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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Nov 06. 2023

신령님들이 모여 사는 터 좋은 동네

#5. 보광동 사람들_상사화를 닮은 우리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종교 활동을 하지 않는다. 정해진 운명이 있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 오직 나만 믿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성으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가끔 하늘을 바라보면서 혼잣말할 때가 있다.


"저기요! 거기요! 제 말 들려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러는 거예요?"


그건 나에게 이성과 마음 그리고 영혼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영혼의 존재를 믿기 때문이다.




엄마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며칠 동안 끙끙 앓게 하다가 도저히 혼자서는 나올 기미가 보아지 않아서 유도분만이라는 신기술을 활용해서 겨우 세상에 나와서 지금까지 고군분투하면서 살아왔는데 신이 정한 대로 내 인생이 펼쳐진다는 걸 믿으라고?


타고난 운명이 그렇다는 말도 참 너무 서글프다.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고? 그럴 팔자라고? 그럼 대체 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거지?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미라클 모닝 인증을 하고,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고 있는 거지?

 

살다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이다. 지금의 고난은 신이 다른 복을 주시려고 준비하신 거다. 이런 이야기들은 진짜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진짜 나를 사랑하는 신이라면 give & take 말고 원 플러스 원으로 복을 넘치게 주셔야 하는 거 아닐까?


명리학이 훨씬 더 과학적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나보다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의 삶의 통계학적인 분석을 통해 만들어진 학문이니까 더 믿음이 간다. 요즘 사람들은 미쳐있는 MPTI도 과학적 통계에 근거해서 사람의 인지 행동 성향을 분석해서 유형을 제시해 주는 것이니 그것도 아주 신뢰성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결국 그 학문의 내용들도 믿는 마음이 있어야 진짜로 믿게 되는 거 아닐까?


그럼 그런 종교나 학문과는 또 다른 운명을 읽고 또 다른 신을 모시는 분들의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우리 동네에는 많은 신령님들이 살고 있다. 신내림을 받은 많은 무당들이 각자가 모시는 도령님. 보살님. 동자님, 아기씨를 모시고 있다.  00 암이라는 곳은 서울 경기도 전역에서 매우 용하다고 소문이 나서 몇 달 전에 예약을 하고 찾아온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사실 종교를 갖고 있는 분들도 자주 방문을 한다고 하니 참 종교의 세계와 이 무속의 세계는 또 별개인 것 같다. 종교로도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궁핍함과 현실의 팍팍함을 무속의 세계에서 채우려는 마음이 있나 보다. 그러니 함부로 그 신령님들과 그분을 모시는 분들의 삶을 평가할 수 없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그분들이 유일한 신이고 인식처일 것이다.


엄마 손에 이끌려 딱  점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점이라기보다는 거의 사주를 보는 것이었는데 모두가 다 일반 가정집에서 그냥 평범하게 생긴 분들이 사주책을 펼쳐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었다.


호랑이 중에서도 무리생활을 싫어하는 고독한 호랑이 한 마리가 겨울밤에 수풀을 헤매는 형국이라 넓은 공간이 필요하니 휘휘 돌아다니게 내버려 둬라.


크... 남자로 태어나서 사업을 했으면 대성할 운인데 여자로 태어나서 하나의 운이 부족하다. 그래도 여자 사주에 칼이 있으니 뭘 베어도 벨 거다.


그래서 칼 들고 휘휘 돌아다니는 일을 했었나? 혼자 생각해 보기도 했다.


우리 동네에 이렇게 점을 보거나 상담을 해 주는 일을 하는 분들이 많다. 인간이 이성과 마음 그리고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에 과학에만 근거해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무엇이든 간에 믿는다는 마음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고 도저히 일어설 수 없을 것 같던 사람을 일어서게 만든다. 믿음은 이성보다 강하고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갈대와 같은 나의 마음은 가끔 절친에게 묻는다. "요즘 나 왜 이렇게 힘든 거야? 계속 이러면 진짜 죽을 것 같은데? 타로 가져와서 좀 확인해 보자"

"야. 나는 아직 공부하는 중이라서 정확하게는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아?"

"아. 몰라 그래도 그냥 한번 보자."

초등교사인 절친 중에 명리와 타로를 공부하고 있다. 몇 년 동안 인터넷강의를 듣고 강남으로 공부를 하러 다니더니 타로 자격증, 명리학 수업 수료를 하고 최근에는 아호까지 받았다. 대단한 친구이다.


요즘 친구는 여러 가지 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들에게 초빙을 받아서 원정타로나 원정사주를 봐주기도 한다. 처음에는 재미였는데 사람들이 자꾸 믿음을 가지더니 요즘은 밥 사주고 술 사주면서 제발 한번 만나달라고 부탁을 한다고 한다. 람의 마음과 영혼을 공부하는 것에 취미를 가지고 열심히 하다 보니  경지에 이른 것이다.


농담처럼 퇴직 후에 우리 동네에서 개업하면 어떻겠냐고 말을 건네본다.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힘들 거라고 1위인 00 암을 이겨야 한다고 말을 한다.

신령님들이 사이좋게 모여서 사는 우리 동네에서 멀리 수원에서까지 찾아오는 사람도 있는 00 암을  찾아갈 일은 없겠지만 친구를 찾는 내 마음에 견주어 볼 때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너 저번에 올해 아파트 살까 말까 물어봤다며 뭐래? 사래? 야 근데 그런 걸 물어보는 건 좀 웃긴다"

 "너 해외 파견근무 나갈까 말까 물어봤어?"

 "그 남자랑 결혼하래? "

 "사업이 잘 된데?"


이걸 딱 알려주면 인생은 리얼이 아니고 각본 있는 무대 아닌가요? 그럼 너무 재미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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