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교육을 조지고 온 어느날

by Nut Cracker


오늘은 서울청년센터 오랑 매니저를 대상으로 성인지감수성 교육을 했다.

안 그래도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기회가 귀하고, 나 또한 청년단체와 활동에 대한 애정이 큰데다가 청년활동 매니저들은 하늘이 내려준 열정적인 교육 참여자인지라 기대가 큰 교육이었다. 다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온라인 강의라는게 걸렸고 결국 큰 반전 없이 온라인 강의의 고단함과 아쉬움을 잔뜩 남겼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교육 참여자가 연속해서 온라인 교육을 받느라 다소 피로해 보였지만, 그래도 자기소개로 마이크를 넘기니 다들 곧잘 이야기 해주었다. 나 역시도 오래 간만에 내 강의안으로 진행하는 교육이었음에도 그간 쌓인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전처럼 벌벌 떨지는 않았다.


도입은 이전과 동일하다. “00님이 우리 조 꽃이니까 00님이 팀장 할래요?”

말하는 사람은 의도하지 않았으나 우리사회의 권력구조, 맥락으로 인해서 누군가는 상처받고 갈등을 겪었던 경험. 청년을 대상으로 할 때 익숙하기도 하고 다들 좀 진저리를 칠만큼 현실적이어서 썩 나쁘지 않은 도입인 것 같다. 다만 예시로 장문복과 정우성 사례를 사용하는데, 이게 다소 올드하다. 좀 더 생생하고 최근의 이슈로 개편하면 좋겠는데 뭐가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다.


이어서 김지혜 선생님이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이야기한 특권과 사회적차별 개념을 설명하고 성별로 인한 특권을 발견하기 위해 ‘성인지감수성’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지금은 그 사례로 관짝소년단 예시를 사용했는데, 이제 시의성도 떨어진 바, 이 역시도 바꿔야겠다. 의도는 아니겠으나 성인지감수성의 부족으로 문제가 되고 그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사례로 뭐가 있을까. 최근 경찰이 여성 운전자 문신을 가지고 지적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좀 더 기사를 찾아 봐야지.


문제는 이후 우리사회 권력구조와 특권을 찾는데서 발생했다.

오프라인에서는 활동지나 포스트잇을 사용하면 뚝딱이겠으나, 온라인이다보니 다소 난해했다. 함께 활동할 수 있는 페이지를 만들어놓고 주석작성 기능을 사용하여 교육 참여자의 의견을 받으려고 했다. 문제는 교육 참여자의 참여도를 높이고자 세 개의 소회의실로 쪼갰는데, 소회의실에서는 강사의 화면이 공유가 안되어 활동지 페이지를 보여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숙련된 활지센 센터분들의 도움으로 곧 각자 소회의실에서 화면을 공유하고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으나 다시 생각해도 정말 아찔했다. 만약 집에서 온라인으로 강의를 하는거였으면? 퍼실이 부족했으면? 미리미리 확인했어야하는데, 너무 큰 패착이었다. 또 여기에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다. 소회의실에서 다같이 이야기 나누는 것은 좋은데, 쪼개고 그 안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모여서 한 번 더 이야기를 공유하자니 시간이 너무 오래걸린다. 다음에도 또 비슷하게 진행을 해야하는데, 소회의실 기능을 사용하지 말고 그냥 다같이 해버릴까. 거참 어떻게 해야 좋을까.


갑작스레 쉼을 갖고 두 번째 시간을 진행했다. 여기는 비교적 어려움이 없었다.

시의성 있는 예시들도 많이 사용했고 나의 성인지감수성 점검하기, 성인지적 관점으로 청년 마주하기도 다소 급한 감이 있으나 그래도 필요한 이야기는 충분히 했다.


세 번째 파트는 또 다시 참여형이다.

세상에 문제가 없는 조직, 공동체는 없음을 강조하고, 문제를 예방하고 문제로부터 피해자와 공동체가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건들을 톺아본다. 사실 이 파트가 제일 중요한지라 여기에서 시간을 더 충분히 쓰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게 관건이다.


