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03_화성시 청소년 성문화센터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강의
양평원에서 강사 위촉이 된 이후, 처음으로 양평원을 통해 강의를 의뢰 받았다.
화성시 청소년 성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성교육 활동가 양성과정에서 교육 참여자를 대상으로 ‘남성과 청년, 그리고 페미니즘’과 관련해 이해를 돕는 강의였다. 나 역시도 아직 양성된 지 얼마 안 된 초보 강사인지라 교육 참여자의 심란함이 격하게 공감 가서 나름 열심히 준비했다. 강의 제목은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단체명이기도 하면서 북토크, 강의 제목으로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위화감과 호기심이 교육 참여자의 관심을 끌기에 적절하다.
백 년만의 오프라인 강의라 좋으면서도 어색하고 더 긴장 됐다. 일단 아침 일찍부터 화성시까지 가는 게 한 번 고비였다. 물론 불안을 호로 가진 불안 이한은 예정 시간보다 30~40분을 일찍 도착해서 실무진을 당혹케 했다. 또 온라인 교육을 하며 대본을 읽는 것에 익숙하다가 현장에서 대본 없이 진행하려고 하니 다소 어려웠다. 그래도 막상 강의가 진행 되자 사람이 앞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또 앞으로 교육 활동을 희망하는 분들인지라 넘나 열정적인 교육 참여자여서 오히려 기운을 얻어갈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강의 내용에 대한 회고를 해보자.
강의 앞단에는 남성과 페미니즘의 연결고리를 흥미롭게 전달하기 위해, 나의 경험과 고민을 토대로 남성이 왜 페미니즘을 공부, 실천해야하는지 설명한다. 예전 강의에도 종종 사용했으나 TMI라고 생각해서 최근에는 많이 뺐는데, 이번 강의는 주제도 그렇고 적절히 내용을 줄여서 전달했다. 또 교육 참여자 입장에서도 스토리로 전달될 때 기억에 오래 남기도 하는만큼 도입부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교육이 끝난 후, 참여자 소감에서 이 부분을 인상 깊게 들었다는 소감도 들었다.(뿌듯)
그리고 1장을 마무리하며, 서로 페미니즘을 접한 계기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게 바로 오프라인의 묘미지. 온라인이었으면 줌의 소모임 기능을 사용해서 쪼갰다가 합쳤다가 다시 이야기 한 번 공유하느라 20분은 잡아먹었을텐데, 오프라인으로 앞뒤 자리 앉은 사람끼리 진행하니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참여자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한 번씩 할 수 있게 되면서 긴장도 풀리고 강의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는 것 같았다. 페미니즘 계기를 공유하는 것 자체도 나름 의의가 있다. 서로의 계기를 알게 되면서 다양한 방식의 접근법을 익힐 수 있고 나아가 자신의 초심을 되돌아보며, 페미니스트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되새긴다. 앞으로 교육 활동을 하며 복장이 터질 것 같을 때, 다시금 자신의 과정을 되돌아보며, 교육자로서의 다짐과 마음가짐을 되새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장은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으로 청년세대의 페미니즘 인식과 그 안에서 남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남함페에서 진행한 인터뷰 자료집 내용이 포함되는 등,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을 담았다. 먼저, 인터뷰 활동을 하며 인터뷰 참여자의 페미니즘 계기를 정리하고 의의를 설명했다. 이후 이들이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고 한계는 무엇인지 정리했다. 중요한 것은 이후 나오는 제언인데, 이 부분이 스스로도 아직 잘 정리가 안 된 것 같다. 사실 제일 중요한 부분인데 이 부분을 설명하기에 앞서 논리가 충분하게 쌓이고 전달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구체적으로 그래서 제안하는 바가 무엇인지 다소 명확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또 자칫 이 대목을 잘 해석하지 않으면, 그냥 변명처럼 들릴 여지도 있을 것 같다.
