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와의 만남
계약이 끝난 후에는 시공사 견적을 위한 미팅일정이 남아있었다. 업체와 함께 집의 내 외부를 둘러보며 견적이 필요한 부분을 추려내기로 했다. 구조적인 면에 있어서는 당장 수리가 필요한 화장실과 지붕개량, 무단 증축으로 의심되는 구역의 철거 등을 고려했고, 외관적인 면에 있어서는 하얗고 깔끔한 외장으로 바꾸고 싶었다.
처음엔 붉은 벽돌집을 하얗고 매끄럽게 고칠 생각이었다. 반짝이고 세련된 지붕도 얹고, 하얀 담장도 칠 생각이었다. 시골집을 개량했다고 하며 올라오는 대부분의 집들이 그랬고, 나 또한 그게 예뻐 보였다.
그러나 두 번째 시공사 미팅에서 와장창, 주관이 무너졌다. 어렵게 양양까지 와주셨는데, 사장님은 당장 집을 고치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살아보고, 적어도 몇 개의 계절을 겪어 보고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추운지, 더운지. 이렇게 귀한 색을 띠고 있는 벽돌집을 정말 하얗게 덮어버릴 생각인지, 한번 살면서 고민해 보라는 사장님의 말씀이셨다.
그 한마디에 얼른 가려버리고 싶던 빨간 벽돌이 어여쁘게 느껴졌다. 하긴, 지극히 시골스러우면서도 기개 있는 이 집의 분위기에 끌렸던 것이었다. 지금 개량되고 있는 수많은 집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컬러 강판으로 씌우려 했던 지붕도 곰곰이 고민하게 되었다. 칼라강판은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만 같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저히 지금의 해진 파란 지붕 말고는 이 집 고유의 멋스러움을 유지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대로 두자니 슬레이트가 문제였다.
잔디를 심을 계획이었던 마당은 다른 옵션을 찾아보기로 했다. 오도이촌 생활에서 잡초만 뽑다 이틀이 가버리는 것은 아무래도 싫었다.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종합하자면, 모든 것이 無의 형태로 돌아갔다. 계약일이 다가오기 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디자인했던 것들이 모조리 수포가 되어 날아갔다.
- 담장은 높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해가 저물고, 서울로 돌아오던 우리는 차 안에서 많은 대화를 했다. 하얗고 높게 쌓고자 했던 담장은 낮은 돌담으로 바꾸기로 하였다. 햇살집엔 높은 담장으로 가려야 할 빽빽한 이웃집도 없고, 보안이라면 담장의 유무로 그 기능을 다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 벽돌은 그대로 두자.
각자 많은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한 목소리를 내는 포인트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외관 문제였다. 막연히 대세를 따르려 했던 우리는 ’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강조할 것인가 ‘의 각도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선택의 폭이 좁아지고, 더 깊은 사유를 요했지만, 나는 이 여정에 사랑이 함께했다고 생각한다. 바꾸지 않고 그대로 보아도 예쁜 사랑의 시선, 다르게 사랑하는 법. 이 까다롭고 행복한 사유는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