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봄 Oct 14. 2016

이별

할 수 있었구나, 우리도.

안녕? 오늘은 2016년 10월 13일, 우리가 만난지 1583일 되는 날이야! 스무살 처음 오빠를 알게 되고 나서 많은 행복을 느꼈고, 사랑하는 마음도, 사랑 받는 마음도 가득하게 느꼈어.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랑 많은 걸 같이 해주고, 내 가장 사소한 얘기도 들어주고, 우울할 땐 달래주고, 흔들릴 땐 같이 버텨줘서 고마워. 정말 고마워. 그냥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 이 편지를 써. 지금까지는 어떤 계기가 없어서 그랬는지 내 자신을 이번처럼 (지난 2주) 돌이켜볼 기회가 없었어, 아니 돌이켜보지 않았어. 주마등처럼 스치는 지난 시간과 추억, 웃음소리, 서로 주고받은 대화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 흐르는 모래 같이 보였어. 작은 기억 조각들이 한아름인데, 그 중엔 즐겁고 밝은 기억이 대부분인데, 막상 자꾸 마음에 와서 박히는 것들은 내가 했던 실수들, 마음과 달랐던 날카로운 말들이더라. 오빠를 만나고 많이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내 자신에게서 너무 부족한 모습이 많이 보이더라.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내 모습들이 (부정적인; 이기적으로 굴고, 상처주는 말하고, 인정해주지 않고 등) 적나라하게 보이더라. 수도 없이 많았을 거라 일일이 사과할 수도 없는 내 어리석은 실수들도 미안해. 가장 소중하고 값진 걸 그만큼 소중하게 대하지 못하고 있던 나를 발견했어 - 어느샌가 당연히 여기고 있던 내 모습을. 밀려오는 추억을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난 처음이라 정말 잘 모르겠고 자신도 없어. 사소한 얘기를 늘어놓을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더라. 이번에 깨달았어. 오늘 점심엔 뭘 먹었는지, 오늘 들은 재밌는 농담은 뭐였는지, 무슨 일로 언짢았는지 조잘댈 사람이 있고, 그 얘기를 다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건 큰 행복이더라. 참 고마워. 끝까지 가르침을 줘서! 지난 며칠 밤은 침대에 누워서 오빠가 바로 옆에 있으면 어떨까 상상을 했어. 조잘대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잠들어버릴 나지만, 상상 속 내가 행복해보였어. 이게 행복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엉성한 손으로 생선조림도 해먹이고, 같이 발가락 꼬물대면서 쇼파에 앉아 영화도 보고, 그러면서 동시에 가장 사소한 얘기도 나누고 싶은 사람이 지금 이 지구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게 오빠더라. 다음에 만나는 사람은 나보다 순대국도 잘 끓이지만, 무엇보다 오빠를 더 믿어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때론 그게 두려움이 되어서 온전히 믿지 못했고, 그냥 어리석어서, 너무 어리석어서 그대로 품어주지 못한 게 후회돼. 늘 행복해야해!

작가의 이전글 사랑의 무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