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의 면담, 퇴사는 아무나 하나
연봉협상이 완만히 마무리되고,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수술 후 적당히 힘든 회사생활이었기에, 작별통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들 나를 동정하고 있는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은 지나치게 어려웠다. 자그마치 9년, 이렇게 진하고 길었던 연이 있었던가. 마침 팀장님은 코로나로 재택근무 중이셨다. 좋은 핑계였다. 아무리 그래도 전화로 사직의사를 전하는 건 아니지, 하고 이틀을 미뤘다. 하루이틀 더 미룬다고 마음이 편해질 것은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불편할 것도 없다, 하면서도 당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용기는 예상되는 문제점의 코앞에서 발휘된다. 생각보다 팀장님의 부재가 길어지고, 이러다가는 사직 일정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초조해진 나는 드디어 전장으로 나섰다. 팀장님 대신에 차장님을 찾아 사직의사를 밝혔다. 차장님은 온갖 옵션을 제시하며 만류하셨다. 재택근무를 하는 방법도 있고, 원하면 출퇴근시간을 조정할 수도 있다며 계속 나를 설득하셨다. 이직의 옵션을 밝히지 않았으니 당연한 전개였다. 힘들다는 말을 하며 눈물을 흘렸는데, 그땐 몰랐다. 내가 이 눈물을 네 번 더 흘려야 했다는 것을...
쭈뼛쭈뼛 하루가 갔다. 눈만 마주치면 다시 생각하라는 사람들, 이젠 더 이상 동료도 식구도 아닌 것만 같은, 스스로 낳은 박탈감. 그러나 내가 마주해야 할 마지막은 결국 떠남이기에, 묘한 후련함도 있었다.
팀장님의 복귀와 함께 두 번째 면담이 이어졌다. 엄마역할에 충실하겠다는 내 거짓말에, 그간 지켜봐 온 나는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 후회할 거라고 하셨다. 맞는 말이었다. 마음을 정했다며 그저 고개를 젓는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은 가장 친한 나의 첫 사수, 나의 멘털을 관리해 왔던 과장님과의 면담이었다. 어쩌다 보니 과장님께도 이직얘길 꺼내지 못했고, 나를 잘 아는 과장님은 내 이별통보에 의아해하셨지만, 더 묻지 않고 좋겠다. 하셨다.
과장님의 좋겠다, 얘기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가벼워졌다. 사직의 날까지의 2주, 태어나 처음으로 날아갈 듯한 걸음을 하며 출근했다. 지하철에서 마주하는 성난 어깨들도 밉지 않았다. 계단을 막아서 느릿느릿하게 걷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그냥 천천히 걸었다. 들끓던 화들이 멈추었다.
그리고 마지막, 사업부장님의 콜이 떨어졌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상무님, 내 언젠가 조직장의 역할을 할 날이 온다면, 그를 닮은 리더가 되고 싶었다. 상무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회사가 싫다고 하면, 내가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이 회사를 바꿔주리라 하고 싶은데. 엄마가 되겠다고 하는 너를 어찌 말리겠냐고... 이 자리를 지킬 수 있다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언제든 후회하는 날이 있거든 연락을 달라고 하셨다. 그 말의 무게가 얼마나 중하였든, 상무님의 마음이 담긴 말이었기에 나는 또다시 울 수밖에 없었다.
떠나고자 하고 돌아보니 모두 사람이었다. 씁쓸한 인생을 먼저 걸어갔던 선배들이자, 아버지들이었다. 언젠가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내가 이곳에서, 사력을 다하여 버티고 나아가면, 그러면, 아이를 몇 번 안아 준 적이 없었다는 저기 저 부장님이 되는 걸까. 내가 달리고 달려가면, 결국 그들이 되는 걸까.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것이 가늠되지 않았다. 그러니 충분히 씁쓸한 인생이었을 테다. 나는 내 발로 이곳을 떠나지만, 그들은 언젠가 등 떠밀려 이곳을 떠나게 될 텐데... 그때부터 나는 의식적으로 꼰대라는 말을 지양했던 것 같다. 모두 사람이었다.
그 후로 이웃 부서의 상무님과의 한차례 면담이 더 있었다. 남은 시간엔 동료들에게 꾸역꾸역 인수인계를 했다. 정성을 쏟아 관련 자료도 만들었다. 인수인계서가 완벽해야 전화가 오지 않는다. 그래야 아름다운 이별, 성숙한 이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하루는 쌓인 서류들을 갈기갈기 찢어 파쇄하고, 며칠간 조금씩 짐을 정리해 갔다. 퇴근길의 두 손이 줄곧 무거웠다.
덕분에 마지막 출근날에 박스를 들고 서글피 회사를 떠나는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내일 다시 올 것처럼 회사를 나섰는데, 모든 동료들이 나를 마중해 주었다. 다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사람들. 나는 그렇게,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12월의 어느 날, 9년간의 만남을 마무리했다.
도비는 (잠시동안)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