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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Apr 15. 2023

덕은, 요플레 요정, 뜨거운 여름

내 영혼을 만든 사람들


야... 내가 요플레 먹는 재미로 임용고시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있잖아.

오늘은 요플레가 먹고 싶었는데 우리 동네 마트에는 없어서 내가 버스 타고 옆동네 마트 가서 사 왔지.

하하하하 요즘은 요플레가 맛있더라고


하하하...

야~~~~ 그거 그냥 안 먹으면 되지 뭐 버스까지 타고 가서 사 오고 참 정성이 대단하다.

그래서 요플레가 이번에는 꼭 합격이라고 했어?


요플레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녀의 그 열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요플레 뚜껑에 붙은 것까지 혓바닥으로 싹싹 핥아먹으면서 시종일관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그녀를

보면서 임용고시에 지친 마음을 요플레가 다 위로해 주는구나 싶어서 요플레에게 감사를 전했다.


당연하지, 이번에는 꼭 합격일 거야. 그런 거 있잖아 뭔가 필이 좋은 거

안되면 한번 더 하지 뭐, 근데 내가 진짜 공부가 하기 싫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조건 꼭 붙어야 한다.

그래야 부산을 떠날 수 있거든. 부산 싫다.



나의 요플레 요정님은 그해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바로 경기도로 날아가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떠나갈 무렵 나의 첫 부임지인 강원도 화천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각자의 시간 속에서 20년을 살았다.

항상 마음속에 있었지만 서로를 찾지 않은 채, 아니 찾지 못한 채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20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요즘 같으면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일 수도 있지만, 아날로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에게는 멀어진 거리가 만남의 시계를 20년이나 뒤로 돌려놓는 큰 사건이었다.





20년이 지났다. 강산이 2번 바뀌었으니 뭐 사람도 바뀌는 것이 당연하겠지 생각했다.

아...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시간들을 다 보내고 세월 따라 많이 달라진 모습으로 20년 만에 다시 내 앞에 앉아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질끈 묶고, 검은색 긴 고무줄 치마에 하얀색 티셔츠를 입고, 뒤축이 없는 굽이 있는 검은색 슬리퍼 같은 신발을 신고 거뜬히 90kg은 되어 보이는 육중한 몸을 이끌고 나타났다.


분명 동료 교사와 결혼을 할 때만 해도 55 사이즈가 예쁘게 잘 맞는 친구였는데 뽀얗게 예쁘게 살이 찐 것이 아니라 어디가 아픈 사람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손가락 마디에 주름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고 가늘었던 목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등이 굽어져 보일 정도로...



도대체 무엇이 나의 요플레 요정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살 많이 쪄서 못 알아봤지? 하하하 여름은 진짜 너무 싫다. 더워 더워 살찌니까 더 덥다


166센티 정도의 키에 뽀얀 피부, 웃으면 형체가 없어지는 작고 귀여운 눈, 적당히 도톰한 입술과 끝이 동글동글한 코, 성큼성큼 걷는 걸음걸이, 진지한 눈빛, 가냘프지는 않은 두툼한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고 웃는 그 웃음...

짙고 굵은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있어서 뒷모습은 이웃에 있는 남자고등학교 학생 같았던... 래서일까 고교시절 그녀에게 구애하는 친구, 후배들이 참 많았다.

그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나는 그녀와 아주 특이한 우정을 나누었다.


사실 나는 경쟁자들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미 그녀의 마음이 온통 나에게 향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누구도 진정으로 가까이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었다.  항상 구름사이로 비치는 태양빛처럼 하얗고 이쁜 웃음을 웃으며 모든 사람을 대했지만 다가오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나와 단둘이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하는 것은 어떤 의식과도 같았다. 하루에 꼭 한 번은 문과동과 이과동을 이어주었던 구름다리 위에서 만나서 달달한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시를 읽어주고 시를 적은 쪽지를 전하고, 때론 암송 숙제를 내어서 번갈아 가면서 한 구절씩 들려주기도 했다. 구름다리 위에서 교정을 바라보며 시선을 멀리 둔 채로 손을 잡고 시를 읽어주는 우리의 모습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 고귀한 시간이 60명쯤 되는 콩나물 교실에서 8시간 수업과 저녁 3시간 야간자율학습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었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다. 매일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그 바쁜 고 3 때에도 친구와 마시는 커피 한잔과 시를 외우는 시간이 소중했던 우리들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그럴 여유는 있었으니 잠시라도 숨 쉬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걸 위해서라면 수학문제 한 문제쯤은 마음속에 접어두더라도

행복할 수 있는 DNA를 가졌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김초혜 시인의 ‘사랑굿’이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시집이었다. 당시에도 발간된 지는 꽤 오래되었던 시집이었지만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고등학교 시절 사랑굿을 암송하며 우리는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랑을 이해하고 진실로 진실로 사랑하는 친구가 되자고 다짐했었다.






        사랑굿저자김초혜출판마음서재발매 2018.07.12.


