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늙어버린 한 여자의 시샘
플라워 클래스. 젊고, 예뻤고, 시간도 돈도 많았던 그 시절을 모조리 미래에 양보한 탓에, 나이가 들고, 살이 찌고, 그 무엇도 여유롭지 못한 오늘에서야 가게 되었다.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허겁지겁 도착한 클래스에는 일찍이 온 몇몇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어쩌다 보니 그중 젊고 예쁜 여자 옆에 앉게 되었다. 곧 정시에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을 기다리는 5분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밀려오는 짜증을 참는 나에 반해, 그 여자의 대기시간은 설렘으로 가득 차 보였다.
마침내 강의가 시작되었다. 꽃을 배달하러 온 줄 알았던 덩치 큰 남자가 자기소개를 했다. 자기소개와 소재소개 그 모든 것에 성의는 보이지 않았다. 강사는 부족했던 설명을 뒤로하고 마구 꽃을 잡았다. 꽃꽂이에는 태생적인 영감이 필요하다지만, 이럴 거면 꽃시장에 가는 게 나았다. 나는 다음은 없다 다짐하였고, 내 옆의 여자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가지런하고 까만 눈썹이 잔잔한 미소에 자주 기울어졌다.
나는 꽃이 좋다. 화사하게 피어나 생기 있는 향기를 내뿜는 꽃을 보고 있자면, 어딘가 의식하지 않았던 아픔이 위로받는 느낌이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무기력함과 상실감이 나를 감쌌다.
제법 찬 공기의 냉정한 퇴근길을 괜히 걸었다. 손에 든 꽃 뭉치가 무겁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를 떠올렸다. 그녀가 만든 암부케는 본인의 기품을 닮아 온화하고 화사했다. 무능한 강사는 유독 그녀에게만 친절한 것 같았다.
갓 집 밖을 나온 듯 뽀얀 얼굴, 단정한 원피스, 높지 않지만 반짝이는 구두와, 왼팔의 디올백. 곱게 안아 든 화사한 꽃다발, 어여쁜 걸음. 매서운 질투심이 일었다. 그녀의 발그레한 꽃이 얼른 시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방이었을까, 젊고 예쁘고 정돈된 외모 때문이었을까, 다 가진 것 같아 보이는 그녀가 가뿐히 보여준 재능 때문이었을까. 이 감정을 헤아려보려 노력했지만 생각해 낸 것들은 거의 다 원인이 아니었다.
그 시절은 나에게도 있었다. 밉지 않은 얼굴은 자주 거울을 들여다봤고, 아낌없이 웃었다. 졸업 후 공백 없이 취직한 나는 저리 써도 닳지 않을 돈을 벌었다. 근데 왜 난 이제야 여길 온 걸까. 우지끈 우지끈 쉴 새 없이 돌아오는 주기의 치통에 왜 적응해 버린 걸까.
그랬다. 나는 그 불친절한 강사 말고, 젊고 예쁜 여자가 아닌, 나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다. 그 고운 시절을 왜 오늘에 양보했느냐고. 그리하여 거머쥔 나의 오늘이 그 여자의 암부케만큼 근사했냐고 말이다.
나도 모를 이 복잡한 심경을 남편이 알아줄 리 없기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이 장황한 질투의 여정을 들은 엄마는 호탕하게 웃었다.
- 우리 딸, 늙었네.
나보다 더 많은 것을, 훨씬 더 값진 것을 포기하고 이젠 세월만을 등에 업은 엄마가 웃었다. 뿌옇던 머릿속이 수줍게 개었다. 엄마는 달디 단 젊음을 내어주고 나를 얻었다. 꺾인 꽃은 당신에겐 사치였지만, 딸에겐 꽃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며 키웠다. 그 딸은 오늘 세 살 된 딸에게 선물할 꽃다발을 만들다 우울하다 하였다. 엄마에게 미안했다.
긴 퇴근길을 돌고 돌아 도착한 집은 포근하고 향기로웠다. 세 살 나의 딸은 차갑게 식은 내 귀에 작고 고운 손을 오므리고 사랑한다 속삭였다. 내가 그 시절과 맞바꾼 바로 그 오늘이다.
대게의 오늘은 어제를 후회한다. 지나왔기에 비로소 아쉬운 점이 보이기 마련이고, 포기했기에 얻은 것들은 쉬이 당연해져 버린다. 과거의 나는 늘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 다시 복기해도 크게 틀리지 않은 수였다. 남의 꽃이 시들기를 염원한 부끄러운 나의 오늘은, 일찍 움튼 봄 앞에 찾아온 꽃샘추위 같은 심술이었으리라.
기어이 풀어헤쳐 다시 꽂은 꽃은 그제야 핀듯했다. 진한 꽃향기가 거실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