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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Sep 21. 2023

잠수교 너머 보광동

#1. 에필로그 - 보광동 사람들

나는 서울의 보광동이라는 동네에 살고 있다.

보광동을 둘러싸고 있는 서울의 모습은 너무 아름답다.

그에 비해 보광동은 그리 아름다운 곳은 아니다. 온통 적색 벽돌집들로 가득 찬 곳이다. 하지만 나는 보광동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언젠가 고층 빌딩들로 가득 차게 될 운명에 처해진 이곳. 주위를 둘러싼 모든 곳들이 각각의 색으로 반짝이지만 홀로 검은 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곳. 그래서 주변이 더 빛나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보광동은 한남동, 한강과 닿아있다. 내 통장에는 절대 찍힐 리가 없는 재산을 가진 부자들이 모여사는 대한민국 최고의 부촌 한남동에는 멋진 주택들이 즐비하고, 비가 오면 물에 잠기는 잠수교에서는 스포츠 복 광고를 찍는 듯한 멋진 러너들, 스포츠카와 오토바이들의 광란의 질주를 매일 볼 수 있다.  잠수교 위의 반포대교에서는 매일 레이저 분수쑈를 하고, 잠수교를 건너편 새섬에서는 늘 아름다운 네온사인이 강물을 비춘다. 매주 반포한강공원에서 펼쳐지는 뚜벅뚜벅  행사는 지방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와서 동참하고 다시 내려갈 정도로 젊은이들의 필수 데이트 코스가 되었다.


보광동 언덕길은 이태원의 끝자락과 만난다. 가슴 아픈 사건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나가는 지금 다시 활기를 찾은 이태원은 밤이면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야 하고 정말 텔레비전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 같은 복장을 한 젊은 친구들이 개와 늑대의 시간에 등장해서 아침이 밝아오기 전에 사라진다. 다시 새로운 상점들이 문을 열고 새로운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이태원의 부촌을 통과하면 남산에 닿을 수 있다. 남산으로 가는 길목에는 경리단길, 해방촌, 후암동이 각각의 특색을 자랑하면서 매주 엄청난 인파를 끌어들이고 있다.


보광동에서 조금 내려오면 용산의 심장부를 만날 수 있다. 국보급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옛 미군부대 반환부지에 조성된 용산 가족공원과 새롭게 개장한 용산공원. 용산 어린이 정원까지를 다 내 앞마당처럼 이용할 수가 있다. 꼭 관광지처럼 인식이 되어서인지 평일에는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주말에는 주차 전쟁이 일어난다. 평일 낮에 햇살을 맞으면서 그곳을 살살 걸어 다니면 그 넓고넓은 풍경들이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땅 넓은 나라가 하나도 부럽지 않다.


보광등에는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 산다. 서울역에서 보광동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면 절반은 외국인이다. 그들은 보광동에서 살면서 생계를 이어간다. 버스 안에서는 정말로 다양한 언어를 들을 수가 있다. 그 사람들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놀이터에서 만난 흑인아이가 너무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는 것을 듣고 진짜 깜짝 놀랐다.


보광동 언덕 꼭대기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슬람 사원이 있다. 그래서인지 보광동 꼭대기에는 이슬람계 사람들이 많고 그들이 모여사는 골목이 있다.  사원은 메카를 향하고 있는데 그곳에서는 매일 기도가 끊이지 않는다.


보광동에는 중동 국가들의 대사관들이 밀집해 있다. 걱 대사관마다 특색 있는 디자인의 건물들이 있다. 많은 외국인들이 그곳을 드나든다. 외교 01-356 이런 번호판의 차들이 자주 눈에 뜨인다. 아랍의 글자들은 아무리 봐도 그림 같다.


보광동은 무질서의 극치이고 당장이라도 큰 사고가 일어날 것 같은 곳처럼 보인다.

언덕 위 좁은 골목에 무질서하게 지어진 집들, 걸어가면 뒤에서 괴물이라도 툭 튀어나올 것 같은 어두운 골목 오래된 벽돌 건물들에서 배어 나오는 퀴퀴한 냄새들, 골목골목 내어놓은 음식물쓰레기와 각종 쓰레기들, 길고양이에 의해 파헤쳐진 음식물 쓰레기에서 나는 악취들... 강원도 화천이나 양양보다 생활여건이 더 좋지 않다고 느껴질 만큼 열악한 환경이다. 마땅한 마트도 없고, 병원도 없다. 모든 것은 다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서울인데 시골 같은 느낌이다.


나는 이 이상한 동네 보광동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서울 어느 곳에서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을 만날 수가 있을까? 그리고 분명히 사라질 것이 정해져 있는 이 동네의 모습을 글로 남기고 싶다.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이 다 고층아파트가 되고 나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명소들의 틈에 끼여 혼자 까만 점으로 살았던 이 골목의 사람들의 이야기도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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