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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Nov 27. 2023

내 크리스마스의 전령 아빠 산타

아빠가 산타였다는 걸 기억할 수 있어 다행이다.

호호호 메리 크리스마스!!!

이상하게 웃음이 호호호였다. 그래서 산타가 할머니인 줄 알았다. 산타는 할아버지였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주신대... 그래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울지도 않고 착하게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양말을 걸어두면 산타가 밤에 집으로 들어와서 선물을 놓고 가는 줄 알았다. 그래서 꼭 제일 깨끗하고 색깔이 이쁜 양말을 걸어두기도 했는데 양말이 너무 조그마하면 큰 선물을 못 받을까 봐 색종이를 찢어서 달력에 붙여서 큰 종이 양말을 머리맡에 두고 자기도 했다.


무려 10살이 될 때까지 진짜 산타가 있다고 믿고 지냈다. 다른 친구들에게 산타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착하게 지내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순진하기 그지없는 아이였다. 이건 다 아빠, 엄마 덕분이다. 참 먹고사는 것도 어려웠을 텐데 돌이켜보면 울 아빠는 진짜 로맨틱한 남자다. 우리 집안이 대대로 불교집안(?)으로 하느님, 예수님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데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꼭 작은 전구를 사서 집 베란다 유리창에 장식을 두르고, 하얀 솜을 사서 유리에 산타도 만들고, 눈이 오는 마을도 만들었다.

   

그리고 산타할아버지에게 받고 싶은 선물 목록을 적어서 방 문 앞에 붙여두게 했다. 산타할아버지는 미국에서 오시니까 한국까지 오는 시간을 생각해서 미리 붙여두고 주문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방을 들어갈 때마다 그 선물 목록을 보면서 엄청 설레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크리스마스이브 아침에 머리맡에서 그 선물이 발견되었다. 동생과 둘이서 선물을 들고 거실을 뛰어다니면서 좋아서 방방 뛰었던 기억이 있다.


이 환상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의 환상은 깨졌다. 크리스마스 전야 산타가 나타나면 선물 말고 우리 집이 예전에 살던 곳으로 다시 이사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직접 부탁해야지 생각하면서 자정까지 눈을 비비면서 뒤척뒤척거리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동생과 나의 머리맡에 선물을 놓고 나가는 사람은 산타가 아니가 아빠였다.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아빠산타가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기억해 주고 선물을 사주고 우리의 환상을 지켜주려고 애쓸 만큼 삶의 여유가 있었던 것이...


그래도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로맨틱한 아빠를 기억하고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그 이후로 끝없이 아래로 아래로 점점 내려가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늘 아빠산타를 기억했다. 우리 아빠가 지금 너무 힘들지만 그 속에는 산타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걸 내가 알고 있으니 그저 보이는 모습만으로 아빠를 원망하지 말자고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수없이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행여나 깨끗하고 좋았던 집, 좋은 옷, 아담한 차, 고기반찬, 예쁜 인형, 좋은 책가방 이런 것들을 가질 수 없는 환경에 지쳐서 아빠를 원망하게 될까 봐 겁이 났다. 일기장에 나는 절대 이렇게 살지 않을 거야라고 박박 쓰면서도 아빠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살림만 하던 엄마가 일하러 나가시고, 아직 동생을 챙기기에는 어린 나이였던 나에게 동생도 돌보고, 집안일도 해야 하는 상황들이 닥쳐오고, 또 더 참담한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했지만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산타를 품은 아빠를 잊으면 안 된다고 되뇌면서 지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는 거지 이 상황 속에서 마음까지 비참해지지 말자고 매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더 이상 우리 집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없어도, 머리맡에 선물을 가져다주는 산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도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맛있는 음식도, 좋은 옷도, 따뜻한 물로 씻는 것도 못하게 될지라도 그건 그냥 지나가는 시간일 뿐 아빠, 엄마, 동생 모두에게 가혹한 시간이니 절대로 미워하지 말자고...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늘 아빠산타가 생각난다. 신이 인간에게 망각이라는 선물을 주었지만 절대로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살금살금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선물을 놓고 나가면서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 아빠의 얼굴, 아빠의 뒷모습. 아빠는 평생 동안 딸에게 가장 멋진 산타였다. 


이제는 내가 아빠에게 산타가 되어주는 시간이다. 크리스마스가 우리랑 무슨 상관있냐고 말하는 아빠에게 그래도 크리스마스니까 뭐 특별히 먹고 싶거나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봐요.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머리맡에 있을 수도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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