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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Dec 15. 2023

다시

다시... 다시!

다시...라는 단어가 우리 생에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다시! 이 말은 대학 4년 동안 진절머리 나게 듣고 또 말했다.

대학 동아리 연극부에서 활동했다. 선배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다시! 나중에 내가 선배가 되어서도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다시! 였던 것 같다.


연출님이 줄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면서 다리를 떨고 앉아서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아주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부비 끄면서 이야기한다.

다시!

다시!

그게 아니잖아. 다시!

다시!

다시!


아니 대체 무엇을 어떻게 다시 하라는 건지 정확하게 말을 해 주면 참 좋을 텐데

그게 아니잖아. 다시! 이렇게 말하면 대체 어쩌란 말인가?

대사 한마디- 내가 너를 사랑하잖아-를 한 시간 동안 다시 해 보기도 했다.

내가 너를 사랑하잖아! 이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감정을 실을 수 있는지 얼마나 다양한 마음의 깊이를 담을 수 있는지를 본능으로 체득한다. 특히 밤샘 연습을 할 때는 더 그렇다. 잠을 자지 않고 이틀 동안 계속 연습을 한다. 밥도 최소한으로 먹는다. 몸이 극도로 힘들어지면서 온몸의 감각이 날이 서고 예민해지고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본능적으로 변한다.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점점 줄어든다.


내가 너를 사랑하잖아!


그래! 바로 그거야!

할 수 있으면서 왜 한 시간씩 진을 빼냐?


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무대 뒤로 퇴장한다.

뭐가 다르다는 건가? 아까랑 별 차이가 없었는데 왜?


내가 연출이 되어서 무대 아래서 무대 위를 바라보면서 비로소 다시! 를 외치는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보는 사람이 느끼는 그 미묘한 차이를 정확한 언어로 설명해서 본능을 일깨우기에는 우리의 언어가 너무 부족해서 다시! 를 외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25년 동안 내가 누비던 무대에서 내려와 다른 작품을 선택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25년 전 첫 발을 디디면서 끝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 작품이 성공작이 될지 실패작이 될지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저 한걸음 한걸음 꼭꼭 눌러 담았고, 틀리면 다시! 잘못 가는 것 같으면 또다시! 를 외치면서 걸어왔다.  


새로운 작품을 선택하려니 생각이 많아진다. 직장에서 나에게 준 많은 타이틀들은 이제 나의 필모그래피가 되고, 나는 다시 다른 나로 채워져야 하는 시간을 마주하고 있다.


 다시! 또다시! 다른 나의 모습을 보여 줄 새로운 무대는 어디면 좋을까? 생각에 매몰되지 말고 본능을 일깨워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또다시! 할 수 있는 그런 무대 위에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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