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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Sep 23. 2023

메카로 향하는 길

#2. 보광동 사람들_ 알라의 위로

이슬람 문화에 대한 엄청난 편견이 있었다. 이슬람 국가들이 대부분 일부다처제를 유지하고 있고, 히잡과 부르카 문화, 조혼 등 대체로 여성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풍습들을 가지고 있어서 어쨌거나 정이 가지 않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어릴 적 아라비안 나이트를 통해서 가지고 있던 아랍에 대한 묘한 환상은 성인이 되면서 접하는 많은 책들과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좋지 않은 보도를 읽고 들으면서 괜한 반감으로 변했고, 호기심에 한 번쯤 방문해 보고는 싶지만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당연히 영화에서 '알라의 이름으로!!'를 외치면서 자결을 하거나 상대를 처단하는 장면을 너무 많이 본 탓인지 이슬람교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무언가를 경험하면 편견이 깨진다. 

이슬람 성원에서 신 앞에 모든 이들이 평등하고 형제애로 똘똘 뭉쳐 '꾸란'이 요구하는 엄격한 계율을 당연한 듯 지키며 살아가는 순수한 사람들을 마주한 후에는 약간 생각이 달라졌다. 그리스도교, 불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의 하나로 우리나라에도 4만 명이 넘는 신도들이 있는 종교이다.


 나는 종교가 없다. 일명 순례교라고 교회에서는 두 손을 모으고, 성당에서는 성호를 긋고, 절에 가서는 합장을 한다. 유일신을 믿지 않는 나에게 종교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방향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보이지 않는 힘이라 인식된다. 그러니 이슬람 교도들도 그들이 믿는 신께 기도를 드리고 길을 묻고 안식을 얻는다. 당연한 일이다.그들에게 잘 알지도 못하면  편견의 시선을 보내면 안되는 것이었다.


보광동에서 이태원을 넘어 한남동으로 향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이슬람 성전인 중앙성원이 있다. 한국에는 부산, 경기도 광주, 안양, 전주까지 총 5개의 이슬람 성원이 있고, 약 10만 명의 신도가 있다. 이 중에서 한국인은 4만 명이다. 한국에 이슬람교인이 4만 명이나 등록되어 있다는 것이 너무 놀랍다. 이 한국 신도들이 우리나라와 이슬람 국가들의 정치, 문화, 외교활동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며, 이슬람교와 무슬림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중앙성원은 이태원의 끝과 한남동의 시작이 만나는 언덕에 있다. 그곳에 올라가면 정말 아무것도 눈과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하늘과 닿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해질 무렵 노을이 지는 풍경도 아름답고, 온통 하늘을 뒤덮은 별들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렇게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성원으로 가는 길은 좀 험하다. 가까이 있지만 좀처럼 잦은 발걸음이 닿지 않는 곳이다. 마음을 굳건히 먹고 걸어야 한다.


첫 번째 난관은 이태원의 끝자락인 퀴어골목을 아주 태연하게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곳이 이태원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곳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그냥 간판에 '트랜스젠더 바' '보이 바' 이렇게 커다랗게 붙어 있고, 무지개 색 깃발이 걸려있는 곳도 쉽게 보인다.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같은 종족이 아니라는 티를 좀 내면서 걸어야 할 것 같다. 이태원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딱 고갯길을 따라 이어진 이 골목은 밤에 보면 정말로 유령이 튀어나올 것 같이 음산하다.


두 번째 난관은 나의 망상과 싸우는 것이다. 워낙 좁은 골목길, 작은 붉은 벽돌집, 아랍전통 복장이나 할랄푸드를 판매하는 상점이 드문드문 보이지만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눈에 잘 뜨이지 않는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묘한 기분이 드는 골목이다. 갑자기 골목에서 터번을 두르고 수염을 기르고 큰 칼을 숨긴 사람이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망상에 사로잡힌다. 이 망상을 억누르면서 걸어야 한다. 겁이 많은 나는 낮이든 밤이든 혼자서는 그 길을 걷기가 힘들어서 친구에게 동행을 요청한다.  


