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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May 28. 2023

오름은 하늘로...

제주에서의 사색 2

거문오름에 오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길 너무나 설레었다.


거문오름을 알게 된 건 몇 년 전 KTX매거진을 통해서였다. 신비로운 숲길과 이끼로 뒤덮인 현무암들 그저 초록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할 수 있다면 저곳에 들어가 한동안 머물고 싶다 생각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으로 오랫동안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다가 탐방예약을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고 수백 종의 이끼와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했다. 


단 세 컷의 사진이 실려 있었는데 기차 안이 아니라 그 숲 속에 들어가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빠져들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이제야 그곳을 방문할 수 있었다.


거문오름 정상
거문오름에서 바라 본 먼 바다와 다른 오름

30분 간격으로 그룹을 이루어 문화해설사님의 인솔하에 올라간다. 15분마다 멈춰 서서 해설을 해 주신다. 전직 교장 선생님 이셨다는 해설사님은 내가 말이 좀 길어요. 하시면서 이해하라 하셨지만 나는 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그룹을 빠져나왔다.


문오름을 혼자만의 감각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싶었다.  해설시간이 너무 길어서 걸어가면서 주변을 느낄 사이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내달리듯 걸어야 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몇 년을 기다린 시간인데 타인의 리듬에 맞추어 걷고 싶지가 않았다.


이끼로 뒤덮힌 나무뿌리

천천히 걸으며 거문오름의 식생을 관찰했다. 이끼연구학자들이 예찬해 마지않는다 하는데 이끼 관련 지식이 아예 없으니 그냥 짧은 초록색은 다 이끼려니 한다. 그래도 지식이 없는 내 눈에도 최소 20개 정도는 다르게 생긴 것들이 눈에 보인다. 풍혈이라고 바위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에어컨 바람보다 더 서늘하다. 풍혈이 흐르는 주변은 이끼가 더 많은 것 같다.

이루지 못한 사랑

해설사님의 설명 중에 유독 뇌리에 박힌 나무이다. 꽃말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나무에도 의미가 있다 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란다. 여리여리 한 나무에 주어진 의미가 너무 애처롭다. 자세히 보면 아래는 그냥 초록 잎사귀인데 젤 위 잎사귀만만 주황 붉은빛을 띤다. 꼭 이른 단풍이 든 것 같다. 사랑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서 말라버린 잎사귀도 있다.


이 나무의 사랑은 하늘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파서 애달픈 마음처럼 상기되어 있다. 그러니 젤 위 잎사귀만 붉어지는 것이겠지.


이루지 못한 사랑에 심취해서 걸어 내려오는 길에 만난 신비로운 이 광경은 꼭 하늘이 일부러 꽃길 수놓은 듯 보이지만 실은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떨어진 꽃잎 위에 드리워져 꼭 꽃잎처럼 보이는 것이다.

나뭇잎 사이로 비친 햇살과 떨어진 꽃잎들

사랑은 꽃잎과 나뭇잎과 햇살을 닮은 것 같다.

*이렇게 서정성이 부족할까?

맘에 새긴 걸 글로 옮기기가 너무 어렵다.


해설사님의 긴 설명과 모든 탐방로에 만들어진 나무데크들로 환상의 숲 탐방이 될 것이라는 나의 환상과 기대를 충족시키진 못했지만 가을에 다시 방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그 오색찬란한 가을의 단풍잎 사이에서도 그 빛을 발하고 있을까 궁금하기 때문이다.


하늘에 닿고 싶어 사랑에 닿고 싶어 끝내 붉게 물들어 맘을 보이고 있는 그 아련함이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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