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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Sep 28. 2023

끝 집 할머니의 수호천사 럭키맨

#4. 보광동 사람들_ 먹을거리라도 있어야 마음이 푸근하지

꼬불꼬불 좁고 가파른 골목의 끝집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하다.

내리막길을 한달음에 내려 올 수가 없다. 두 걸음 걷고 쉬고 세 걸음 네 걸음 걷고 쉬고, 작은 지팡이에 몸을 기대고 절룩절룩 거리며 큰 숨을 내쉬고 들이쉬면서 몇 번을 쉬어가며 러키슈퍼에 먹을거리를 사러 간다. 장보기는 할머니가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다리가 아파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힘들고, 내리막길을 내려다보면 행여 구르기라도 할까 걱정이 되지만 밥을 먹어야 약도 먹을 수 있고, 병원 갈 힘도 생기니까 먹거리를 사다 놓아야 한다. 마을버스 정류소까지 걸어가는 시간이나 마트를 가는 시간이나 오분도 차이가 나지 않으니 그냥 익숙한 길을 따라서 마트로 간다.

오토바이만이 배달 가능한 높고 경사진 골목

럭키 슈퍼는 집까지 배달을 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멀리 있어 일 년에 한 번 얼굴 볼까 말까 한 자식들보다 배달부가 더 반갑다.  

마트가 없을 때는 재래시장까지 내려와서 장을 보곤 했다. 그때는 그래도 장을 봐서 손에 들고 골목길을 걸어 올라갈 힘이 있었다. 요즘은 간식으로 먹을 떡 한 덩어리 사서 올라오는 것도 힘들다. 러키마트에서 사과, 호박, 포도, 감자, 양파를 샀다. 멜론을 싸게 판다고 잔뜩 내놓았는데 살까 말까 망설여진다. 다 먹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요즘 사람들은 인터넷이다 뭐다 핸드폰으로 다 주문해서 불러다 먹는다는데 우리 노인네들은 그런 것도 할 줄도 모른다. 그냥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사는 게 마음이 편하다.


럭키맨이 없으면 가파른 골목길, 차가 다니지 못하는 그 언덕 위에 사는 우리들은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다녀야 하는데 참 난감하다. 그래도 이 동네에 이런 슈퍼가 있어서 너무 고맙다. 가끔 슈퍼사장한테 부탁하면 다른 물건도 배달을 해 준다. 다음 주가 추석이라고 오늘따라 계산줄이 너무 길다.

러키맨들이 배달을 준비하는 모습

올해 추석에 자식들은 해외여행을 간다고 했다. 혼자 있는 시간 잘 버티려면 먹을거리와 약이 있어야 한다.

집에 와 봐야 앉고 서고 할 자리도 없으니 자식들을 오라고 말을 할 수도 없다. 자식들이 한다는 대로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없다. 언제부턴가 추석날, 설날 혼자 지내는 것도 익숙해졌다. 자식한테 완전히 의탁하지도 못하고 나라에 의탁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신세를 한탄해 봐야 소용이 없다.


이놈의 다리라도 멀쩡하면 뭐라도 할 텐데 숨 쉬는 일도 다 귀찮다. 점점 몸도 마음도 지친다. 혼자서 명절 보내는 것도 서러운데 다리까지 아프면 더 힘들 테니 미리 약을 받아와야 한다. 그나마 꼬불꼬불 이 골목길을 걸어서 먹을거리 사고 병원이라도 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가을인데 여름같이 뜨겁다. 몸도 마음도 뜨겁다.


혼자 사는 내 신세도 서럽기는 하지만 저 외국사람들도 산다고 고생이 많다 싶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도 모르겠지만 외국사람들이 많다. 머리에 두건을 쓰고 다니는 여자들도 많고 피부색이 까만 사람들도 많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잘도 웃으면서 다닌다. 말도 안 통하는 동네에서 살고 있는 저 외국사람들은 다 뭘 해서 벌어먹고 사는지 궁금하다.


꼬마들은 제법 우리말을 잘한다. 기특하기도 한다. 그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 손주들도 보고 싶기도 하다. 그 꼬마들도 할머니가 있겠지? 그 할머니들도 저 손주들이 보고 싶을 텐데 멀리 살고 있으니 보고 싶어도 못 본다. 같은 나라에 살고 있어도 못 보는 건 마찬가지다. 괜히 꼬마의 눈을 들여다본다.

아빠와 시장 보러 나와서 노래 중인 꼬마

자식들은 지금쯤 하늘을 날고 있겠지?

어디를 가는지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냥 간다고 하니 가는가 보다 한다. 놀러 가는데 용돈도 하지 한 푼 쥐어주지 못하는 내 신세가 서글프다. 그래도 자식들이 여행도 다니고 즐겁게 살고 있으니 다행이다. 다 좋게 좋게 생각하자. 꼬불꼬불 언덕이라도 내 몸 누일 작은 방이 있고, 절룩절룩 욱신욱신거리는 다리라도 지팡이 기대서 혼자서 걸어 다닐 수 있으니 다행이다. 방세와 먹을거리 살 수 있게 돈을 보내주는 자식들이 있으니 다행이다. 모두 다 다행이다.


나도 하늘과 가까이 닿아있는 나의 작은 방으로 올라가 보자.

꼬불꼬불 골목길을 한걸음 한걸은 올라가면 하늘로 하늘로 가까이 올라간다. 내 인생도 하늘로 올라갈 날이 머지않았을 텐데 세 다리로 잘 버티다가 편안하게 하늘로 올라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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