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와 교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by Nut Cra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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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활동가의 방학이자 비수기.

나랏돈이 풀리지 않고 학교는 방학, 단체들은 새해 계획을 세우느라 비교적 일이 없다.

한가한 틈을 타, 공부를 하고 쉬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나마 하는 활동 중 하나로

지난해 함께 쓴 <N번방 이후, 교육을 말하다> 온라인 북토크에 참여하고 있다. 1회차는 N번방 사건을 두고 청년세대 내에 성별을 둘러싼 너무 다른 관점에 대해 이야기 했다. 2회차는 양육자와 교육자가 모여 이야기를 나눴고 이제 3회차를 앞두고 있다. “학교에서 ‘성’얘기 해도 되나요?”라는 주제로 학교 선생님들이 경험과 고민을 나누고 나는 진행을 맡았다. 덕분에 초, 중, 고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배울점이 참 많고 무언가를 함께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페미니스트 선생님들 역시 학교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대개 나이, 경력이 많은 편이 아닌 경우가 많다보니 조직 내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었고 동료 교사라 할지라도 의견이 다른 경우가 많아 곤란함을 겪었다. 학생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해야 권위적이지 않으면서 수평적인 소통을 통해 혐오와 폭력이 없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고 동시에 양육자의 요구에도 귀 기울이며 페미니스트 교사를 향한 낙인, 각종 혐오 세력의 백래시에 맞서야 했다. 이외에도 또 얼마나 많은 다사다난이 있을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한편으로, 나처럼 학교에 어중간하게 위치한 강사 입장에서도 나름의 고민이 있다.

대부분 학교가 ‘성’과 관련한 교육에 많아야 일 년에 한 두시간 정도 밖에 시간을 내어 주지 않으며 그나마도 성평등이나 페미니즘보다는 폭력예방교육에 그칠 때가 많다. 고작 이 한 두시간이 이들이 들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성교육일지 모른다는 부담감은 생각보다 무겁다. 그 절박함에 양육자 앞에서도 보여준 적 없던 재롱이 서른 넘은 나이에 늘었다. 강의를 들어준다면 뭔들 못할까.


교육 환경도 열악한 때가 많다. 아직 해본 적은 없지만 강당식 집체교육, 방송 교육을 하고 난 후 현타를 겪는 강사들의 PTSD 섞인 무용담이 괴담처럼 돌고 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썩 호의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강의를 할 때가 많다. 차라리 교육 참여자가 페미니즘이나 성평등, 성교육에 부정적이라면 그 또한 교육의 일환이라 생각하고 어떻게든 열의를 가지고 해보겠는데, 관리자로 교실에 들어온 선생님이, 교육을 의뢰한 실무진 또는 학교측이 부정적이거나 당황스러운 요구(“불편하지 않은 내용으로 해주세요” 등.)를 할 때면 더 심란하고 난감하다. 이에 맞서는 것이 페미니즘 실천일까? 아니면 조금 타협하더라도 그런 관리자 밑에서 어려움을 겪을 교육 참여자의 손을 잡는게 페미니즘 실천일까. 어렵사리 그런 교육을 하고 난 날이면,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한다. (ft. 이적 달팽이)


온통 좋은 이야기, 페미니즘 이야기만 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고민 역시 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강의가 잡힐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강사가 제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을까. 운이 엄~청 좋으면 열정적인 담당자를 만나 사전에 강의 요청서도 받고 사전 회의를 통해 강의 현장 분위기를 대략적으로 파악해 강의를 준비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런 경우는 정말 희귀한 경험이었다. 안정적으로 수준 높은 강의를 꾸준히 만들어내기 위해, 강사 개인의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안정적인 환경 역시 뒷받침 되어야하지 않을까.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는 강사와 교사가 서로 손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고충을 나누고 서로 배움을 더할 기회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나아가 페미니즘 교육 실천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자리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교사는 학교 시스템을 파악, 이용할 수 있고 교육 참여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강사는 그래도 계속해서 교육을 다니며, 페미니즘 교육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고(아마도? 또는 가질 수 있고? 또는 가져야 하고?) 학교 시스템에서 교사에 비해 그나마 좀 더 거리를 둘 수 있다. 이런 지점을 잘 콜라보 한다면, 조금 더 나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너무 일개 강사라 이를 어떻게 시도해볼 수 있을지 상상도 못하겠다. 모들에서? 성평등활동지원센터? 성문화센터? 아니, 알고보니 어디에서 이미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많은 일들이 일기에서 시작해서 현실로 이어지고는 했다. 올해는 얼마나 성평등 교육 활동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모를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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