“‘남성’ 이란 무엇인가?” 해당 부분을 좀 더 구체적이고 길게 설명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코넬의 논의를 가져와야 할 것 같은데, 과연 내가 그걸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이 대목에서 그게 전달이 될까? 이 부분에 있어서 한 번 내부적으로 더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지금 조금 정리를 해보자. 남성성이란 무엇인가? 일단 ‘남성’이라는 섹스 구분에 대한 문제제기를 기반으로, 코넬은 남성성 역시 하나의 성격, 행동, 규범이기 보다 젠더 관계 속 장소이자 그 장소에서의 실천이고 그런 실천이 육체적 경험, 인격, 문화에서 만들어내는 효과라 이야기했다. 일단 여기까지 이해할 수 있게끔 설명하는 과정이 한 번 필요하겠다.
남성들은 이러한 남성성을 수행하며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중심으로 주변화된 남성성이 공모하여 남성연대를 구축한다. 그래서 남성연대에 균열을 낸다는 것의 의미는, 이렇게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중심으로 공모하는, 여성혐오적인 남성성 수행을 거부하고 이 질서에 반기를 드는 것. 그를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다양한 남성성의 형태를 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왜? 남성은 ‘남성성’이라는 동질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상상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 동질성에 균열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함. 이렇게 남성성의 저변을 넓히고 해체하는 과정이 결국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것, 그리고 이 이분화된 구조 자체가 흐리멍텅해질 수 있지 않을까. 어우 이걸 다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내가 다시 한 번 글로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할 듯 하다.
이후, 이들이 보이고 있는 페미니즘 실천에서 ‘남성성 수행에 대한 성찰’과 ‘남성적 위치에 대한 성찰’을 설명하며 현실에서 이게 어떤 식으로 실천되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전자는 “맨박스에서 벗어나기”로 설명된다.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보며, 나의 생각과 행동과 삶에 남성성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 때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 좋겠다. 예를 들어서, 친구들과 있을 때 일부러 거친 표현을 사용한다거나, 감정표현이 익숙하지 않다거나 하는 것. 이 과정에 대해 성찰하면서, 우리사회의 젠더구조 전체로 사유를 확장하는 과정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후자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설명한다. 지금 보니 설명이 조금 모호한 것 같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수업이나 모임 등의 공간에서 자신의 발언이 너무 길지 않은지 성찰하고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지 생각하는 것. 앞서 위치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나 그것이 활동 위축으로 귀결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젠더 관계 맥락 속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신의 위치성에 대한 성찰, 사실 모든 페미니스트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닐까 싶고 이 지점을 더더더 강조해야겠다.
그리고 마지막 제언은, ‘정치운동 공동체’의 필요성.
사회구조의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정치운동 공동체가 필요하다. 나부터도 아직 자신이 없고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계가 역력한 사람이고 누군가가 나보다 앞서 만들어 주었으면 해서 열심히 외치고 다닌다. 그래도 시도했던 기억들을 조금씩 꺼내면서 다른 사람들이 바톤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경험을 좀 더 꺼내보자.
결국 필요한 것은 손희정 선생님이 이야기한, “뿌리내리면서 이동하기”
나의 현실을 조건 짓고 있는 정체성과 위치성을 유념하며 운동을 추동하되, 동시에 이 정체성을 계속해서 해체하고 경계넘으려 시도해야 한다.
3장은 “남자 청소년 마주하기”라는 주제넘은 제목이다.
사실 나부터도 경험이 많지 않은데… 어쨌든, 교육 활동가 선생님들이 앞으로 남자 청소년을 만나면서 드는 어려움과 걱정이 많을테니, 이에 대한 이야기 나눔이 필요한듯 하여, 나보다 경험 많은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기워와 강의를 구성했다.
일단, 앞단에 남자 청소년을 이해하는 시간이 좀 더 충분히 필요한 것 같다. 최근 나온 청소년 대상으로 한 여정원의 연구자료들을 살펴보기도 했는데, 분량의 압박으로 충분히 설명을 못했다. 운 좋게도 최근 아하에서 진행한 섹슈얼리티 교육활동가 양성과정에서 이 내용을 분석해줬다. 이 부분에 추가해야지.
