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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꽃봄 Apr 19. 2023

양양에 살자, 6개월간 품은 기다란 꿈

젊음과 비례하게 돈이 없는 정직한 우리

   


    지난해 11월, 꿈과 같은 집을 만났다. 시골살이를 꿈꾸던 나에게 운명같이 나타난 집이다. 지우는 어여쁜 손으로 아직 생기 있는 들풀을 살랑살랑 만졌다. 집 앞 작은 개울을 들여다보며 물고기가 사냐고도 물었다.


   기억 속 강원도는 어딘가 추웠다. 여름엔 한없이 청량한 곳이지만, 겨울엔 메마르고 추운 곳. 투박한 산세가 주는 느낌 때문이겠다. 그러나 이곳은 달랐다. 집을 둘러싼 나작한 산은 온화했다.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햇살마저 ‘ 난 여기가 더 좋아 ‘ 하는 것 같았다. 단풍과 함께 져버린 가을 끄트머리에 서서 이른 봄을 선물 받는 기분이었다.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풀과 함께 자란 나로서는, 시골 살이는 귀로 같은 것이다. 아이를 키우고 있다 보니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이때 접한 ‘오도이촌’ 라이프는 가문 땅에 단비와도 같았다. 주말마다 접할 수 있는 마당 있는 집이라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이틀 시골에서 받은 푸른 에너지로 나머지 도시에서의 잿빛 닷새를 이겨내고 있었다.


  극동(?!)에 위치한 지금의 우리 집도 좋았다. 매일 나를 지치게 하는 머나먼 출근길의 근원이자, 인생의 80%를 길 위에서 보내게 한다는 전설의 경기도지만, 양양까지는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강원도에서의 내 삶이 멀지 않게 느껴진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것과 필요한 것의 괴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경계를 두고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잘 배운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보아도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시골집이라 대출도 녹록지 않았다. 매일 상상 속 내 보금자리를 검색하며 거래여부를 확인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부유한 삶을 살아오진 않았지만, 크게 아쉬울 것도 없는 삶이었기에 물리적인 여건에 부딪혀 도전하지 못하는 것에 유난히 큰 상실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양의 햇살 좋은 집은 나를 기다려 주었다. 여러 번, 여러 사람에게 갈 뻔했던 집은 끝끝내 새로운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올봄을 맞이했다.


   꿈같은 봄을 맞이하기까지는 많은 일이 있었다. 몸과 마음이 성치 못한 때에도 쉬지 않고 나아간 덕에 이직을 할 수 있었고, 퇴직금이라는 총알이 생겼다. 아무래도 빚을 져야 하겠지만, 처우가 달라졌으니 이자든 뭐든 감당이 될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훌륭한 파트너까지 만났다. 앞으로 생길 아이의 기억에 양양을 선물하고자 하는 이들이다. 이후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수입원으로서 이 집의 역할도, 운영자로서의 우리의 역할도 착착 정해졌다. 물질적인 걱정 없이 시골살이에 뛰어들기에는, 우린 젊고, 딱 그에 비례하게 돈이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고민하고 준비해야 했다. 이 시간은 조금도 고되지 않았다. 오래 꾸었던 꿈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 매일이 설렐 뿐이었다.


   얼마 후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주말 간 햇살집을 보고 싶어 하는 매수자가 있다고 했다. 능수능란한 부동산 사장님의 거래 재촉이었겠지만, 결정을 하고도 따라왔던 머뭇거림이 간단히 제거되었다. 곧 나의 오랜 염원은 가계약금 조금과 계약서 하나로 현실이 되었다. 다가오는 토요일, 우리는 양양에 간다. 먼지 쌓인 도장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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