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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Nov 17. 2023

아빠라는 바위는 모래로 만들어졌다.

점점 쇠약해져 가는 큰 바위 아빠를 생각하며...

아빠는 거대한 바위인 듯 작은 모래알인 듯 때때로 그 모습이 바뀐다. 아빠도 항상 흔들림 없는 바위인 것처럼 살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파도에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 모래알처럼 살아갈 수도 없었다. 아빠는 모래알을 숨긴 바위의 모습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처음부터 바위로 태어나지는 않았을 테니 세월의  모래알이 하나하나 뭉쳐져서 바위가 되었을 텐데 내 눈에는 한 덩어리의 바위로 보였다. 그 속에 어떤 모래알들이 뭉쳐져 있는지는 볼 수가 없었다. 그저 아빠라는 큰 바위가 항상 내 옆에 있었다. 아빠는 딸의 수호신으로 지지자로 언덕으로 그늘로 그 자리를 지켰다. 아빠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었을 텐데 내 눈에는 항상 아빠로만 존재했다.


한 남자는 아빠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세상 밑바닥에서 고군분투하며 하루살이 같은 삶을 50년도 넘게 살아오셨다. 여전히 나는 그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아빠가 겪어야 했을 삶의 무게를 알 수가 없다. 한 번도 드러내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도 아빠라는 큰 바위가 어떤 모래알들로 만들어져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먼 하늘을 바라보는 희미한 시선, 연약해진 어깨와 휘청이는 걸음걸이, 온전하지 못한 치아와 완전히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들이 아빠는 육중하고 단단한 바위가 아니라 잘못 건드리면 부스러질지도 모르는 모래 덩어리였을지도 모른다. 그 모래덩어리를 아빠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사랑과 희생으로 굳건히 둘러쳐서 부스러지지 않게 지켜왔을 것 같다.


이제 마지막 가시는 길 스스로 잘 정리해 두어야 한다며 면허증을 반납하고, 연명치료거부 등록을 하고, 자식들이 건네는 용돈을 꼬박꼬박 저축해서 요양병원 입원료를 만들고 계신다.

  

더 늦기 전에 아빠의 일생을 글로 남겨야겠다. 내가 기억해 주지 않으면 누가 아빠의 일생을 기억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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