조건을 얘기할 때도, 그냥 내가 혼자 사회문화적 조건과 제도적 장치를 설명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참여자와 함께 소통하고 사례들을 더 많이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사회문화에서 수평적이고 민주적이며 평등한 문화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 그게 어떤 식으로 안전하고 회복성 강한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좀 더 면밀하게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면 그냥 병렬식으로 나열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기억에 남길 수 있도록 무슨 키워드를 만들어서 전달하면 어떨까. 왜 일타강사들이 많이 하는 것처럼. 물론 외우는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참여자가 교육을 듣고 나서 뭐라도 머리에 담아 가려면 인지하기 쉽게끔 어떤 키워드를 만들어주는게 필요하지 않을까. 다음 교육 할 때는 이 파트에 강조점을 넣어야겠다.


제도적 장치도 시간이 좀 더 넉넉하면 구체적 사례들을 제시해도 좋겠다. 약속문, 내규나 징계세칙이 잘 만들어진 단체를 소개하면서 겸사겸사. 사례보고서도 형식을 보여주면 좋겠고, 다만 이걸 다 하려면 한 서른 네시간쯤 강의를 해야하지 않을까.


이어서 성평등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포스트잇을 붙이는 작업.

역시 너무 좋은 참여자라 의견이 정말 잘 나왔다. 교육을 의뢰한 센터 선생님이 교육이 끝나고 말하시길 교육을 기획하고 의뢰한 사람이 제일 많이 배워 간다는데, 여기에 얹어서, 막상 제일 많이 배워가는건 교육하는 강사가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써 준 불편한 지점, 대응 방법을 보면서 계속해서 감탄하고 배운다. 이런 사람들이 있으니 그래도 세상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마지막 시간은 회심의 지도 그리기다.

아무래도 교육이 끝나고 나면 너무 빨리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내용을 머리에 담아갔으면 해서, 배운 내용을 회고하는 시간을 따로 마련했다. (강의 앞단에서 말아먹지 않아서)시간이 좀 더 넉넉했으면 여기에서 다시 소모임으로 쪼개어서 이야기를 듣고 해도 좋을텐데. 부랴부랴 진행하느라 몇 사람 이야기를 듣지 못해 아쉽다. 또 특히 이 파트에 명언이 너무 많이 나온다. 책 내용을 공유하는 게 좋긴 하지만, 또 그렇다고 너무 많이 얘기하면 이게 강의인지 독후감인지 모르니까. 좀 줄여도 좋겠다. 단체와 콘텐츠를 서로 소개해주는 것도 넣었는데 못했다. 이게 잘 진행된다면 좋을텐데. 서로서로 배움을 공유할 수 있고 좀 더 의욕을 북돋을 수 있을텐데. 근데 이게 가능하려면 충분히 안전한 공간이어야겠다.


마무리는 똑같이 “성인지감수성은 백신”이다. 지난번에도 고민했었고 오늘도 한 번 이야기 들었는데, 성인지감수성을 백신으로 은유하는 순간, 성차별, 성폭력 같은 것이 자연스레 바이러스, 질병으로 상정되고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공동체는 질병을 앓는 ‘병든 몸’, ‘아픈 몸’으로 은유되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간단하고 손쉬운 비유라 무의식적으로 계속 사용했는데 이제 사용하지 않는게 좋겠다. 휴 그간 내뱉은 말들은 주워담을 수가 없는데. 강사란 업보를 쌓는 일이구나.


여러모로 기대가 큰 만큼 아쉬운 점도 많고 배울 것도 많은 시간이었다.

페미니즘이란 한 시대의 한계를 껴안아 터뜨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손희정, ‘다시, 쓰는, 세계’, 오월의봄, 2020, 132쪽)

요즘 주문처럼 외는 말이다. 너무나도 역력한 한계에 몸서리 치는 일이 잦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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