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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Apr 15. 2023

혜림, 모밀국수, 가을

내 심장을 만든 사람에게

처음이었다. 밀국수라는 음식을 맛본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사실 나는 밀국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고, 그 간장맛 나는 소스에 밍밍한 국수를 담가 먹는 게 뭐가 맛있는지 모르겠다. 뷔페에 가면 아직도 메밀국수가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나는 먹지 않는다. 그날 그 국수의 밍밍함과 차가운 육수처럼 내 마음도 밍밍하고 차가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따뜻한 배려가 더 힘겹게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혜림'은 내 정신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친구이다. 우리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이고 거의 30년 동안 생사를 확인하고 안부를 묻고 얼굴을 보며 지내고 있다. 물론 진짜 생사를 확인하고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는 수준이다. 바쁠 때는 1년, 2년도 넘게 연락을 안 할 때도 있다. 일상의 만남이 주는 그런 관계를 원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늘 가슴 한구석에 그 사람의 자리가 있다. 언제든 한 10년쯤 연락을 하지 않더라도 서운하지 않고 우리가 친구가 맞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사건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떠는 것은 그 일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직장동료가 제일 적당하다고 생각한다.)하면 된다. 하지만 내면의 갈등이나 삶이 너무 무겁다고 느껴질 때는 직장동료에게는 갈 수가 없다. 아마도 내 심장의 깊은 곳에 있는 슬픔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아닐까?


그녀가 나에게 사 준 첫 저녁이 밀국수이다.

고등학교 3학년 그 척박한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연애를 했던 것 같다. 바로 옆에 앉아 있으면서 쪽지를 주고받고 서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마음껏 하지 못하고 같은 반 다른 친구들과는 하하 호호 시답잖은 수다를 떨다가도 둘이 있을 때는 괜히 무슨 심리학자가 된 마냥 철학자가 된 마냥, 평론가가 된 마냥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을 논하고, 퀸의 음악세계가 어쩌니 이문세와 이영훈의 관계를 논하고 대체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을 만큼 항상 진지하고 심각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미친년들처럼 뛰쳐나가서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빗소리를 반주삼아 불러대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쥐어짜면서 감독선생님의 눈의 피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교실로 잠입했다. 자율학습을 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별을 보러, 달을 보러, 바람을 맞으러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수학 문제를 한 문제 더 풀었어야 하는 거였나? 혜림이는 그런 일탈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제법 안정적인 성적을 유지했고 물론 집안 어른들(대학 입학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교수님, 어머니는 고등학교 교사로 두 분 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셨다)의 기대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그래도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었다. 나는 수학에 발목이 잡혀서 다른 과목들도 흔들흔들하더니 결국은 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던 대학에 원서를 쓴 날 1년 만에 처음으로 그녀와 밥을 먹었다.


그때 먹은 음식이 밀국수였다. 판 밀...


그녀는 너는 신문방송학과나 언론학과 이런데가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왜 경영학과를 쓰냐고 했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학과에 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다. 그날, 1년 동안 그렇게 붙어 다니면서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나의 상황에 대해서 말을 했던 같다.


나는... 무조건 국립대학교를 가야 하고 졸업하면 바로 취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혹시라도 떨어지면 재수를 할 수도 없는 형편이므로 안전하게 안전하게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대학에 원서를 쓰는 거라고...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아니고 해야만 하는 걸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아... 몰랐어... 나는 네가 원하는 걸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거든. 그래.... 고마워... 그렇게 말해 줘서... 나도 내가 원하는 대로 있으면 좋을 같은데 그게 될지는 모르겠어. 솔직히 사립대라도 가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속상하거든...


집안형편을 보면 실업계 고등학교를 갔어야 하는 상황이었겠지만 적어도 공부 잘하는 딸을 직업전선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다는 부모님의 강한 신념이 있었기에 사채를 끌어다가 생활비를 감당하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나는 당연히 대학을 가는 사람이었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안 가고 인문계를 것도 감지덕지 사립대는 꿈도 못 꿀 상황이었다. 뭐 전액 장학금을 받을 만큼 엄청나게 성적이 좋았으면 또 상황은 달라졌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었다. 더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잠을 안 자고 문제를 푸는 시간만큼 점수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었고,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내가 밉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내면적으로 많이 방황하고 좌절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나의 현실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처음 먹어보는 밀국수는 정말로 밍밍하고 차갑고 서늘한 맛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직도 메밀국수를 먹지 않는다. 먹을 것이 딱 하나 메밀국수만 있다고 하면 나는 그냥 공복의 즐거움을 만끽할 것 같다.

하지만 그날 그녀와 그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깊은 친구 사이가 있었을까? 서울과 부산에서 떨어져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소식을 전하고 연애하는 사람들 마냥 영혼이 공허함을 느낄 때면 서로를 찾았던 그런 친구가 있었을까?




그녀는 결국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의 부모님 표현에 의하면 돌연변이지만(그녀의 여동생과 남동생도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신문사,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잡지인 씨네 21을 거쳐 부산국제영화제, 환경영화제, 음식영화제를 디렉팅 하고,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치고 있으니 진짜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아주 현실적인 직업을 택하고 그 길을 걷고 있지만 그녀의 행보를 보면서 흐뭇해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아서 글을 쓰고 있다.


문화적인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직업을 가진 나에게

"은퇴하면 너 하고 싶은 거 해. 의무는 이제 그만하면 충분히 했잖아? 한번 사는 인생인데, 가슴 뛰는 일 한 번은 하고 죽어야 덜 억울하지 않겠어?"라고 말해주는

내 가슴을 이해해 주는 친구...  

오늘도 줄담배를 피워대며 영화와 씨름하고 있을 친구에게 그날 너무 고마웠다고 새삼 다시 전하고 싶다.


너의 영혼에 내가

나의 영혼에 네가 깃들어 있음을 감사하며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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