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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Nov 26. 2023

스승의 마음은 어버이시다.

거창 아름고등학교 실버반 이야기를 가슴에 새깁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의 마음은 어버이시다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82세 할머니 여고생은 아들 나이 또래 교장선생님의 정년퇴임식에서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르시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거창 아름고등학교 실버반 학생들이 교장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꽃다발을 전달하고 송사를 낭독한다. 교장선생님은 공부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더 중요하니 꼭 건강을 먼저 챙기라 당부하고 떠나신다.


"1남 6녀였는데 오빠만 공부하고 우리 딸들은 모두 공부를 안 했어요.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어요. 그래서 오빠만 공부했으니까 오빠가 하는 말이 다 옳은 말인 줄 알고 이태껏 살았지. 공부를 해 보니까 이리 좋은걸 이제야 알았어요."

"어릴 때는 공부가 진짜 하기가 싫었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공부하기 싫으면 밭에 일하러 가자 하길래 그 길로 일하러 따라나섰지요. 55살 될 때까지 까막눈으로 살다가 기역니은부터 시작해서 지금 고등학교 2학년돼서 이제 영어도 배우니까 신기하지요."

"일차함수, 이차함수 이런 거는 이 나이에 내가 배워서 뭐에 쓸까 싶다가도 또 복습하고 그래요. 여기 이 사람이 수학을 잘해서 우리한테 잘 알려주거든요. 동급생이 알려주니까 이해가 더 잘되고 그래요"

"내가 옆 교실 남학생, 여학생 친구들이 많아요. 하하하 서로 잘 챙겨주고 그러니까 손주뻘인데 친구지 뭐. 같은 학교 다니고 있으니까 친구 맞잖아요."


야간 배움터가 아니고 일반 고등학교에서 실버반을 운영하는 것을 KBS2 TV 다큐에서 보았다. 15명 정도의 어르신이 1교시부터 8교시까지 일반학생들과 똑같이 등교해서 공부하고 중간고사 기말고사도 친다. 가장 나이가 어린 분은 65세 가장 나이가 많으신 분은 88세 이시다.


8시부터 시작하는 첫 수업에 나가기 위해서 아침부터 부지런히 식사를 하시고 버스를 타고 등굣길에 나선다. 어젯밤에 농사지어서 탐스럽게 익은 호박을 가방에 싸서 등굣길 버스 안에서 만난 친구에게 나누어 준다. 한 친구는 꾸벅꾸벅 졸고 있다. 한 시간 간격으로 배차되는 버스는 달려 달려서 학교 앞에 도착한다. 교장선생님은 수업시작 전 교문 앞에 서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인사를 한다. 10대 고등학생들과도 실버반 학생들과도 아침 인사를 나눈다. 10대 학생들은 수줍은 듯 웃으며 지나가고, 실버반 학생들은 선생님보다 더 깊이 허리 숙여서 인사를 한다.


방학을 마치고 오면 10대 학생들과 함께 강당에 둘러앉아서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웃으며 이야기한다.

"복도에서 실버반 할머니 할아버지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데 항상 이쁘다 해 주시고, 반갑게 인사해 주시고 하니까 너무 좋아요."

"급식실에서 줄을 양보하려고 하면 선배님 먼저 드세요 하셔서 좀 민망할 때도 있어요."

"처음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하고 같이 학교를 다닌다는 게 이상했는데 오히려 너무 좋아요. 우리보다 오히려 더 열심히 하시거든요. 그래서 저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분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어른을 대하는 제 생각과 태도가 많이 바뀌었어요. 더 많이 이해하게 되고 또 더 잘 알려드리게 되었어요."


서로가 서로의 장점을 먼저 바라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저 나이에 nice to meet you. too. 배우고 있다고?"

"왜 할머니들이 학교에 와서 물을 흐리나?"

"고등학교가 경로당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면 학교에서는 아마도 실버반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할머니들의 꿈과 희망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조화를 이루면서 잘 지내고 있다. 학생들은 할머니들에게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고, 할머니들은 학생들에게 사랑과 봉사의 기쁨을 주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심어준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또 가르침을 주면서 살고 있다. 학습이든, 인성이든, 마음의 의지이든 어떤 부분에서든 크고 작은 가르침을 주는 분들과 어우러져 살고 있고, 때로는 그분들이 나보다 나이가 적거나 사회경험이 적은 분들도 있지만 스스로의 능력으로 미치지 못하는 곳에 닿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람들은 다 나의 스승이 아닐까?


평소 TV를 잘 보지 않는데 어쩌다 돌린 채널에서 큰 지혜를 얻었다. 대한민국 어딘가에서는 스승과 학생의 역할을 충실히 다 하면서 더 나은 교육의 미래를 고민하고 실현하고 있는 곳도 많을 것이다. 교권이 무너졌다고 한다. 교권만 무너졌을까? 우리는 역사의 한 지점을 힘겹게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후대에 우리의 아이들이 자라서 지금을 바라볼 때 어떤 평가를 하게 될지 모른다. 역사는 원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후대에 바라보는 사람이 평가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교사라는 키워드로 나무위키를 검색해 보았다.

(나의 절친들과 올케가 교사인데 그동안 그들의 삶에 관심이 너무 없었다는 반성과 함께...)

아주 다양한 글이 많이 쓰여 있었지만 사도헌장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의사들이 졸업할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낭독하는 것처럼 교사들도 사도헌장 낭독식을 가진다고 한다. 대한민국 모든 교사들이 스승의 길을 밝히고 신뢰받고 존경받는 스승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굳건히 잘 이겨나가서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르며 눈물 흘리는 제자들을 많이 배출해 주었으면 좋겠다.


사도헌장

오늘의 교육은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발전과 내일의 국운을 좌우한다. 우리는 국민 교육의 수임자로서 존경받는 스승이요, 신뢰받는 선도자임을 자각한다. 이에 긍지와 사명을 새로이 명심하고 스승의 길을 밝힌다.

1. 우리는 제자를 사랑하고 개성을 존중하며 한 마음 한 뜻으로 명랑한 학풍을 조성한다.

1. 우리는 폭넓은 교양과 부단한 연찬(硏鑽)으로 교직의 전문성을 높여 국민의 사표(師表)가 된다.

1. 우리는 원대하고 치밀한 교육 계획의 수립과 성실한 실천으로 맡은 바 책임을 완수한다.

1. 우리는 서로 협동하여 교육의 자주 혁신과 교육자의 지위 향상에 적극 노력한다.

1. 우리는 가정교육, 사회 교육과의 유대를 강화하여 복지 국가 건설에 공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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