그렇게 힘든 마음과 살짝 아픈 다리를 위로하며 성원으로 들어가는 정문 앞에 서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무함마드는 그분의 사도입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짧은 치마, 반바지 등의 노출이 심한 옷을 입지 말라는 당부의 말도 적혀 있다. 여기서 약 60도쯤 되는 급경사를 올라가면 거대한 모스크가 나타난다.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두 개의 기둥과 여러 가지 타일들로 문양을 낸 특유의 장식들에 눈이 휘둥그레해 진다.


여기서도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얇은 담요를 깔고 절을 해 볼까 싶었는데 출입불가다. 안타깝다.... 예배당은 남녀공용과 여자용으로 구분되어 있다. 남자는 하늘과 맞닿은 높은 예배당에서 기도를 하고 여자는 그 아래 낮은 곳에서 기도를 하게 되어 있다. 나의 소중한 아내를 다른 남자들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한 배려라고 해 두자. 남녀공용 예배당에는 주로 할머니들이나 아이가 없는 여성들이 들어가는 것 같다.


예배당 주변에는 작은 카페가 있고, 이슬람 문화를 가르치는 교육시설,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이 있다. 다 함께 식사를 하는 식당이 있다. 여기까지는 그냥 일반적인 종교시설과 비슷한데 특이하게도 성원 지하에 샤워시설과 작은 목욕탕이 있다. 함께 목욕을 하면서 형제애를 다지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만의 다른 의식이 있는 것일까? 예배를 드리고 나서 땀이 나면 깨끗이 씻으라고 만들어 둔 것일까? 엄청 궁금한데 물어보기가 미안해서 그냥 궁금증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화장실에서는 이슬람 문화를 더 진하게 느낀다. 각 칸마다 어린이를 위한 작은 변기커버가 비치되어 있고, 엉덩이를 씻을 수 있게 수도시설이 달려 있고, 분위기는 공중화장실이지만 청결상태는 호텔급이다. 화장실 안에서 어떤 불쾌한 냄새도 나지 않는다. 그들이 손으로 식사를 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는 문화적인 현상이겠지만 그래도 참 깨끗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 사람들이 한국에 살면서 화장실 이용할 때마다 불편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땅에 이런 이슬람 성원이 곳곳에 있다는 것에 묘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외교업무를 하는 사람들과 글로벌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또 생계를 위해서 낯선 나라에서 낯선 언어를 배우면서 험한 일을 하면서 지내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그들의 허전함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스럽다. 매주 금요일에 열리는 예배에는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이곳에서 그들의 언어로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고, 음식을 나누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지 : 네이버, 금요일에만 대예배가 있다 하여 아쉽지만..

수많은 무슬림들이 이곳으로 향하는 것을 상상한다. 그들의 뒷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괜스레 코끝이 찡해진다. 대체로 남루한 옷차림에 맞지 않는 기후에 어깨를 움츠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터벅터벅 걷는 모습이 상상된다.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신발을 벗고 두 손을 꼭 모으고 기도하는 그들의 마음속에 잠시 들어가 본다. 오늘도 무사한 것에 감사하고 내일도 안녕하기를 기도하고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도할 마음이 떠오른다.


한국인에게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나도 시시때때로 서글프고, 외롭고, 마음이 시린데 이렇게나 먼 나라에 와서 살고 있는 그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해 주는 곳은 이 성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어떤 위로보다 더 크고 위대한 선물일 것이다. 우리 동네에 이슬람 국가들의 대사관이 다 모여있고, 케밥가게가 많고, 눈이 크고 눈썹이 짙고, 히잡을 쓴 무슬림들이 많이 눈에 뜨이는 것은 이슬람 성원 덕분일 것이다.  


참 다행이다. 마음 쉬어 갈 곳이 있어서...그리하여 매일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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