면 이야기 해달라고 부탁했다.
강사소개에선 남함페를 넣었다.
사실 학교에 강의하러 갈때는 남함페 소개를 빼곤 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고 시간도 촉박한 상황에서 자칫 관계 형성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우려해서 뺐다. 그러나 고민 끝에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 개선 역시 강사 몫이라는 생각에 추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 강의 평가에서 인상 깊은 대목으로 이에 대한 내용이 언급된 것은 좋은 영향이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강의 초반 내용은 디지털 공간의 특성과 디성 개념, 발생 특징, 피해자 잘못이 아니다 등 디성 전반에 대한 내용이다. 퀴즈, 영상 등 참여자와 소통하는 시간이 있어 강화물로 말랑카우를 준비해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반응이 없어서 충격. 다들 똘망똘망하고 참여자 분위기가 나쁘진 않은데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의사표현을 하지도 않는다. 한 명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며 물어보면 그래도 잘 이야기 한다. 어렵게 어럽게 1교시를 마쳤다.
왜 때문일까? 졸거나 자는 참여자가 없는 것을 다행이라 할 수 있을까? 내가 남자 선생이라 그런가? 옷이라도 좀 더 편하게 입고 올걸 그랬나? 수만가지 생각이 든다. 교육 담당자 선생님께도 물어보았으나 명쾌한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교육 내용 전달에 있어서도 고민이 든다. 남자 학교이면 좀 더 강력하게 이야기 할 수 있겠는데, 여기에서는 어떻게 전달해야할지 좀 더 고민이 됐다. 안그래도 험난한 세상인 것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은연중에, 또 대놓고 교육받아 왔을텐데 괜히 공포를 조장할까봐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계속 '피해자 잘못이 아니다,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 서로 도와야 한다'를 강조해서 이야기했다.
1교시 뒷부분에 디성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영상이 있다. 문제를 예방하고자 피해자의 시선에서 쓰인 영상이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계속해서 꼬드기고 압박하여 피해자로 만드는 과정을 소개한다.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고자 하는 목적과 필요는 이해하지만, 자칫 피해자가 조심해야한다는 메시지로 전달되지는 않을까? 피해자 시선과 병행하여, 가해자가 어떻게 피해자를 만들어내는지 구조와 과정을 보여주어야 디성 문제를 종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나아가 문제 해결 방식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제 아무리 교육자가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고 이야기 해도 영상이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만 반복하는 한 피해자를 탓하는 인식 자체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인식론으로서 페미니즘을 실천하기 위해, 교육에서부터 그 시선을 바꾸는 연습과 내용이 필요하다.
쉬는 시간에는 도통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앞에 있으면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질문, 의견 등을 받고자 했는데, 또 참여자들이 약간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살짝 옆에 있어 봤는데 또 너무 소심해 보이기도 하고.. 강사 양성 과정에서, 쉬는 시간도 활용해야 한다는 선배 활동가의 조언을 참고하여 참여자에게 다가가 이런 저런 것을 묻기로 했다. 일단 참여자의 반응이 저조한 이유 중 하나로, 이번주 교육이 2학기 첫 오프라인 교육이었다고 한다. 1학기도 2주 간격? 정도로 학교에 잘 나오지 않아서 참여자 간 관계 형성이 잘 안되어 있기도 한 모양이다. 참여가 저조한게 조금 이해가 갔고 어쩔수 없는 현실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좀 더 쉽게 다가가고 참여자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할 방법은 없을까? 진짜 옷에서 부터 파격을 시도해야하나. 그럼 입구컷 당할 것 같은데.. 농담을 더 준비해야하나.. 고민이다. 또 참여자에게 교육에서 어려운 거나 불편한 것은 없었는지, 어땠는지를 살짝 물어봤는데 사실 나 같아도 지금 이 순간이 제일 부담스럽고 불편할 것 같아 그냥 편히 쉴 시간을 줬다.
2교시는 그래도 한결 참여자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그 사이에 나도 긴장이 풀리고 조금이나마 관계가 형성된 게 아닐까. 시작은 단톡방 성희롱에 관한 영상을 보고 참여자 의견을 들었다. 그래도 몇 번 교육 하면서 참여자들에게 물어봤는데, 교육자가 참여자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주는 것이 유의미하다는 피드백을 들어서 시도해봤다.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며 최대한 모든 참여자의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너무 어려워 하는 참여자는 살짝 넘어갔다.) 우려했던 것보다 다들 너무 잘 이야기해 주는 것을 보면, 확실히 수업 내용에 흥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역시 미래는 밝다.
강의 후반부에 성폭력 범죄 처벌이 강화 되었음을 설명하는 내용이 있다.
우리사회가 성폭력을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다만 우려되는 것은 그 내용 중, ‘미성년자 의제 강간 기준 연령 상향’이 있다. 이 처벌이 강화된 것에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또 한편으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에서 우려하듯 청소년의 성을 ‘보호’로만 이야기하는 것의 한계를 함께 이야기 해줘야 하지 않나 하는 우려가 들었다. 휴 나의 배움이 짧고 시간이 촉박하여 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그래도 막바지는 전반적으로 우리사회의 긍정적 변화(미투 운동 등)와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 함께 목소리 내어줄 사람과 단체가 있다는 이야기로 마쳤다. 물론 최근 낙태죄를 비롯해 성평등 이슈에서 뒷걸음질 치는 일이 적지않지만, 안 그래도 어려운 세상인데 강의 만큼은 희망차게 끝나야 하지 않을까 해서. 교육이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을 살아갈 희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양심이다.
강의가 끝나고 평가지를 읽으며 감동에 또 감동을 받았다.
조용하다고 참여가 저조한 게 아니었다. 다들 열심히 들으며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강의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참 행복한 강의였다.
p.s. 지난번 뇌피셜이었던 교실배치(1학년 1반 옆 2학년 1반)는 코로나 예방을 위한 조치가 맞는 것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