그대 내게 오지 않음은

만남이 싫어 아니라

떠남을 두려워함인 것을 압니다.


나의 눈물이 당신인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감추어 두는

숨은 뜻은

버리려야 버릴 수 없고

얻으래야 얻을 수 없는

화염 때문임을 압니다.


곁에 있는

아픔도 아픔이지만

보내는 아픔이

더 크기에

그립고 사는 사랑법을 압니다.


두 마음이 마지치어

모든 것 되어도

갖고 싶어 갖지 않는

사랑의 보를 묶을 줄 압니다.


김초혜, 사랑굿 1




이 어려운 시가 무슨 뜻인 줄 알았을까?

사랑굿이라는 시를 괜히 암송했을지도 모른다.

무려 34편이나 되는 사랑굿에 쓰인 가슴 미어지는 통증을 견디며 그렇게 지독하게 사랑하며 살아가게 될 줄 알았다면 그 사랑이라는 것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 나를 깎아내고 도려내는 아픔을 견디며 살아가게 될 줄을 알았더라면, 그 시를 그렇게 미친 듯이 암송하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시를 좋아하던 그녀는 대학 입학 후에는 연극에 심취했다. 부산에서는 유명했던 한새별이라는 교사 극단과 조인해서 연극을 열심히 너무나 열심히 했고 아예 한새별이 올리는 연극의 주연배우는 맡아놓은 상황이었다.


학교를 다니는 건지 연극을 하러 학교를 다니는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심취했던 연극부 생활은 그녀를 너무 소진시켰고 졸업요건을 맞추기에 바쁜 나머지 임용고시에 낙방하고 결국 재수를 하게 되었던 그녀였다..


요플레가 합격을 가져다줬다며 하하하하 웃던 그녀의 모습

임용 후 배치된 학교에 제출하려고 정장 증명사진을 찍었는데 첫 장은 너에게 준다 경기도 가면 진짜 자주 못 보겠지만 그래도 연락하자며...

(인터넷과 휴대폰이 일반화되기 직전이었다. 손 편지, 집전화를 거쳐 삐삐와 공중전화로 소통하던 그 시절)

휴대폰을 개통하고 첫 통화를 하면서 자주 통화하자고 했지만... 여전히 전화보다는 긴긴 편지가 더 익숙했던 우리는 생의 싸움터에서 살아남는라 20년이 훌쩍 지나서 눈가에 주름을 감출 수 없는 나이가 되어서야 겨우 마주 앉아있다


남편, 시댁, 아이 뭐 하나 평탄할 게 없었던 그녀의 20년 이야기를 들었다. 듣는다고 다 알 수 있을까마는. 닮은 구석이 많가슴 미어지게 사랑했던구였기에

버리지 못하고 버틸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이 너무나 잘 와닿아서 눈물이 났다.


이렇게 어려운 시간을 힘든 시간을 버텨내고 있었구나...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아픈 시간을 다 지나왔구나......

그냥 버리지... 그것도 못해서... 자신을 죽이면서 살아왔구나...


야! 괜찮다. 안 죽었잖아.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진짜 힘들었는데 이제는 괜찮다. 참는 법도 넘기는 법도 포기하는 법도 다 배워서

이제는 뭐 그러려니 한다. 대신 빨리 정신적으로 독립했잖아. 각자 인생을 사는 거지.

가족이라고 뭐 모든 걸 공유하면서 살 수는 없잖아. 그걸 좀 더 빨리 깨닫게 되었지.

하하하하

나는 이제 눈물도 안 난다. 진짜 눈물이 말랐나 봐. 하하하하하


아..... 지금은 말하지 못하지만...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어본 적이 있어서 그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속으로 말하고 있다.


그래, 나를 지키는 방법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짐승도 아프면 몸을 감추고 살아갈 힘이 생길 때까지 웅크리고 있는데 사람은 오죽할까? 그녀는 글을 쓰고, 춤을 배우면서 자신을 괴롭히던 모든 것들과 결별했다고 한다.

글쓰기와 춤추기가 자기를 살려냈다고 했다.


글을 쓰면서 가슴에 맺힌 것을 다 풀어내고, 화려한 의상을 입고 춤을 추면서 몸에 남은 기억도 날려 보낸다고 했다.


교권이 무너졌다고 연일 좋지 않은 보도가 난무하는 이 시절에도 열정적인 선생님으로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사랑받는 선생님으로 초등학생 돌본다 생각하고 바라본다는 남편과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려 미안한 아들을 위해 아직도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는 아내이자 엄마로 글공부, 춤공부, 인생공부를 멈추지 않는 열정으로 오늘도 세찬 폭풍우 속에서도 잘 버티고 있는 멋진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와 나는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삶을 살아내고 있다. 가능하면 잘 살아내려고 애쓰고 있다.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게 살아내려고 온갖 애를 쓰고 있다.


가끔은 그냥 살고 싶을 때가 있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자고 싶으면 잠을 자고 그렇게 아이처럼 살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아직은 24시간을 48시간처럼 살아내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사계절은 늘 뜨겁다. 한여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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