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꽃봄 Apr 24. 2023

양양 시골집 계약하기 - 1

꿈과 현실, 그리고 시작된 타협


    2023년 4월 23일 10:30 am, 고대하던 여정이 시작되었다. 다니엘라 부부와 시골집을 계약하러 양양으로 출발했다. 주말 정체를 피해 요리조리 시골길로 이동하며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간중간 아늑한 시골집이라도 보일라치면 잠시 속도를 늦추어 진득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이날의 스케줄은 빽빽하게 계획했다. 계약을 하고 - 집안을 다시 확인하여 공사에 필요한 치수를 재고 - 시공사 상담과 견적의뢰도 할 참이었다. 주말의 이동시간까지 감안하면 하루가 꽉 찬 일정이었다. 그 과정에 필요한 일련의 작업들은 네 명이서 고루 나눴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대부분 각자 잘하는 분야의 일들 위주였다. 나 역시 공동 명의에 대한 부담이 상당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서로의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동산에 도착한 후 처음 뵌 부동산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매일 목소리만 듣던 사장님이셨는데, 생각보다 푸근한 인상이셨다. 사장님께서는 우리 넷과 집주인분에게 시원한 박카스를 꺼내주셨다.


    곧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부동산 사장님께서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집주인 쪽에서 하나 양해를 구한다며, 잔금 이후에 현 집주인이 이주할 집의 공사 때까지 3일간의 시간을 기다려 달라는 부탁이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요청이었다. 우리로서는 평일에 입주할 계획이 없기에 무리는 아니었지만, 보통은 이삿짐 업체에 짐을 보관하지 않던가..? 첫 번째 물음표가 생겼다.


   영업 일선에서 일을 했던 나는, 이 양보로 경계측량을 타협해 보자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냈지만 이는 단칼에 거절되었다. 계약 전에 협의된 사항이 아니었기에 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괜히 억울했다. 부동산 사장님은 서울에서 온 이 이방인들 보다는 집주인 쪽을 대변하셨다. 섭섭한 마음에 생긴 두번째 물음표 위에 먼지를 털어낸 도장을 찍었다.


   우리에게 유리한 추가적인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 협상이라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동네이긴 했다. 잠시 어색한 기운이 흘렀다. 괜히 속상한 마음을 뒤로하고 시골살이에 대한 소소한 궁금증을 꺼내놓았다. 동파가 있던 적은 없는지, 겨울에 난방은 어떤지, 뱀을 포함한 야생동물은 어떤지... 계약은 이루어졌으니 참고할 만한 사항을 최대한 조언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우리가 더 얻을 수 있는 건 이 정도 인 듯했다.


   집주인은 한결 경계를 무너뜨리고 열심히 고민하며 시골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집주인 역시 외지인 출신으로, 동네분들께는 첫 만남부터 조용히 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큰 간섭 없이 2년을 살았다고 한다. 쓰레기장은 작은 다리 건너 길가에 있고, 겨울에 동파한 적은 없으며, 새끼 노루들이 가끔 출몰하고 뱀을 본 적도 있다고 했다.


   

   세상의 햇살의 편애를 받는 듯했던 햇살집도 겨울엔 춥다고 했다. 강원도 답게 바람이 매섭고, 등유값이 올랐을 땐 기름보일러가 큰 부담이었다고 한다. 귀촌 커뮤니티에 올라오던 류의 에피소드이다. 꿈이 현실로 다가온 만큼, 시골살이의 현실도 나의 일로 한 폭 더 가까워졌다.


   계약을 마친 후에는 실측을 위해 햇살집으로 이동했다. 창밖에 보이던 어두운 바다 색이 푸르름을 되찾고 있었다. 개개인의 기분과 정서에 따라 색을 달리하는 양양의 바다, 변덕의 하얀파도, 그리고 그 위로 매끄럽게 서서 파도를 타는 사람들. 지우가 매주 뽀로로빌리지 대신에 만날 풍경들이다.

이전 02화 양양의 밤, 단 한 번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