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비가 그쳤다.
늦여름까지 지칠 줄 모르던 더위는
한바탕 쏟아진 비에 그 기세가 꺾였다.
유난히도 긴 여름이었다.
우직하게 버틴 시간을 곱씹는다.
제법 미소지어 봄직 하나
역시 쓰게 웃기 편하다.
잔해를 헤치고 나온 꽃들에,
끝끝내 열매 맺은 나무에,
소리쳐 숨통 틔운 생명에
경배한다.
그대들은 내가 못한 큰 일을 했노라고,
버티고 버텨서, 견디고 견뎌서
오롯이 스스로 짊어져야 할
큰 고독 물려주었다.
적지 않은 세월에,
적을 수 없는 말들을 묻어두고
가을걷이를 떠난다.
멸종을 다짐하는 노래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