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시킨 일
다니엘라 부부와 우리 부부는 직장동료사이였다. 차라리 돌멩이가 되는 것이 나으리!! 하던 신입사원시절, 숱한 회식자리, 밤새 들이 부은 술에 느지막이 맞이했던 아찔한 아침, 층 전체가 떠나가라 혼이 났던 흐린 날, 설레던 첫 진급, 그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그 세월이 어느새 9년이 되었다.
나와 나의 남편 진은 먼저 회사를 떠났지만, 우리는 종종 만났다. 짧은 만남에도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양양의 꿈도 그리 나누게 된 것이었다. 과장진급을 앞둔 다니엘은 회사를 떠나겠다고 했다.
올해는 유난히도 일찍 꽃이 졌다. 하얗고 몽글몽글하던 나무들이 꽃잎을 떨구고 여린 잎을 내던 지난달, 직접 햇살집을 보고 싶다는 다니엘라 부부와 양양에 갔다. 그날 서울은 미세먼지가 짙었다. 안경을 잊고 나온 듯한 뿌연 도시를 뒤로하고 쭉 뻗은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내달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창밖의 풍경이 웅장해지고, 시야도 뚜렷해졌다.
햇살집은 그날도 어김없이 세상의 볕을 끌어모으고 있는 듯했다. 눈 끝에 걸린 푸른 밭, 꽃나무 위에서 떼 지어 지저귀는 새들, 개울에 움튼 할머니의 꽃씨, 대나무를 스치는 바람소리, 모든 것이 완벽했다. 다니엘라 부부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읍내에 들려 간단히 장을 보고, 대포항에서 숭어, 황복어, 광어, 마지막으로 제철 도다리로 회를 떠서 숙소로 왔다. 양양 바다 앞의 작은 시골집이었다.
밥냄새로 한층 더 정겨워진 집에서 달콤한 술이든 술잔을 한잔씩 기울였다. 긴장이 풀렸다가, 다시 설렘에 부풀었다가 하였다. 주방엔 매운탕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 시간이 아까워.
과장 진급 후에 나오지 그러냐는 나의 물음에 다니엘은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아보고 싶은 거야.
술잔을 든 우리 모두가 그랬다. 부지런히 공부해서 대학을 가고, 낙원의 생활은 잠시 곧 취직준비에 바빴다. 남들이 보기에 늦지 않은 시기에, 남의 눈에 보기 좋은 대기업에 입사해서 기계처럼 회사에 다녔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 정도에 나의 가치를 가둬두고서.
바삐 살라 등 떠민 사람도, 채근한 사람도 없었다. 그저 우리에겐 자아를 돌아보고 행복을 논할 겨를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그 방법을 몰랐다. 완벽한 독립을 이룬 지금에서야 한번 고민해 본 것이다. 그저 남의 눈에
보기 좋은 삶을, 단 한 번 주어진 오늘의 삶을 진중한 성찰 없이 살아도 좋은가. 그리 살아온 부모로서 내 아이에게는 어떤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술잔을 내려놓고 잠시 나가 양양의 바람을 맞았다. 머리카락을 마구 흩트려놓는 강한 바람이었다. 우연히 시선이 닿은 밤하늘은 까맣고 빛났다. 동쪽 하늘에서도 빛나는 반짝반짝 작은 별. 땅보다 하늘이 더 화려한 양양의 밤이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