“경계에 선 남자 청소년”이라는 소제목으로 현황을 분석하고자 했다. 작년에 진행했던 아하의 포럼에서 발제를 하며 경계에 섰다는 표현을 써 보았다. 나름 그럴싸 한 것 같다.
먼저 이들은 ‘교육의 경계’에 서 있다. 성별에 따른 특권으로 인해서, 교육 시간의 부족과 내용구성의 어려움으로, 교육자의 여러 한계로 인해 이들은 교육에서도 경계에 서 있다.
두 번째로, 이들은 ‘남성성의 경계’에 서 있다. 사회경제적 변화로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비전통적 남성성이 등장하고 있다. 이것이 곧 성평등과 직결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자칫 시사인에서 이야기하는 ‘남성 마이너리티 자의식’을 호소하는 집단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음을 계속해서 추적하고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들에게 설명하며 가부장적 남성성 수호라는 구태와 새로운 헤게모니 남성성 구성이라는 새로운 재앙이 아닌 다른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생애주기상 이들은 학교에서, 또래문화에서, 미디어 등 세상 온갖 곳에서 계속해서 남성성을 학습하는 시기에 있다. 결국 남자 청소년은 폭주하는 남성성 열차에 탑승할 수도,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이며, 교육자로서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대안을 제시해주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나의 초라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몇 가지 현장에서 경험을 제시한다.
사실 이게 충분히 통용될 수 있는 것인지. 다른 교육자 선생님들이 보기에 우습지 않을지 걱정이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기에 조심스레 꺼냈다. 결국 교육 활동가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강의안과 강의내용에서 남자 청소년의 상황과 속도를 고려한 시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청소년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사례를 몇 가지 소개했다.
나아가, 사실 강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훨씬 많은 현실을 고려하여, 그저 강의안, 교육 방법과 내용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학교라는 제도와 공간을 넘어선 활동이 필요함을 이야기 했다. 사실 교육 시간이 충분했다면, 교육 현장이 충분히 페미니즘 친화적이었다면, 더 나았을 교육이 얼마나 더 많았을까. 그런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쨌든, 정치력이 필요한게 아닐까 싶다.
교육 활동가로서, 교육이 교실 안에서 그치는 게 아님을 이야기하고 더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고 상상할 수 있게끔 하는게 교육 활동을 앞둔 선생님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모르겠다. 다만, 내가 어느 교육을 한 번 제대로 조지고 난 후, 학교 밖을 터덜터덜 나가며 자괴감에 빠져 있을 때, 조주빈의 40년 형을 보고 조금이나마 위로 받고 의지를 돋울 수 있었던 경험을 되새겼다. 몇 번이나 썼지만, 여전히 위로가 되고 주문처럼 되뇌는 말, “페미니즘이란 한 시대의 한계를 껴안아 터뜨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손희정, 2020)
마지막 4장은, “성평등을 위한 지도 그리기”라는 제목으로 붙였다.
지도를 그린다는 것이 누군가의 길을 함께 걷고 또 새로운 이가 편히 길을 같이 걸을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교육 참여자들이 지금까지 들었던 것을 정리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다. 종이에 교육 내용을 한 번 정리해보는게 참여자 입장에서 기억에도 오래 남고 좋아서 활용해봤다. 나아가 어떻게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고 공부하는지 방법도 공유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후원하는 페미니즘 단체를 사심 가득 담아 소개했다. 남함페랑 유니브페미, 위티.
강의 마무리에 항상 쓰던 백신 얘기는 빼버렸다.
대신 그냥 그간의 변화를 톺아주는 이야기로 대신했다.
많은 이들의 노력과 활동으로 어떻게 변화가 이어지고 있음을 잘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와 응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거진 세시간 짜리 강의. 정리하는데만도 한나절이다. 그래도 앞으로 이런 강의가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 기회가 되면 남함페에서도 꼭 자리를 마련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