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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Apr 17. 2023

미현, 왕더듬이 앞머리, 원초적 본능

원초적 본능에 도전한 모범생?

왕더듬이 앞머리!!


앞머리에 무쓰를 잔뜩 발라서 더듬이를 위로 한껏 치켜올렸다. (건축학 개론의 납득이나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 친구 머리모양을 떠올리면 되겠다.) 하얗고 조그마한 얼굴, 얼굴의 반만 한 왕안경, 눈이 조그맣게 보이는 두꺼운 안경알, 앞머리가 얼굴 반만 하다. 두꺼운 안경알을 뚫고 나오려는 듯이 눈빛은 매섭다.


저거 머리모양 만드느라 무스 한통은 썼겠지? 그나저나 대단하네. 아침부터 저 머리모양 만들어서 고정시키려면 힘들었을 텐데. 뺀질거리는 스타일일 것 같다.

어쭈?그나저나 학생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네?


덩치도 쪼그마해서 교복이 커 보이는 그녀는  의자에 꼿꼿이 등을 붙이고 다리를 꼬고 앉아서 한쪽손으로는 왕더듬이를 손가락에 끼워서 비비 꼬고 한쪽손으로는 책장을 넘기고 있다.


뭐야! 교실에서 잡지책을 저렇게 당당하게 읽고 있다고? 강심장이네. 담임 나타나면 쟤 때문에 괜히 우리가 야단맞는 거 아냐?


뭐지? 특이한 스타일이네.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특이한 스타일인데? 무슨 책을 저렇게 읽는 거야? 궁금한데? 또 괜한 호기심이 발동해서  슬그머니 뒤로 돌아 그 친구의 옆을 지나가면서 잡지책의 정체를 확인해 보았다.


맙소사! 수학 참고서??수학 참고서를 저 자세로 보고 있다고? 패션잡지책도 아니고 소설책도 만화책도 아니고 수학 참고서를? 뭐야? 천재 아니면 또라이?

(그녀는 천재쪽이다. 수학을 눈으로 공부하고도 송중기랑 동문이니까 천재인 것 같다.)


딱 이게 첫인상이다. 충격적인 헤어스타일과 더 충격적인 공부법? 더 놀랄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교실 뒤쪽이 시끌시끌하다. 그 친구의 무용담이 펼쳐지고 있다.


말해봐. 어땠는데? 샤론스톤 진짜 이뻤어? 그거 의자에 앉아서 다리 꼬는 거 진짜 큰 화면에서 보니까 어떻든?

와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들어갔어? 학생증 검사 안 했어? 진짜 좋았겠다. 진짜 멋지네.


안 잡던데? 내가 좀 성숙해 보였나 보지. 흐흐. 너네는 다음에 비디오 나오면 빌려봐 봐. 아저씨가 안 빌려 줄 수도 있겠다. 흐흐

 

원초적 본능!

청소년 관람불가로 개봉해서 우리는 한밤의 TV연예에서 늘 주요 장면만 보면서 궁금해하기만 했던 그것을 개봉관에서 그것도 고등학생이!! 고 3이!! 과감히 현장매표를 하고 검표원을 뚫고 들어가서 보고 온 것이다.(예매 이런것도 없고, 줄서서 기다려서 표를 끊고, 검표원 아저씨를 통과해야하는 난관을 뚫고 대담하게 용감하게!!)


당대의 섹시스타  샤론스톤이 금빛 머리칼을 틀어 올리고 하얀색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리를 꼬면서 담배를 물고불을 붙이는  그 장면... 너무너무 궁금했지만 요즘으로 따지면 중학생 관람가 정도였을 것 같은 그 영화를 보고 와서 완전 영웅이 되어 무용담을 들려주고 있었다.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쟤는 날라리야! 아는 척하지 말아야지!




달이 뜨고 해가 질 때, 계절이 바뀌고, 바람이 불 때 삶의 변곡점을 지날 때마다 보고 싶은 미현의 첫인상이다. 세상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각인된 그녀이다.

그런 이상한 첫인상의 그녀와 내가 어떻게 지금 우리가 되었는지  우리의 처음이 어떠했는지 왜 우리가 아직도 우리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할까? 지금 이 순간 그녀와 내가 우리라는 것이 중요하겠지....


어디인지도 모르는 길을 걸어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봐 주고, 손 잡아주고, 손 흔들어주었던 그녀, 설렘과 두려움이 가득했던 그 길을 함께 걸어가 주었던 그녀, 가끔 외박 나가면 갈 곳 없는 나를 위해 기꺼이 자취방을 내어주고 따뜻한 밥을 지어 주던 다정한 그녀.


캐나다로 이민간지 20여년이 지났다.  

다른 이민자들의 친구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놀러 와서 장기체류하는 바람에 이제 좀 뜸하게 왔으면 좋겠다고 하던데 내 친구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오라 해도 아무도 못 오는지...하면서 은퇴하면 꼭 외야한다고 툴툴버리는 그녀.

멀리 있어도 늘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건네는 그녀.

그런 그녀와 '우리'라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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