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몬스터 헌터를 보고...

아니 이게 왜 재밌지?

by Nut Cracker

아이참, 어쩌다 이런 취향을 갖게 된걸까.

1724006b2afdf50e.jpg

퍼시픽림 때부터 이어져 온, 크고 거대한 괴물을 향한 취향이 ‘몬스터 헌터’를 만났다.

예고편에서부터 짙게 느껴지는 B급 갬성이 분명 나의 부끄러운 취향을 저격한 영화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메마른 일상, 그동안 치열하게 살았으니까 이 정도 길티플레져는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스스로를 위로하며 영화관으로 향했다. 기대 없이 본 몬스터 헌터는 ‘이게 왜 재밌지?’ 싶은 의아함과 흐뭇함으로 도저히 감상문을 남기지 않고는 못배길 영화였다.


몬헌 이미지 1.gif MOVIE ©2020 CONSTANTIN FILM PRODUKTION GmbH©2020 Columbia TriStar Marketing Group, Inc. All Rights


주인공이 밀라 요보비치라는 점 빼면 상투적이기 그지 없는 시작이었다.

뻔한 인종구성(흑인, 아시안, 백인)과 더 뻔하게 그려놓은 캐릭터는 시작부터 이 친구는 언제 무슨 역할을 하고 어떻게 죽겠구나 예상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감독은 전공이 씨름이었는지, 관객의 이런 예상을 계산하고 가뿐히 모래 위에 꽂아버렸다. 감히 추측하고 기대를 내려놓은 나의 오만함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그저 꼭 한 번 보기를 추천한다. 다만 염두할 것, 이런 장르의 영화는 스토리가 산으로 간다거나 개연성이 없다는 비판은 받지 않는다. 애초, 배가 모래사막을 떠다니고, 쌍칼로 고래만한 괴물을 잡는다. 그저 뇌를 잠시 내려놓고 산과 들로 떠나는 CG에 몸을 맡긴다.


그런데 정말 요상하고 흥미로운 건, 이 영화에 불편한 요소가 ‘별로’ 없다는 거다.

요새 영화가 점점 보기 어려운 까닭은 몰입에 발을 거는 불편한 요소, 언피씨한 요소들이다. 흐린 눈으로 넘어가려 해도 시답잖은 구시대적 농담, 뻔한 성역할과 여성혐오, 세상을 구하는 미국 백인을 보는 건 고까운 일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이런 지점에서 상당히 선도적이다. 다국적 자본이 낭낭히 들어간 덕인지 인종 구성부터 어느 정도 다양성을 확보했다. 그렇다고 몰입을 깨는 어썸하고 골져스하며 미스테리한 무술 유단자 동아시아인이 나오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물론 비슷한 느낌으로 태국인이 나오기는 한다. 섹슈얼한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아시안을 가까운 동료로 상정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지만, 지금 문화비평을 하려는 건 아니니까. 좋게보면, 기존 이런 류의 영화에서 오리엔탈리즘이 밥스푼만큼 들어갔다면 이번에는 티스푼 정도랄까. 특히 중국자본이 멱살잡고 이끌어가는 인종 다양성. 너무나 흥미롭다.


몬헌 이미지 2.jpg


그리고 약간 과장을 보태서 말하면, 페미니즘적인 요소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주인공이 밀라 요보비치인데 말해 무엇하겠냐만, 이게 몇 번 쓰이고 마는게 아니라 작품 전반에 어느 정도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비교하여 말하면 비슷한 시기, 유사한 장르인 ‘승리호’는 김태리가 선장으로 등장하여 기대치를 높였다가 엄한 신파로 실망을 안겼다. 반면 몬스터 헌터는 밀라 요보비치가 시종일관 보여주는 슈퍼짱센 매력이 캐붕없이 일관되게 그려지며 통쾌함을 준다. 단편적으로 영화 초반부, 주인공은 자신이 이끄는 부대원들에게 “Let’s go ladies”하고 이동을 명령한다. 이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자기들끼리 머쓱해하는 남자 부대원들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흔히 사용되었던 여성혐오적 대사를 비튼 장면이 예사롭지 않다. 이게 어디 하루이틀 고민해서 가볍게 넣을 수 있는 내용일까. 또 더 흥미로운 장면은 밀라 요보비치가 굳이 총알 화약을 사용하여 상처를 봉합하는 장면이 나온다. 최근 하드바디를 짧게 읽었는데, 람보가 총알 화약으로 자신의 상처를 봉합하는 장면을 통해 극대화된(또 과장된) 남성성을 드러내며 동시에 관객으로 하여금 경외감?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했는데, 이 말도 안되고 뻔한 클리셰를 여기에서 이렇게 그려내다니. 밀라 요보비치를 통해 그려지는 하드바디, 그것은 어쩌면 또 다른 어떤 여성서사 계보를 보여주는게 아닐까?


문화비평하는 선생님들이 이 영화를 보고 멋진 논문을 써주었으면 좋겠는데, 이 영화 너무 가소롭게 여겨져서 아무도 안 볼까봐 벌써부터 속상하다. 그래도 간만에 영화관 나들이가 성공적이라 기분이 참 좋다. 언젠가 A급 자본을 쓴 B급 갬성의 청불 영화에서 김태리가 괴물을 찢어 죽이는 영웅으로 단독 등장하는 날이 오기를 꿈꿔본다.


몬헌 포스터.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강사와 교사, 무엇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